이한재 기자 piekielny@businesspost.co.kr2019-12-11 17:08:48
확대축소
공유하기
송승봉 현대엘리베이터 대표이사가 정부의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를 향한 강경조치에 직면해 대책 마련이 발등에 불로 떨어졌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안전상 이유로 하도급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승강기안전관리법’을 준수하도록 한 정부조치에 따라 내년 승강기 유지관리사업에서 매출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 송승봉 현대엘리베이터 대표이사.
11일 승강기업계에 따르면 정부 합동조사에서 ‘승강기 유지관리 업무의 하도급제한’ 규정 위반이 적발된 현대엘리베이터를 포함한 승강기 대기업 4곳은 내년부터 관련 매출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특히 현대엘리베이터는 국내 승강기 유지관리시장 점유율 1위 업체로 정부가 불법 하도급을 통해 관리한다고 판단한 승강기 대수가 9만250대에 이른다.
이는 함께 적발된 점유율 2~3위 업체보다 2배가량 많은 수치로 정부규제에 따라 현대엘리베이터의 매출 감소가 가장 클 것으로 보인다.
현대엘리베이터 등 승강기 대기업 4곳은 그동안 협력업체와 함께 수주한 승강기 유지관리 업무의 매출을 우선 인식한 뒤 이 가운데 25~40%를 뗀 금액을 협력업체에 지급하는 하도급방식으로 사업을 운영해왔다.
하지만 이 방식을 정부가 불법으로 판단한 만큼 내년부터는 협력업체에게 줄 매출을 우선 인식할 수 없다.
승강기안전관리법은 승강기 안전을 위해 원칙적으로 하도급을 금지하고 있다. 다만 공동도급은 열어놓고 있는데 공동도급 방식은 발주처가 업무비중에 따라 각 공동도급업체에게 직접 도급대가를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정부 조사를 진행한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정부가 엄중처분을 결정한 만큼 업체들도 당장 내년부터 사업방식에 변화를 줄 것”이라며 “또 다시 같은 형태의 불법 하도급이 적발되면 더 강도 높은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승강기안전관리공단의 표준유지관리비 등에 따라 승강기 1대당 한 달 평균 유지관리비용을 15만 원으로 추산할 때 현대엘리베이터의 불법 하도급 승강기 9만250대의 1년 비용은 1600억 원가량으로 분석된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해 연결기준으로 매출 1조8772억 원을 올렸는데 전체의 22%인 4132억 원을 승강기 유지보수 등 보수서비스업을 통해 올렸다.
이 가운데 국내 물량이 3275억 원으로 80%를 차지하는데 앞으로 승강기안전관리법을 준수하면 이 가운데 절반이 사라질 수도 있는 셈이다.
현대엘리베이터가 협력업체에 일을 넘기지 않고 직접 유지관리를 수행한다면 매출 감소폭을 줄일 수 있지만 당장 그만큼 인력을 확보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든 것으로 파악된다.
정부 조사결과 현대엘리베이터를 비롯한 승강기 대기업 4곳은 협력업체와 함께 수주한 승강기 유지관리 업무를 사실상 하도급 형태로 협력업체에 모조리 넘겨온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가 승강기 유지관리업 등록 취소, 6개월 이하의 사업정지 등의 강력한 행정처분 등도 예고한 만큼 상황에 따라 매출 감소폭은 더욱 커질 수 있다.
9월 현대엘리베이터 대표에 오른 송승봉 대표로서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송 대표는 오티스엘리베이터,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 등 국내 승강기 대기업을 두루 거친 승강기분야 설계·기술전문가로 3월 현대엘리베이터에 합류했다.
애초 전문분야를 살려 제조·R&D·미래혁신부문장으로 영입됐으나 전임인 장병우 대표이사가 급성 뇌출혈로 세상을 떠나면서 9월 갑작스럽게 새 대표에 올랐다.
송 대표는 취임 당시 국내 건설경기 위축에 따른 승강기 수요 둔화에 대응하기 위한 해외사업 확대와 본사 이전과 함께 진행하는 스마트팩토리 구축 등이 주된 과제로 꼽혔다. 하지만 취임 3개월 만에 뜻하지 않게 국내 주력사업의 매출 감소를 방어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하청업체 노동자에게 위험한 일을 맡겨 죽음으로 내몬다는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에 따른 이미지 하락도 송 대표에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
정부는 승강기업계 노동자의 잦은 사망사고로 이번 조사를 진행했는데 현대엘리베이터는 최근 5년 동안 현장에서 10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어 승강기 대기업 가운데 사망 노동자가 가장 많았다. 같은 기간 승강기업계에서 20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는데 현대엘리베이터가 절반을 차지했다.
송 대표는 11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 죽음의 외주화 문제와 관련해 다른 승강기 대기업 대표들과 함께 증인으로 출석했다.
송 대표는 당시 “안전사고가 많이 발생한 동종업계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상당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한국의 토종기업으로서 더 안전한 현장을 만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현대엘리베이터 관계자는 “이번 일을 계기로 협력업체와 협력관계를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서로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행정처분 등과 관련해서는 법에서 정한 절차 내에서 입장을 설명하고 일부 오해가 있는 부분을 잘 소명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승강기업계에서 발생한 안전사고와 관련해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안전한 일터를 향한 국민의 바람을 충분히 공감하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안전한 일터가 될 수 있도록 만반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덧붙였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