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 팔을 걷어붙였다.
공정거래법 전면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않아 본격적으로 일감 몰아주기 제재에 속도를 내기 어려운 상황임에도 적극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26일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공정위의 일감 몰아주기 제재와 관련된 움직임이 11월 들어 활발해 졌다.
공정위는 이번주 중으로 한화케미칼과 한익스프레스에 일감몰아주기 부당지원 혐의와 관련해 심사보고서를 보낼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익스프레스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누나인 김영혜씨가 특수관계자들과 지분의 51.97%를 들고 있는 회사다.
호반건설과 관련해서는 사주인 김상열 회장 일가의 불공정 경쟁 및 부당내부거래 혐의를 놓고 조사에 착수했다. 태영그룹에 소속된 SBS와 관련해서도 현장조사 등이 진행 중이다.
아모레퍼시픽, SPC, 미래에셋 등에는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해 최근 심사보고서를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모두 11월 들어 벌어진 일이다.
공정위는 기업이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를 포착하면 담당부서의 조사를 거쳐 심사보고서를 작성한다. 심사보고서를 작성한 뒤에는 제재 대상기업에 보내 의견을 듣고 공정위 전원회의나 소회의 의결을 통해 제재 규모를 결정한다.
조 위원장은 취임할 때부터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근절을 주요 4개 과제 가운데 하나로 꼽을 정도로 관련 제재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여러 차례 공식 발언에서는 기업의 규모에 관계없는 엄정한 법 집행을 강조하며 공정위의 일감 몰아주기 제재가 공시대상기업집단이나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등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문제는 현행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일감 몰아주기 제재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공정거래법 제23조의 2에에 따르면 일감 몰아주기의 규제 대상은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다. 공시대상기업집단은 자산총액 5조 원 이상인 기업집단이다.
공시대상기업집단에 해당하지 않으면 상대적으로 공정위의 입증이 어려운 공정거래법 제23조의 불공정거래행위 항목에 해당돼야 제재가 가능하다.
공시대상기업집단에 해당되더라도 동법 시행령에 따라 총수일가 등 특수관계인의 계열회사 지분이 상장사는 30%, 비상장사는 20%가 넘어야 규제 대상이 된다.
특수관계인의 상장 계열회사 지분조건인 30%도 비교적 높다는 지적이 있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공정거래법 전면개정안에는 상장 계열회사의 특수관계인 지분조건이 20%로 낮아졌다.
공정거래법 전면개정안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대상인 계열회사가 지분을 50%이상 보유한 자회사도 일감 몰아주기의 규제대상 회사로 포함시켰다.
공정거래법 전면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기업은 2018년 기준 231개에서 607개로 늘어나게 된다.
공정거래법 전면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지연되는 가운데 기업들은 미리 대비해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회피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SK그룹의 지주회사인 SK는 지난해 총수인
최태원 회장과 특수관계인의 지분이 30.63%에서 29.08%로 낮아졌다.
SK는 일감몰아주기 규제대상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내부거래 비중이 2017년 39.33%에서 2018년 46.89%로 높아졌다.
SK외에 호반건설, 하림지주 등도 일감 몰아주기 제재와 관련해 법령의 사각지대로 회피했다는 의혹이 있다.
공정위에 따르면 일감 몰아주기 제재의 사각지대에 있는 회사는 효성그룹이 31개, 넷마블이 18개, 신세계와 하림 및 호반건설이 각 17개를 보유하고 있다. 공정위는 총수일가 등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이 20~30%인 상장사 또는 제재 대상회사의 지분율이 50%가 넘는 회사를 사각지대 회사로 분류한다.
일감 몰아주기 제재의 사각지대에 있는 333개 기업들의 지난해 내부거래 규모가 27조5천억 원으로 제재 대상기업의 2018년 내부거래 규모인 9조2천억 원의 3배 정도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