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218억 원.”
금호산업 채권단이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에게 1조 원이 넘는 금호산업 매각가격을 제시했다.
채권단이 실사가격보다 2배 가까이 높게 책정한 것은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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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 |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한때 박삼구 회장의 사업을 돕는 관계였는데 이번에 큰 짐을 안겨준 모양새가 됐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호산업 채권단은 금호산업 매각가로 1조218억 원을 확정하고 우선매수청구권을 쥔 박삼구 회장에게 이를 통보했다.
채권단이 제시한 가격은 회계법인이 산정한 금호산업 주당 3만1천 원의 가치에 프리미엄 90%(2만8천 원)를 더한 것이다. 주당 가격은 5만9천 원이다.
채권단은 금호산업 지분 57.6%를 보유하고 있다. 박 회장은 금호산업 지분 50%+1주(1732만 주)에 대한 우선매수청구권을 보유하고 있다.
채권단이 박 회장에 제시한 금액은 애초 시장의 예상을 훨씬 웃도는 것이다. 채권단은 이에 앞서 단독입찰에 참여했던 호반건설이 제시한 6천7억 원이 기대치에 못 미친다는 이유로 유찰시켰다. 이에 따라 매각협상이 7천억~8천억 원 수준에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됐다.
채권단이 1조 원이 넘는 매각가를 책정한 것은 전체 채권단회의에서 14.7%의 의결권을 보유하고 있는 미래에셋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홍기택 산업은행회장도 금호산업 매각논의가 본격화할 무렵 “지분이 가장 많은 미래에셋이 주도적으로 가격협상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책은행으로서 자칫 '헐값매각' 논란을 의식해 재무적투자자를 대표하는 미래에셋에 협상 주도권을 넘긴 것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금호산업 지분 8.8%를 보유한 최대 단일주주다. 미래에셋은 금호산업 매각이 시작된 무렵부터 줄곧 1조 원대 매각을 주장해 왔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자산운용사로서 투자원금 이하로 팔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2006년 당시 금호그룹 계열사였던 대우건설 재무적투자자로 나섰다. 그 뒤 2009년 말 금호산업이 워크아웃을 개시할 당시 주당 6만 원에 금호산업 주식으로 출자전환했다.
이번에 채권단이 주당 5만9천 원으로 매각가를 책정한 것은 미래에셋자산운용의 투자원금 회수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채권단과 박 회장이 경영권 프리미엄 가격에 대한 의견차이가 워낙 커 앞으로 협상에서 이견을 좁힐 수 있을지 미지수다. 박 회장은 주당 3만1천 원의 실사가격에 이미 경영권 프리미엄이 포함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채권단을 사실상 대표하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이 가격협상에서 한 발도 물러서지 않을 경우 박 회장은 경영권을 되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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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
하지만 박 회장과 협상이 결렬돼 향후 재매각을 추진할 경우 채권단도 어려운 입장에 놓일 수 있다. 적임자를 찾기 쉽지 않아 금호산업 매각이 장기표류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 등 채권단 일부도 이런 고민 때문에 가능한 박 회장과 협상을 적절한 수준에서 마무리하려 했던 것이다.
금호산업과 박 회장의 운명은 결국 미래에셋자산운용의 태도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금호산업 매각 건을 이번 기회에 마무리하려는 일부 채권단의 의견을 받아들여 박 회장과 적절한 가격수준에서 합의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미래에셋자산운용이 끝까지 투자금회수 원칙을 고수하면 박 회장의 재무적 부담이 커지거나 제3자 재매각이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박삼구 회장과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의 인연도 주목된다.
두 사람은 광주지역 출신으로 동향이면서 광주일고 선후배 사이다.
박현주 회장은 고려대를 졸업한 뒤 동원증권에서 일하다 1997년 7월 미래에셋캐피탈을 출범해 현재 20여개 금융계열사를 거느린 거대금융그룹을 키워냈다. 박 회장은 특히 1999년 12월 미래에셋증권을 설립해 2000년대 초반 증시 활황기를 이끌었다.
박현주 회장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을 인수할 때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재무적 투자자로 나서 박삼구 회장을 도왔다.
그러나 2009년 말 금호아시아나그룹 계열사들이 워크아웃을 추진할 당시 미래에셋자산운용이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아시아나항공 등 주력 계열사를 팔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박현주 회장과 박삼구 회장 사이가 소원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금호산업 인수전 초반 미래에셋자산운용이 박삼구 회장의 백기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올 때에도 두 사람의 관계로 볼 때 억측이라는 말도 나돌았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이런 시각에 대해 자산운용사로서 투자자들의 이익을 고려해 판단할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