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롯데케미칼의 포트폴리오 조정을 위한 인수합병에 공을 들이고 있다.
신 회장은 고부가제품(스페셜티) 육성에 주력하는 방향으로 롯데케미칼의 사업구조를 개편하고 있는데 대형 인수합병을 통해 고부가제품 사업을 빠르게 강화하려는 것으로 파악된다.
12일 롯데케미칼에 따르면 신 회장은 롯데케미칼이 히타치케미칼 지분 51%의 인수를 위한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에서 탈락했지만 인수 희망을 완전히 접지 않고 있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히타치케미칼 지분 51%를 인수하는 데 작게는 8조 원에서 크게는 15조 원까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초대형 매물”이라며 “규모가 워낙 큰 만큼 우선협상대상자의 협상이 틀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히타치케미칼은 리튬이온배터리 음극재 등 전자재료와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등 화학사업의 고부가제품을 폭넓게 생산하는 회사다.
롯데케미칼이 올레핀족과 방향족 등 고부가 제품의 재료로 쓰이는 기초유분 생산에 강점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업계에서는 히타치케미칼이 롯데케미칼의 ‘맞춤매물’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롯데케미칼이 최종적으로 히타치케미칼의 인수에 실패하더라도 신 회장은 다른 인수합병 대상을 계속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히타치케미칼과 마찬가지로 고부가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회사들이라면 모두 잠재적 인수대상이 될 수 있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만약 히타치케미칼 인수에 실패한다면 다른 대형 매물을 물색할 것”이라며 “적당한 매물이 인수합병시장에 나온다면 곧바로 분석팀을 꾸려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작은 회사의 인수합병은 내부에서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신 회장은 롯데케미칼의 중장기 성장을 위한 사업구조 개편을 마무리짓기 위해서는 한 차례 대규모 인수합병이 불가피하다고 바라보는 것으로 분석된다.
신 회장은 그동안 기초유분에 집중해왔던 롯데케미칼의 사업구조를 고부가제품 위주로 전환하고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성장전략 아래 롯데케미칼은 2020년 1월 폴리카보네이트와 건자재 생산계열사인 롯데첨단소재를 흡수합병한다.
롯데케미칼이 결국 고부가제품에 특화된 다른 계열사 롯데정밀화학까지 흡수합병할 것이라는 전망도 화학업계에 파다하다. 롯데케미칼 측에서도 이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업계에서는 이 계열사들의 흡수합병을 롯데케미칼의 포트폴리오 전환작업의 뼈대로는 볼 수 없다는 시선도 있다. 롯데케미칼의 규모에 맞는 고부가제품 사업역량을 갖추려면 그룹 내부 차원의 포트폴리오 조정만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롯데첨단소재의 실적이 이미 롯데케미칼의 연결실적에 반영되고 있으며 롯데케미칼이 롯데첨단소재의 주력 제품인 폴리카보네이트를 생산하고 있는 만큼 롯데첨단소재의 흡수합병은 개별사업의 효율성을 끌어올리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롯데정밀화학도 롯데케미칼과 비교해 사업규모의 ‘급’이 맞지 않아 극적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롯데케미칼은 2018년 연결 매출 16조5천억 원을 냈는데 롯데정밀화학의 2018년 매출은 1조4천억 원에 그쳤다.
반면 히타치케미칼은 2018년 매출 7조2500억 원을 냈을 만큼 규모가 큰 회사다. 이 정도의 대형매물이 아니라면 신 회장의 눈에 차지 않을 수 있다.
물론 롯데케미칼이 롯데첨단소재와 롯데정밀화학의 합병을 마치면 두 계열사가 생산하던 제품의 생산 과정이 수직 계열화되는 만큼 장기적 성장 동력을 마련하게 된다.
그러나 신 회장은 이 사업들의 성장을 마음 편히 기다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기초유분의 공급과잉으로 촉발한 글로벌 화학업황의 부진 탓에 롯데케미칼의 실적이 빠르게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롯데케미칼은 2018년 영업이익 1조9674억 원을 거둬 2017년보다 32.8% 줄었다.
시장은 롯데케미칼이 올해 영업이익 1조1945억 원을 낼 것으로 내다보는데 이는 2018년보다 39.3% 줄어드는 것이며 2017년과 비교하면 59.2% 급감하는 것이다.
게다가 화학사업은 더 이상 화학사들만의 무대도 아니다. 정유사들이 원재료 나프타를 자체 생산할 수 있다는 이점을 앞세워 화학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이미 자회사 SK종합화학을 통해 화학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에쓰오일과 GS칼텍스는 새 화학설비를 짓기 위해 각각 5조 원, 2조6천억 원씩을 투자하는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롯데케미칼이 그동안 집중해 온 기초유분제품을 화학사업의 주력제품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신 회장은 롯데케미칼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고부가사업 위주로 재편하는 전략 전환에 긴 시간을 들일 여유가 그다지 많지 않은 셈이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