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앞줄 왼쪽 첫 번째)이 24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게임이 공정하게 진행되려면 룰이 제대로 갖춰져야 한다.
선거도 마찬가지다. 선거 관련 규정이 제대로 갖춰져있지 않으면 이를 악용한 위법, 탈법 등의 혼탁한 경쟁을 막기 어렵다.
하지만 공공단체 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은 2017년 12월 개정을 거쳤음에도 공정선거를 담보하기에 여전히 부족해 보인다.
내년 1월 농협중앙회장 선거에서 후보자들이 부정선거 유혹을 뿌리칠 수 있도록 위탁선거법에 ‘재판기간에 관한 강행 규정’을 추가하는 것이 시급해 보이는 이유다.
현행 위탁선거법은 재판기간을 제한할 수 있는 근거규정을 두고 있지 않아 위탁선거법을 위반하더라도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있다.
일단 농협중앙회장에 당선되기만 하면 임기 4년을 채울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위탁선거법에 구멍이 있기 때문이다.
위탁선거법과 달리 공직선거법은 선거범에 관한 재판을 1년 안에 마쳐 신속하게 위법 여부를 확정할 수 있는 규정을 두고 있다.
공직선거법은 제270조에 “선거범과 그 공범에 관한 재판은 다른 재판에 우선해 신속히 해야 하며 그 판결의 선고는 제1심에서는 공소가 제기된 날부터 6월 이내에, 제2심 및 제3심에서는 전심의 판결의 선고가 있은 날부터 각각 3월 이내에 반드시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기간 강행 규정이 위탁선거법에 추가되면 농협중앙회장 선거문화를 바꾸는 데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농협중앙회장에 당선되고 1년 만에 내려오지 않으려면 후보자 스스로가 위탁선거법 규정을 꼼꼼히 살피며 선거운동을 벌여야하기 때문이다.
농협중앙회장 선거와 관련해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의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적용되는 규정을 도입하자는 것이 너무 지나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농협중앙회장은 농협조합원 250만 명을 대표하는 자리다. ‘농민대통령’이라 불리는 만큼 엄격한 잣대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7월 위탁선거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위탁선거법에도 재판기간 강행 규정을 신설한다. 개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다.
하지만 직선제, 연임제 등을 담은 농협법 개정 논의와 달리 위탁선거법 개정 논의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 않다.
26일부터 진행되는 대정부질문, 10월2일부터 열리는 국정감사 등 국회일정을 고려하면 국회에서 위탁선거법 개정안이 빠르게 통과돼 내년 농협중앙회장 선거에 적용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내년 농협중앙회장 선거도 과열양상에 따른 사전 선거운동 등 우려가 높다는 뜻이다. 이미 출마를 고려하고 있는 전·현직 농협 조합장은 7명이 넘는다.
위탁선거법에 재판기간을 제한하는 규정이 도입되지 않으면 농협중앙회장이 임기 내내 부정선거 혐의로 재판정을 오가는 상황이 또 다시 되풀이될 수 있다.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은 2016년부터 3년 넘게 위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았고 임기를 6개월도 채 남겨두지 않은 24일 2심에서 당선무효형을 벗어났다.
임기 내내 재판에 불려다녀야 했던 상황은 김 회장이 자초한 데서 비롯된 것일 수 있지만 제도적 규정미비로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농협중앙회에 결코 바람직한 일일 수 없다. [비즈니스포스트 고두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