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배가 출항하는 과정은 간단치 않다.
배의 형태와 기능을 갖추고 이름을 붙였다고 당장 항해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배가 물에 뜨고 나서도 의장작업과 시운전을 거친다.
대형선박은 배를 물에 띄우고 이름을 붙이는 진수식 이후 출항을 하기까지 1년이 넘는 적지 않은 기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새 선장을 맞은 지 1년이 지난 LG그룹에서도 이제야 비로소 먼 바다로 항해를 떠나는 첫 기적소리가 들려온다. 지난해
구광모 회장의 취임이 ‘
구광모호’라는 이름을 붙이고 물에 띄우는 진수식이었다면 이제
구광모호의 색깔과 방향을 지니고 본격적으로 긴 항해를 떠날 채비가 갖춰졌다.
구 회장이 24일 회장 취임 후 처음으로 경기도 이천 LG 인화원에 계열사 사장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진행하는 최고경영자(CEO) 워크숍은 그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구 회장은 워크숍에서 '근본적 변화'를 강조했다. 그는 “사업 방식과 체질을 철저하게 변화해 나가야 한다”며 “LG가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근본적이고 새로운 변화를 빠르게 실행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각오로 변화를 가속해 달라”고 말했다.
LG그룹은 보통 매년 9월경 CEO 워크숍을 진행하지만 지난해는 구 회장 취임 직후 경영권 승계와 맞물리며 열리지 않았다. 이 때문에 올해
구광모 회장체제에서 열린 CEO 워크숍은 적지않은 의미를 지닌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 자리에서 구 회장이 '근본적이고 새로운 변화'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LG그룹 전반에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몰아칠 것으로 보인다.
구 회장에게 지난 1년여의 시간은 배로 치면 진수식 이후 의장을 새로이 하고 시운전을 하는 기간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 기간 LG그룹의 역량을 충분히 시험한 구 회장에게 이제 남은 것은
구광모호의 출항을 선언하고 본격적으로 먼 바다로 나가는 일이다.
구광모호는 이날 워크숍에서
권영수 부회장,
조성진 부회장,
신학철 부회장, 정호영 사장 등과 경영철학을 공유했는데 다음 항로 지시는 연말 임원인사로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임원인사에 인화를 바탕으로 한 안정유지 기조가 다분히 포함됐다면 이번에는 더욱 선명하게 책임경영과 성과주의의 LG그룹의 방향성을 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과감한 세대교체와 젊은 인재의 발탁, 외부 전문가의 폭넓은 영입 등이 점쳐지는 이유다.
구 회장은 지난해 별세한 부친
구본무 전 회장의 뒤를 이어 6월 그룹 회장으로 취임했다. 23년만에 LG그룹이
구본무호에서
구광모호로 깃발을 바꿔 달았다.
하지만 구 회장은 취임한 뒤에도 그룹 회장이 아닌 지주회사 LG의 대표로 불러달라며 몸을 낮추는 모습을 보였다. LG그룹의 변화 역시 예상했던 것보다 더디게 이뤄졌다.
연말인사에서 교체 가능성이 점쳐졌던 6명의 부회장 중 5명이 자리를 지킨 것이 대표적이다.
외부인사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이 들어오면서 박진수 전 부회장이 물러나고
권영수 LG 부회장과 하현회 LG유플러스 부회장이 옷을 바꿔입기는 했지만 LG그룹 전체의 판을 바꿨다고 볼 만큼의 큰 틀의 변화는 아니었다.
그러나 구 회장 취임 1년 넘게 지난 지금 어느덧 LG그룹은 과거의 LG그룹과 사뭇 다른 그룹이 됐다고 할 만큼 달라져 있다. 재계 안팎의 많은 이들이 “LG가 달라졌다”는 말을 한다.
구본무 전 회장 시절 LG하면 ‘인화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 LG그룹 주요 계열사들은 완전히 다른 행보를 보인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싸움도 불사하겠다는 공격적 의지로 충만하다.
LG유플러스는 방통위에 SK텔레콤과 KT의 불법보조금을 신고했고 LG화학도 SK이노베이션을 영업비밀 침해로 제소했다. LG전자도 삼성전자의 TV 기술을 비판하면서 공정위에 허위과장광고로 신고했다.
LG그룹은 실적이 부진한 계열사에도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 연말인사에서 유임됐던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을 정호영 사장으로 교체하고 희망퇴직을 진행하는데 그 규모는 역대 최대 수준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구 회장체제에서 LG그룹은 책임경영과 성과주의로 경영방침을 분명히 내걸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