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이 그룹 경영을 총괄하며 사실상 '3세경영'을 시작한지 1년이 됐다.
세대교체부터 시작해 인재채용, 인사관리, 조직의 일하는 방식 등 기업 문화를 빠르게 혁신했고 성과도 냈지만 ‘지배구조 개편’ 과제는 신중모드를 보이고 있다.
그룹 지배력의 안정적 승계와 투명한 지배구조 구축을 함께 이뤄내야 하고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주들의 동의도 이끌어내야 한다는 점에서 정 수석부회장은 지배구조 개편에 신중함을 거듭하고 있다.
16일 현대차그룹 안팎의 관계자 말을 종합하면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이 올해 안에 전격적으로 추진될 가능성은 낮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지배구조 개편보다 실적 개선에 집중해야 한다는 분위기”라며 “올해 안에 지배구조 개편이 진행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관련 논의는 그룹 내에서도 기획조정실 소수 인원 사이에서만 극비리에 공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동안 증권가에서 수많은 시나리오가 나왔지만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한 현대차그룹의 움직임은 드러난 것이 없다.
지난해 3월 ‘사업구조 개편 및 지배구조 개편’ 방안을 전격적으로 발표했으나 주주들의 반발에 부딪혀 철회했던 경험 탓에 쉽게 다음 발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섣부르게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했다가 또 다시 좌초된다면 동력이 크게 떨어져 지배구조 개편이 상당기간 늦춰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현대차그룹 내부에서는 그동안 고민한 여러 방안들을 더욱 다듬어 실현 가능성을 최대한 높이자는 의견이 우세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적 개선속도가 더딘 점도 지배구조 개편의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꼽힌다.
현대차는 올해 상반기에 자동차부문에서 매출 39조6330억 원, 영업이익 1조5460억 원을 냈다. 2018년 상반기보다 매출은 9.4%, 영업이익은 81.7% 늘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놓고 현대차그룹에 ‘청신호’가 켜졌다고 보긴 아직 이르다. 차량 라인업 강화와 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 중심의 판매 확대 등이 실적에 기여했지만 원/달러 환율 상승 등에 따른 환율효과도 실적 증가에 상당히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차 모두 1~8월 글로벌 누적 자동차 판매량에서 모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후퇴한 수치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가야할 길은 멀다는 게 현대기아차 내부의 분위기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배구조 개편이라는 과제에 대내외적 요소가 다방면으로 얽혀 있는 탓에 결단이 쉽지 않은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 가운데 가장 유력한 방안으로 꼽히는 것은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이다.
전장부품전문기업을 그룹의 지배회사로 삼고 이를 정 수석부회장이 지배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증권가는 본다. 미래차 시대에 핵심이 될 부품기업을 통해 그룹 전체를 지배하면서 현대글로비스를 통한 지분 승계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 수석부회장은 현대모비스와 현대차 주식은 거의 들고 있지 않지만 현대글로비스 주식은 23% 넘게 보유하고 있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이 지난해 3월 발표했던 지배구조 개편안도 이 시나리오와 대동소이하다.
하지만 현대글로비스를 활용하는 데 합병비율 산정 등에서 ‘공정하게 해야 한다’는 주주들의 요구를 어떻게 담을 것인지를 고민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들이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현대차그룹은 이미 대외적으로도 지배구조 개편에 조급해하지 않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현대차는 7~8월에 해외 기관투자자 등을 대상으로 진행한 기업설명회에서 지배구조 개편 현황을 묻는 질문에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지배구조 개편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 수석부회장도 5월 열린 칼라일그룹 초청 단독대담에서 “투자자들과 현대차그룹 등 모두가 함께 만족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여러 옵션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들어 주요 이해관계자와 소통을 강화하고 있는데 지배구조 개편을 염두에 둔 행보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은 전문성을 지닌 외부인의 사외이사 영입, 이사회 중심의 경영기조 안착, 내외부 경영 감시체제 구축 등 투명한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있다며 해외 기관투자자들에게 이런 내용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