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대표이사 부회장이 27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참사 진상규명 청문회에서 피해자들에게 고개를 숙여 사과하고 있다.
최 부회장은 가습기살균제참사 발생 당시 SK케미칼의 대표이사였다. 또한 현재는 SK케미칼의 모기업인 SK디스커버리의 대표이사 부회장이다. 최 부회장은 SK디스커버리 지분 40.18%를 보유한 최대주주기도 하다.
채동석 부회장 역시 애경산업의 대표이사 부회장일 뿐 아니라 애경그룹의 지주사인 AK홀딩스 지분 9.34%를 보유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가습기살균제참사의 직접적 관계자이자 관계 기업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오너경영인이다.
책임있는 오너경영인이 공식적으로 사과했으니 SK와 애경그룹이 8년 만에 피해자들에게 ‘최소한의 성의’는 보인 셈이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가습기참사와 관련된 두 기업의 오너경영인들에게 진정으로 바랐던 것은 단순한 '사과'가 아니라 구체적 대책과 보상안 등 '책임'을 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럼에도 최 부회장과 채 부회장의 입에서는 끝내 ‘책임지고 피해를 보상하겠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피해보상할 것인지 방안도 내놓지 않았다.
“법적 판단이 내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책임지겠다고 하는 것은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있어 어려운 부분이 있다.” 최 부회장은 청문회장에서 책임과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채 부회장 역시 “재판 결과가 나오면 거기에 맞는 대응을 하겠다”고 말했다.
물론 최 부회장과 채 부회장이 쉽사리 ‘책임지겠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두 사람이 책임지겠다고 말하는 것은 결국 회사의 잘못을 인정하는 셈이고 이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재판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회사의 주가를 떨어뜨려 주주들에게 예기치 못한 피해를 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최 부회장과 채 부회장에게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것은 이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두 기업의 이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두 기업이 정말로 ‘책임을 지겠다’는 각오가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최 부회장과 채 부회장은 ‘재판 결과를 기다리고 거기에 맞는 책임을 지겠다’가 아니라 ‘법적 책임과 관계없이 피해자 분들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갈 수 있는 조치,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어야 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사회가 보호해야 할 대상인 아이들이 기업과 사회의 무책임 때문에 죽음에까지 이르렀다는 점에서 다시는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후속대처를 확실히 진행해야 하는 사안이다.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4.16 세월호참사와 함께 특별조사 대상으로 선정한 것 역시 이런 이유에서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이미 발생한 사건이다. 이미 잃어버린 아이들의 목숨과 부모들의 피눈물을 완벽하게 보상할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어쩌면 지금 와서 기업들의 책임과 피해자들을 향한 보상을 논의하는 것은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는 ‘사후약방문’과는 다르다. 아직 외양간에는 수많은 소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유사한 사건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책임있는 주체들의 명확한 책임 인식과 진정성 있는 후속조치다. 무엇보다 오너경영인들이 책임을 지고 명확하게 대책과 보상을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앞으로 남아있는 재판 과정, 조사 과정에서 SK그룹과 애경그룹의 ‘진정성 있는’ 태도를 기대한다. [비즈니스포스트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