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기구(WTO)에서 한국의 개발도상국 제외 가능성 등 대내외적 농업환경 변화가 예상되면서 공익형 직불제(직접지불제) 도입이 농업정책의 중점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21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미국이 한국 등 일부 국가를 세계무역기구 개발도상국에서 제외를 추진하는 움직임에 대비해 농가소득을 보전하는 방안으로 공익형 직불제 도입이 검토되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세계무역기구 개발도상국 제외 가능성을 두고 협상대응반을 운영하고 있다”며 “공익형 직불제를 포함해 차기 세계무역기구 협상과 관련한 방안 마련과 함께 농업체질 강화 등 중장기 방향성을 놓고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7월 일부 국가의 세계무역기구 개발도상국 지위를 문제 삼으며 90일 내 실질적 진전을 이뤄내지 못하면 이 국가에 관한 개발도상국 대우를 미국이 일방적으로 중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국이 세계무역기구에서 개발도상국 지위를 잃게 되면 국내 농산물 보호를 위해 수입 농작물을 대상으로 한 고율의 관세를 더이상 매기지 못하게 된다. 수입 농작물 관세율은 참깨 630%. 쌀 530%, 마늘 360%, 보리 324% 등이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세계무역기구에서 논의가 진행돼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 지위를 잃어도 곧바로 관세율을 낮춰야 하는 건 아니며 향후 세계무역기구 농업협정을 통해 관세율을 인하하게 된다.
개발도상국 제외에 어느 정도 준비할 시간은 있지만 농업계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데다 무역장벽 철폐에 따른 농가소득 감소에 미리 대응하는 차원에서 공익형 직불제 도입이 검토되는 것이다.
세계무역기구는 정부가 개입하여 관세 등으로 시장가격에 영향을 주는 시장가격 지지정책을 제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개발도상국 지위 상실을 대비해 시장가격 지지정책을 축소하고 이에 따른 농가소득 감소를 보상하는 차원에서 직접지불정책의 비중을 늘리고 있다.
농식품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익형 직불제는 쌀 중심으로 지불되던 직불금을 모든 작물에 확대 적용하는 방안으로 농가의 소득안정에 도움을 주고 쌀 이외의 농산물로 농업구조를 바꾸는데 기여할 것으로 파악된다.
국내 농업에서 쌀 농가의 비중은 쌀농가 지원정책과 쌀 농사의 높은 기계화 수준 등의 이유로 55.6%에 이른다. 농식품부는 쌀 중심의 직불금제도 구조로 전체 직불금 예산의 80% 가량을 쌀 농가에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쌀소비 감소의 영향으로 2000년 이후 19년 동안 쌀 공급이 수요보다 많은데도 쌀 농가의 소득 보전을 위한 지원이 편중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농식품부는 공익형 직불제를 통해 쌀 이외 농가에 관한 지원을 쌀 농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동시에 밭 작물재배 자동화 기술 개발과 판로를 확보한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공익형 직불제 도입 예산 확보와 관련해 부처 사이 이견이 커 조율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공익형 직불제 예산규모를 2조4천억 원에서 최대 2조6천억 원으로 설정해 농지 규모에 따라 직불금을 다르게 지급하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기획재정부는 기존 직불제 예산 편성 기준인 1조8천억 원 수준을 지키겠다는 뜻을 보인다.
경대수 자유한국당 의원은 최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공익형 직불제는 충분한 예산도 없이 기획하고 다뤄지게 되면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며 “최소 3조 원의 예산이 있어야 공익형 직불제가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공익형 직불제 도입에 필요한 '농업소득의 보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 통과가 9월 중으로 안 되면 2020년 공익형 직불제 시행이 힘들어질 가능성도 있다.
김현수 농식품부 장관 후보자는 12일 지명 직후 가진 기자들에게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농업인들의 어려움을 가까이에서 지켜봐 책무가 한층 무겁다”며 “공익형 직불제 개편 등 농정개혁을 속도감 있게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윤종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