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의 대형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베라크루즈가 올해 안에 단종될 가능성이 높다.
베라크루즈가 단종되면 또 하나의 자동차가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베라크루즈의 빈자리는 당분간 맥스크루즈가 책임지게 된다.
베라크루즈 이전에도 많은 차들이 단종되는 수순을 밟았다. 베라크루즈 역시 단종된 테라칸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출시된 차다.
◆ 왜 단종될까
현대차는 틈새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내놓은 차에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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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차 베라크루즈 |
대형세단 다이너스티는 1996년 5월 출시됐다가 2005년 7월 단종됐다. 다이너스티는 1999년 4월 에쿠스가 출시되기 전까지 현대차를 대표하는 플래그십 세단이었다.
다이너스티가 처음 출시됐을 때 예상보다 많은 판매량에 차량 인도가 늦어져 수많은 독촉전화에 시달리기도 했다. 다이너스티 리무진은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마지막 차이기도 했다.
하지만 다이너스티는 그랜저와 에쿠스 사이에서 판매가 부진해 결국 단종됐다. 당시 현대차가 제네시스의 출시를 앞두고 있던 점도 영향을 미쳤다.
다이너스티처럼 두 차종 사이에서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단종된 차로 마르샤가 있다.
마르샤는 1995년 출시돼 1998년 단종됐다. 현대차는 쏘나타와 그랜저 사이를 메우기 위해 마르샤를 야심차게 내놓았는데 마르샤는 3년 만에 판매부진으로 단종됐다.
마르샤는 크기는 쏘나타에 가까웠던 반면 가격은 그랜저와 비슷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 때문에 이 가격이면 차라리 그랜저를 산다는 말을 들었다.
마르샤는 1997년 말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입지가 더욱 좁아졌고 결국 단종의 길을 걸었다. 대신 마르샤의 후속모델로 개발되던 차량은 그랜저XG로 출시돼 높은 인기를 누렸다.
◆ 이름 바뀌고 명맥 잇는 엘란트라
이름이 바뀐 채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차도 있다.
올해 하반기 완전변경 모델 출시를 앞두고 있는 아반떼는 그 시초가 엘란트라다. 아반떼는 아직도 미국에서는 엘란트라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다.
엘란트라는 1986년 프로젝트명 ‘J’로 시작해 현대차가 자체적으로 디자인해 개발한 차량이다. 국산 준중형세단 최초로 운전석 에어백과 바퀴잠김방지제동장치(ABS)를 갖췄다.
엘란트라는 1990년 10월부터 1995년 하반기 단종될 때까지 국내에서 58만여 대, 해외에서 36만여 대가 판매되는 등 100만 대에 가까운 판매실적을 올렸다.
그 뒤 엘란트라의 후속모델로 아반떼가 출시됐다. 아반떼는 지난해까지 세계에서 1천만 대 이상이 팔린 현대차의 대표모델이다.
현대차는 올해 하반기 6세대 아반떼를 출시하며 엘란트라의 명성을 이어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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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왼쪽)이 1999년 갤로퍼 시제차를 시승한 뒤 당시 이충구(가운데) 연구개발담당 사장에게 개선점을 지시하고 있다. |
◆ 정몽구 회장의 위상 높인 갤로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개발을 주도한 차도 있다.
정 회장은 현대정공(현대모비스)에서 경영자의 길로 들어섰다. 당시 현대차는 ‘포니 정’으로 불리던 정세영 회장이 경영했다.
정몽구 회장은 현대차가 승용차에 주력하는 사이 사륜구동 SUV를 개발하기로 했다. 정 회장의 주도로 1991년 갤로퍼가 탄생했다.
갤로퍼는 출시 직후 3개월 동안 3천여 대 가까이 팔리며 돌풍에 가까운 인기를 끌었다. 이듬해인 1992년 2만4천여 대가 판매되면서 국내 4륜구동 시장의 절반이 넘는 점유율을 기록했다.
갤로퍼의 성공으로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의 후계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됐다. 갤로퍼는 2003년 단종됐지만 현재도 8만7560대가 등록돼 있다. 단종된 지 10년이 넘은 모델 가운데 코란도와 무쏘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 한국에서 단종, 외국에서는 잘 나가는 차
국내에서 단종됐다 부활한 엑센트는 미국과 신흥국의 자동차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지난 4월 미국에서 소형차 1만1010대를 판매했다. 시장점유율 25%로 이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이 가운데 엑센트는 총 8208대나 팔리며 전체 소형차 판매량을 끌어올렸다.
국내에서 단종된 베르나도 이집트에서 높은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베르나는 지난 1~2월 이집트 현지 조립생산 방식으로 4144대가 판매돼 CKD(반조립제품) 차량 가운데 판매량 1위를 차지했다.
베르나는 저렴한 가격과 품질을 무기로 이집트 자동차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
◆ 원조 국민차 엑셀
쏘나타 이전의 국민차 엑셀도 있다.
엑셀은 1985년 출시돼 1991년까지 6년 연속 가장 내수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렸다. 1994년 단종되기 전까지 국내에서 총 281만 대 넘게 팔렸다. 1990년 대 길거리 차 대부분이 엑셀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엑셀은 미국 자동차시장의 높은 벽도 넘었다. 미국에 출시된 첫 해 16만 대가 팔렸고, 수출 3년 만에 100만 대를 돌파했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춘은 당시 엑셀에 대해 “이 차가 미국 역사상 가장 빠른 매출 신장률을 기록한 수입품”이라고 평가했다.
엑셀의 뒤를 잇기 위해 출시된 차가 엑센트다. 엑센트는 1994년 4월 판매되기 시작해 단종된 1999년까지 154만6천여 대가 생산됐다.
현대차는 그 뒤 판매량이 저조한 베르나의 후속 모델을 출시하면서 엑센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 결과 전혀 다른 모델임에도 엑센트라는 이름의 후광에 힘입어 40만 대가 넘게 팔렸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