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이 애초 호텔사업을 일부 정리하려 했던 이유는 KCGI의 요구에 일정 부분 응답하기 위해서였다.
KCGI는 올해 1월 한진그룹에게 ‘한진그룹의 신뢰회복을 위한 프로그램 5개년 계획’을 제시하며 “만성적자를 보이고 있는 칼호텔네트워크와 LA윌셔그랜드호텔, 와이키키리조트, 송현동 호텔부지, 제주도 파라다이스 호텔, 왕산마리나 등 항공업과 시너지가 낮은 사업부문의 투자 당위성을 원점에서 재검토 해야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따라 한진그룹은 2월 한진그룹 중장기 비전 2023을 발표하면서 “송현동 부지를 상세한 일정과 방안을 마련해 올해 안으로 매각하고 제주도 파라다이스 호텔도 올해 안으로 사업성 검토를 다시 진행한 뒤 개발가치가 매각가치보다 낮으면 매각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델타항공의 한진칼 지분 매입으로 KCGI가 수세에 몰린 현재 상황에서는 굳이 호텔사업을 정리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 사실이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델타항공의 한진칼 지분 매입으로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조 회장 일가 측에서도 호텔사업 매각은 고려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복귀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는 점 역시 조 회장이 호텔사업 정리를 재검토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조 전 부사장은 2018년 4월 한진그룹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기 전까지 한진그룹의 호텔사업을 전담하고 있는 계열사인 칼호텔네트워크의 부사장으로 일했다. 조 전 부사장 본인도 호텔사업에 애착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 회장은 경영권을 다지기 위해 남매들의 협력이 필요한데 조 전 부사장이 한진그룹 경영에 복귀하면 한진그룹의 호텔사업을 넘겨주는 대신 조 전 부사장의 협력을 얻는 그림을 그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한진그룹의 호텔사업과 관련해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송현동 부지의 매각은 그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와 지자체 등이 이 부지를 매입해 공원, 문화시설 등으로 개발하는 것을 적극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원순 서울 시장은 12일 열린 서울시의회 시정 질문에서 “송현동 부지는 중앙정부가 매입해 일부는 공원화하고 일부는 우리 전통문화를 널리 알릴 수 있는 시설이 들어오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김영종 종로구청장도 11일 열린 토론회에서 “송현동 부지는 관광객과 시민의 이동이 많은 중심지”라며 “몇몇만 사용할 호텔보다는 누구나 올 수 있는 숲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진그룹에게 호텔사업은 몇 년째 적자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아픈 손가락’이다.
한진그룹에서 호텔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계열사인 칼호텔네트워크는 2018년 영업손실 80억1480만 원을 냈다. 칼호텔네트워크는 2015년부터 4년 동안 지속적으로 영업적자를 내고 있다. LA윌셔그랜드호텔을 운영하고 있는 한진그룹의 미국 계열사 한진인터내셔널 역시 적자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호텔사업이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과 별개로 호텔사업은 별세한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의 ‘숙원사업’으로 꼽힌다.
조양호 전 회장은 LA윌셔그랜드호텔에 2014년 2월부터 3년 4개월 동안 약 10억 달러(1조1580억 원)를 투자했다. 조 회장은 로스엔젤레스타임스(LAT)와 인터뷰에서 윌셔그랜드호텔과 관련해 “투자는 장기적으로 보고 하는 것이며 단기적 이익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호텔사업과 관련해 특별히 진전된 사항은 없다”며 “중장기 비전 2023에서 밝혔던 것처럼 관련 사항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