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은 24일 비즈니스포스트와 인터뷰에서 '기업 지배구조 규제가 기업을 옥죄는 것'이라는 일부 보수층의 견해를 향해 "기업가와 기업을 구분해 봐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잘못을 저지른 기업가를 단죄하는 것은 기업이 더욱 잘 되도록 보호하는 길”이라며 “기업과 기업가를 구분하지 못하다 보니 상식은 물론 정책이나 법까지 잘못 이해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채 의원은 힘쓰고 있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 문제를 놓고서도 "대상은 기업이 아닌 기업가"라며 "불법행위를 저지른 경영진을 처벌하는 건 기업을 더 잘 되게 보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강화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기업이 특정 계열사에 일감 몰아주기를 하면 중소기업이 시장에서 뒤떨어지도록 만든다. 일감 몰아주기 문제가 많이 제기되는 물류나 시스템통합(SI)이 초기 투자비용을 적게 들이는 업종이라 망해도 총수 일가가 감당해야 할 위험성이 크지 않은 분야인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예컨대 현대자동차그룹의 물류 계열사인 현대글로비스의 사례를 보면 화물차를 지입해 회사 물량을 운송한 뒤 수수료를 받는 방식으로 일감 몰아주기를 받아 막대한 매출을 올렸다. 삼성그룹의 시스템통합 계열사 삼성SDS도 규모가 커지자 중소기업에 하청을 줬다. 중소기업이 삼성SDS를 중간에 끼고 대금을 받으니 삼성그룹의 다른 계열사와 직접 거래할 때보다 버는 돈이 줄어드는 셈이다.
대기업의 물류나 시스템통합 계열사들이 국내 계열사의 일감 몰아주기에 의존하다 보니 물류업계의 UPS나 시스템통합업계의 오라클 같은 글로벌 대기업이 나타날 환경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시장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행위다.”
현대글로비스와 삼성SDS 외에도 수많은 대기업 계열사들이 일감 몰아주기 논란에 휩싸여 있다. 채 의원은 이런 기업을 겨냥해 관련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을 여러 차례 발의해 왔다.
5월 중순에 대표발의한 국세기본법 개정안도 일감 몰아주기에 관련된 부처인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의 정보 공유를 확대해 규제 효율성을 높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
- 국세기본법 개정안을 비롯한 일감 몰아주기 관련 법안을 계속 발의해 왔던 이유는 무엇인가?
“경제개혁연대에서 일하던 시절부터 제기해 왔던 문제와 관련된 입법을 진행하고 있다. 일감 몰아주기와 같은 기업 지배구조 개편은 공정위 등의 경제부처에만 연관된 사안이 아니다. 예를 들면 한진그룹 지배구조와 연결된 진에어 제재에 관련된 업무는 국토교통부 소관이다.
결국 모든 부처가 재벌개혁을 공동의 작업으로 바라봐야 하는데 그러질 않는다. 이 때문에 국세청과 공정위 같은 주요 부처만이라도 자료를 긴밀하게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해 국세기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비롯한 재벌개혁 문제와 관련해 정부에 바라는 부분이 있다면?
“시행령 개정이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 등을 법안을 발의해도 현재 정치구조상 의결이 힘들다. 이를 고려해 정부에 관련된 시행령을 개정해야 한다고 계속 요청해 왔다. 시행령은 정부가 의지만 있으면 바로 바꿀 수 있는데 그것조차 안 한다면 재벌개혁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2019년 4월에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시행령 개정안이 의결되는 성과도 내긴 했다. 이 시행령은 불법을 저지른 경영진의 취업 제한을 규정했지만 거의 사문화돼 있었다. 내가 2018년 국정감사 당시 법무부에 시행령 개정을 건의한 끝에 결국 경제사범의 취업 제한대상이 범죄행위로 재산상 손해를 입은 기업까지 넓어지는 내용으로 개정됐다.
이렇게 바뀐 내용도 개정해야 할 부분을 100%로 보면 20% 정도만 바뀌었다. 그래서 법무부에 시행령의 추가 개정을 계속 요청하고 있다. 법무부가 태스크포스팀을 꾸려 7~8월 중에 결론을 내놓은 뒤 시행령을 다시 개정하겠다고 해서 나도 지켜보고 있다.”
▲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이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의원실에서 비즈니스포스트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성현모 기자>
채 의원은 시민단체 시절부터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시행령의 개정을 건의해 왔다. 다만 법무부는 그가 국회의원이 된 뒤에야 시행령 개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를 놓고 채 의원은 “의원은 입법에 더해 정부에 요구할 권한을 갖춘 만큼 시민단체 시절보다 큰 힘을 쥐고 있다”면서도 “시민운동을 할 때보다는 일반적으로 강한 주장을 할 수 있었다면 지금은 타협점을 만드는 사람으로 역할이 일정 부분 바뀌었다”고 바라봤다.
채 의원은 시민단체 동료였다가 관료로 탈바꿈한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에게 아쉬움과 기대를 함께 나타내기도 했다. 그는 김 실장이 주도해 만든 경제개혁연구소에 몸담았다.
- 김 실장이 그동안 보여줬던 모습과 향후 행보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처음 의원이 됐을 때 김 실장을 ‘친정어머니’에 빗대곤 했는데 어쩌다 보니 나는 야당이 됐고 김 실장은 문재인 정부로 가게 됐다. 그럼에도 뿌리는 같기에 김 실장이 공정경제에 관련해 일하는 데 힘을 실어주면서도 더욱 잘하도록 채근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 실장은 공정거래위원장 시절 순환출자 해소나 현대중공업그룹의 지주사 전환 등의 소유구조 변화를 이끌어냈다. 다만 일감 몰아주기를 비롯한 기업의 행태구조 변화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양쪽을 정권 초반부터 같이 추진해야 했는데 단계적 변화를 유도하다 보니 현재의 경제지표 악화 등으로 행태구조 변화를 추진할 동력이 사라진 점이 안타깝다.
앞으로는 김 실장이 최고의 공정경제 분야 실력가인 만큼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를 소득주도성장에서 공정경제로 바꾸길 바란다. 양극화 문제의 근본 해법은 공정한 경제 생태계 조성이다. 그래야 중소기업 노동자와 자영업자 소득이 증가하고 모두가 성장의 성과를 누릴 수 있다.”
- 정부의 움직임을 뒷받침할 추가 입법을 검토하고 있는 사안은 있는가?
“지난 3년 동안 생각하고 있던 부분은 거의 다 입법했다. 다만 현안이 생기면 합리적 대안으로서 입법을 진행할 수 있다. 예컨대 2018년 9월에 대표발의한 ‘한진그룹 방지법’은 아이디어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진그룹 관련 현안이 계속 터지면서 이런 사태를 법으로라도 막아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한진그룹 방지법은 불법 행위자의 경영참여를 제한하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 4건을 아우른다. 채 의원은 2019년 3월 대한항공 주주총회에 주주 대리인으로서 참석해 당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에 반대하기도 했다. 현직 의원으로서는 이례적 행위로 평가된다.
- 한진그룹 이슈에 평소 상당한 관심을 보여왔다. 최근 조현민 전 진에어 부사장이 한진칼 전무로서 경영에 복귀했는데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복귀할 수 있다. 그전에도 한진그룹은 여론이나 국민을 의식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가. 물론 조현아 전 부사장이 밀수입 혐의로 집행유예 판결을 받긴 했다. 그럼에도 복귀하면 삼남매가 한진그룹의 분할경영을 선택할 수 있다.
나는 조양호 전 회장이 별세했을 때부터 한진그룹이 장기적으로 계열분리될 수 있다고 말해왔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을 비롯한 삼남매가 공동경영을 화기애애하게 하긴 어려워 보인다. 일단 분야별로 분할경영을 하다가 한진그룹을 장기적으로 나누지 않을까 싶다.”
채 의원은 1975년 1월2일 전라북도 군산에서 태어났다. 계산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한 뒤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20여 년 동안 시민단체에서 소액주주의 권한 찾기와 대기업 지배구조의 개편운동에 힘써왔다. 20대 국회에 국민의당(현 바른미래당) 비례대표로 들어왔다.
시민단체 활동가 시절 쌓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20대 국회에서 재벌개혁 관련 입법을 가장 활발하게 진행하는 의원으로 꼽히고 있다. 현재 미래당 정책위의장을 맡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