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당분간 대우조선해양 현장실사는 미뤄두고 국내외 기업결합심사 준비에 총력을 쏟기로 했다.
우선 7월 초 공정거래위원회에 결합신고서를 제출하고 그 뒤 순차적으로 유럽연합(EU)과 일본, 중국, 카자흐스탄 등에 신고한다는 계획을 세워뒀다.
그러나 현장실사를 건너뛰면서 앞으로 특혜 의혹이 불거질 수 있다는 점,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의 지분 교환비율 등을 놓고 갈등의 여지를 남겨놓은 점은 양쪽 모두에게 부담스러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노조를 비롯한 지역사회의 반발이 워낙 거센 데다 시간이 지나도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어 앞으로 인수절차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노조와 지역사회의 반발을 잠재우지 못하면 내년 총선까지 앞둔 상황에서 두고두고 리스크가 될 것으로 우려된다”며 “지금 노조를 설득하는 건 사실상 포기하고 인수를 강행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는데 안 그래도 넘어야 할 산이 많은 상황에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이 속도를 내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이 조선산업 구조조정을 위한 적기인 만큼 최대한 빨리 인수를 마무리해야 인수효과도 누릴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조선업계에서 기존 '빅3'에서 '빅2'로 재편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 지 오래다. 이 회장은 3월 현대중공업과 본계약을 맺은 뒤 “지금의 적기를 놓치면 우리 조선업도 일본처럼 쇠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절박함이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취임한 뒤 기존에 안고 있던 부실 자회사를 다 털어버리겠다는 각오로 자회사 매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올해 안에 KDB생명을 매각한다는 방침을 세웠고 KDB인베스트먼트를 통해 조만간 대우건설 매각작업에도 착수할 것으로 전해진다.
이 회장이 2017년 9월 취임했을 당시 금호타이어, STX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 현대상선, 대우건설, KDB생명 등 여러 기업이 산업은행 아래 있었다.
산업은행은 이 기업들의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걸핏하면 특혜 논란에 휩싸였다. 자회사의 도덕적 해이 논란도 끊임없이 불거졌고 산업은행은 거액의 공적자금을 투입하고도 경영 정상화에 실패했다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이 회장은 취임한 뒤 산업은행이 부실기업을 일방적으로 떠맡고 이에 따른 책임도 전적으로 지는 구조조정 시스템을 꾸준히 비판하며 이 시대 산업은행의 역할로 혁신기업 지원을 강조해 왔다.
그는 최근 이화여대에서 열린 ‘CEO특강’에 참석해 “최악의 결정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결정, 무행동”이라며 "반대가 있더라도 정부와 사회는 변화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회장이 자회사 매각에서 성과를 내면 연임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이 회장은 2017년 9월 3년 임기를 시작해 내년 9월 임기가 끝난다.
그러나 이 회장이 자칫 매각 자체에 매몰되면서 좋은 주인 찾아주기는 뒷전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일각에서 나온다.
우선 이르면 올해 말이나 내년 상반기 안에 대우건설이 매물로 나올 수 있는데 매각을 처음 추진했던 2년 전과 비교해 대우건설 내부 상황이나 건설업황을 비롯한 외부여건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KDB생명 역시 앞서 세 번이나 매각에 실패했던 만큼 이번에 매각에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과거 세 차례 진행된 매각에서 인수후보들은 산업은행이 기대하는 가격보다 낮은 가격을 써냈다.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이 회장이 추진력 있게 일을 하나씩 해치우는 걸 놓고 전임 회장이 겁을 먹고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나둘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가 나오지만 자칫 매각 자체에만 집중해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말도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