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키코'를 놓고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두 사람 사이의 해묵은 갈등이 재점화했다는 말이 나온다.
12일 금융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최 위원장과 윤 원장이 키코 분쟁조정을 놓고 갈등을 다시 표출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최 위원장은 10일 마포혁신타운 착공식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키코가 분쟁조정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이라며 “당사자들이 받아들여야 분쟁조정이 이뤄지는 것이므로 금감원이 어떻게 할지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키코(KIKO, Knock-In, Knock-Out)는 국내 은행과 수출기업들이 맺은 환율변동과 관련된 파생상품 계약이다. 환율이 일정 범위 안에서 움직이면 정해진 환율을 적용하고 상한선 이상 오르면 기업이 계약금의 2배 이상을 은행에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2008년 외환위기로 1천 원 안팎이던 원/달러 환율이 1500원 넘게 오르면서 키코계약을 맺은 중소기업들이 줄도산했다. 피해 기업들이 소송을 내기도 했으나 대법원은 2013년에는 키코가 불공정거래가 아니다고 판결했다.
윤 원장은 금감원장에 취임 전부터 꾸준히 키코 사태로 피해를 본 기업에 관심을 보여 왔고 금감원장에 취임한 뒤에는 피해구제에 힘썼다.
윤 원장의 의지로 피해구제가 진행되면서 금감원이 6월 말에 열리는 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해 키코 사태와 관련해 불완전판매 여부와 보상비율을 결정하기로 계획을 세운 상태에서 최 위원장이 상반된 의견을 내놓은 것이다.
그러자 윤 원장은 최 위원장의 발언이 나온 다음날인 11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키코는 분쟁조정 대상”이라며 “키코 분쟁조정 안건을 다루는 분쟁조정위원회를 조만간 열 것”이라고 말했다.
최 위원장과 윤 원장이 민감한 문제를 놓고 엇갈린 의견을 잇달아 보이면서 한동안 잠잠했던 두 사람 사이의 갈등설에 다시 불이 붙었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지난해 내내 갈등설에 시달리다 올해 들어 최 위원장과 윤 원장 모두 한걸음씩 물러나는 태도를 보였다. 두 기관 관계자들도 갈등설과 관련해서는 말을 아꼈다.
종합검사나 특별사법경찰제도 등 현안에서 이견도 많았으나 대부분 금융위의 의견이 관철되면서 ‘정책 추진 과정에서 보일 수 있는 이견’ 수준에서 넘어갔다.
그러나 키코의 분쟁조정 절차와 관련해서는 금융위원장 발언의 적정성이 문제가 됐다.
금감원이 현재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사안을 놓고 금융위원장이 부정적 생각을 밝혀 결론이 나기도 전에 금감원의 힘을 빼 놨다는 시선이 나온다.
분쟁조정 절차는 다른 금감원의 제재절차와는 달리 금융위의 판단을 받지 않고 금감원에서 최종적으로 결론이 나기 때문에 금융위가 공식적 절차를 통해 결과에 관여할 여지가 없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양 당사자의 동의가 필요한 분쟁조정 절차를 놓고 금융수장인 금융위원장이 부정적 생각을 밝힌 것은 은행들에게 금감원의 분쟁조정 결론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부추기는 꼴”이라고 말했다.
키코 피해기업들의 모임인 키코 공동대책위원회는 키코 관련 분쟁조정 절차가 처음에 금융위도 동의한 사안이라는 점도 들고 있다.
키코 조사가 시작될 때 윤 원장은 관련 피해 전체를 조사하려 했으나 금융위와 협의를 통해 대법원이 판단한 부분을 제외하고 조사를 시작하기로 한 것인데 최 위원장이 이제 와서 찬물을 끼얹는다는 것이다.
키코 공동대책위원회는 최 위원장의 발언을 놓고 “최 위원장은 키코 피해기업을 돕겠다며 공수표만 날려놓고 정작 힘을 합쳐야 할 금감원과 갈등만 키우고 있다”고 비난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