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와 민간 전문가들이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원인으로 배터리 보호체계와 관리의 부실 등의 복합적 작용으로 봤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에너지저장장치를 설치해 운영하는 과정에서 단계별 안전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 김정훈 민관합동 에너지저장장치(ESS)화재사고원인조사위원장 등이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에너지저장장치 화재 사고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
산업부는 11일 ‘민관합동 에너지저장장치 화재사고 원인조사위원회’에서 5개월 동안 조사한 결과 미흡한 배터리 보호체계와 운용관리 부실, 설치 부주의와 통합관리체계의 부족 등이 잇따른 에너지저장장치 화재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에너지저장장치는 생산된 전기를 배터리에 저장했다가 특정시점에 내보내는 장치다. 날씨에 생산량의 영향을 많이 받는 태양광과 풍력 등의 신재생에너지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민관합동 조사위원회는 에너지저장장치의 배터리시스템에 합선 등으로 지나치게 높은 전압이나 많은 전류 등의 전기충격이 가해졌을 때 배터리 보호체계가 빠르게 차단하지 못해 배터리 화재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결과를 확인했다.
산지나 해안가에 설치된 에너지저장장치가 큰 일교차에 따른 이슬 맺힘 현상과 다량의 먼지에 노출되면서 배터리 모듈에 먼지가 눌러 붙어 절연이 파괴되면서 불이 날 수 있다는 점도 파악됐다.
에너지저장장치 배터리를 고온다습한 장소에 보관하는 등의 설치 부주의도 화재원인으로 꼽혔다. 에너지저장장치를 이루는 배터리와 전력변환장치(PCS) 등이 통합시스템 아래 유기적으로 연계·운영되지 않은 점도 영향을 미쳤다.
민관합동 조사위원회는 일부 에너지저장장치 배터리셀의 제조 결함도 찾아냈지만 화재의 직접적 원인보다는 화재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판단했다.
실증시험 결과 결함이 있는 배터리셀이 자체 발화되진 않았지만 배터리를 가득 충전한 상태가 계속 유지되는 상황 등에서는 합선으로 불이 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산업부는 앞으로 에너지저장장치와 관련된 제조-설치-운용-소방 단계별로 안전을 강화할 방침을 세웠다.
에너지저장장치의 대용량 배터리와 전력변환장치를 안전관리 의무대상으로 지정해 주요 구성품의 안전관리를 강화한다. 건물 안에 두는 에너지저장장치의 용량을 600kWh(킬로와트시)로 제한하는 등 설치 기준도 개정하면서 전기적 충격의 보호장치도 의무화한다.
에너지저장장치의 정기 점검주기를 4년에서 1~2년으로 단축하고 안전설비를 임의로 개조하거나 바꾸는 상황을 대상으로 특별 점검을 수시로 시행한다. 에너지저장장치를 특정소방대상물로 지정해 소방시설을 의무적으로 갖추도록 규정한다.
에너지저장장치안전관리위원회를 설치해 개별 사업장의 특성에 맞는 안전조치를 적용하면서 에너지저장장치의 재가동을 뒷받침한다. 에너지저장장치 1490곳 가운데 522곳은 잦은 화재 때문에 2018년 말 기준으로 가동을 멈춘 상황을 고려한 조치다.
가동을 멈춘 522곳을 대상으로 위험성에 따라 일부는 건물 밖으로 이전하면서 방화벽을 설치하는 등의 안전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안전 문제로 가동을 자발적으로 멈춘 사업장에는 중단 기간만큼 요금 할인혜택도 연장하기로 했다.
화재 문제로 공사를 발주하지 못한 기업을 위해 신재생에너지 인센티브인 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가중치를 추가로 6개월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에너지저장장치협회(가칭) 설립과 화재 위험성이 낮은 배터리 개발·상용화도 지원한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번 화재사고로 양적 성장에 치우쳤던 에너지저장장치산업을 되돌아볼 계기가 마련됐다”며 “이번에 안전제도를 강화한 조치를 바탕으로 에너지저장장치 산업생태계의 질적 성장을 위해 분야별 경쟁력의 강화를 돕겠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