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23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지털프라자에서 열린 '코리아 핀테크 위크 2019'에서 기자들에게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어지간히 답답했나 보다.
혁신을 금융정책의 최우선 정책목표로 삼고 ‘핀테크 위원장’으로 불릴 만큼 정책 추진에 힘을 쏟았지만 좀처럼 속도가 붙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정책을 추진하려면 근거 법률안의 입법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관련 법안 모두 국회 정쟁에 발이 묶였고 좀처럼 풀릴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금융소비자보호법, P2P대출 관련 법안, 신용정보 이용 및 보호법, 금융그룹 통합감독법, 금융회사지배구조법 등 굵직한 법안만 8개에 이른다. 심지어 금융소비자보호법 제정안은 2016년에 발의된 법안이다.
그나마 금융혁신지원특별법, 인터넷전문은행법 등이 국회를 통과했으나 역시 쉽게 얻어낸 결과가 아니다. 두 법안의 통과를 위해 최 위원장은 수없이 국회를 드나들며 국회의원들을 만나 설득했다.
법안이 통과된 정책도 진행 상황이 마뜩잖다. 제3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 신청은 실질적으로 키움뱅크컨소시엄, 토스뱅크컨소시엄 두 곳만이 신청한 데다가 토스뱅크컨소시엄에서는 신한금융지주 등 주요 참가자들이 막판에 발을 빼면서 김이 샜다.
혁신정책 추진에서 좀처럼 힘을 받지 못하자 최 위원장의 답답함은 결국 엉뚱한 곳에서 터져 나왔다.
최 위원장은 22일
이재웅 쏘카 대표를 “무례하고 이기적”이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최 위원장이 문제 삼은 이 대표의 발언은 홍남기 경제부통리 겸 기획재정부 총리를 두고 “혁신의지가 부족하다”거나 타다 서비스로 갈등을 빚고 있는 택시업계를 향해 “죽음을 정치화하고 이익을 위해 이용한다” 등이다.
이 대표를 향한 최 위원장의 발언은 사실 조금 뜬금없다. 금융위원회가 이 대표와 택시업계 사이 갈등과 관련된 주무 부처도 아닐뿐더러 발언이 이뤄진 자리 역시 ‘청년층 맞춤형 전월세지원 업무협약식’으로 택시업계 문제와 관련이 없다.
게다가 먼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말을 꺼낸 것도 최 위원장이다.
이 대표가 홍 부총리를 비난한 것을 보고 동병상련의 정책책임자로서 '혁신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본인도 답답한 상황에서 혁신사업자로부터 의지를 의심받으며 비난받는 상황'이라는 생각에 그만큼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최 위원장이 홍 부총리와 같은 강원도 출신에 행정고시 선후배 사이라거나 최 위원장이 내년 총선에 출마하려 한다는 등 부수적 사정은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이 대표의 택시업계를 향한 발언이 혁신을 사이에 둔 사회갈등에 기름을 부어 결과적으로 혁신 추진을 저해할 것이라는 판단도 최 위원장의 행동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크다.
최 위원장은 각종 사회갈등으로 혁신이 지연되는 상황을 직접 마주하면서 포용을 통한 사회갈등 해소가 조금 천천히 가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더 빨리 갈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을 전부터 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 위원장의 생각은 23일 코리아 핀테크 위크 기조연설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는 “핀테크는 기존 금융권의 독과점에 도전해 개방과 경쟁을 촉진하고 더욱 많은 사람이 금융의 편익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포용적이고 민주적 금융으로 근원적 변화”라며 “핀테크와 금융혁신을 향한 경주에서 혁신의 승자들이 패자를 이끌고 함께 걸을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시간상으로는 이 대표를 비난한 다음날인 23일 대중에 공개된 발언이지만 기조연설문은 이 대표와 관련된 발언을 하기 전에 작성된 것이다.
최 위원장이 스스로 답을 내렸듯 최 위원장이 처한 답답한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이 ‘포용’임은 분명해 보인다.
다만 승자와 패자를 이분법적으로 나눠 일방을 비난하며 포용을 강요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인지는 의문이 든다.
이 대표 역시 그가 구상한 사업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게 되면서 혁신에 따른 사회적 갈등의 패자로 볼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는 혁신서비스를 누리지 못할 사회 전체가 패자가 된다.
결국 정책을 책임지고 집행하는 국가기관은 사회 전체가 패자로 전락하지 않도록 사회 구성원 모두를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포용이 최 위원장은 물론 국가기관만이 져야 할 책임은 아니다. 포용은 다른 정부부처와 국회, 정당, 대기업 등 사회적 영향력 있는 주체에서 부터 개인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체를 위해서라면 누구에게나 요구되는 사회적 책임이다.
다만 요구되는 포용의 크기는 쥐고 있는 권한만큼 다를 것이다. 그리고 최 위원장은 한 나라의 장관으로 금융 전반을 책임지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