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의 화웨이 제재조치 강화로 삼성전자가 반사이익을 볼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철저히 미국 기업의 이익을 앞세우는 정책을 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삼성전자를 포함한 한국 기업에 지나친 낙관론은 경계해야 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중국은 이번 일을 계기로 정부 차원에서 반도체와 소프트웨어 등 핵심기술 개발에 총력을 기울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한국 기업들이 더 치열한 경쟁환경에 놓이게 될 수도 있다.
21일 뉴욕타임스 등 외국언론에 따르면 구글은 화웨이가 출시하는 스마트폰에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와 앱을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런 조치가 엄격하게 지켜진다면 화웨이는 스마트폰사업에 타격을 피하기 어렵다.
유럽 등에 출시하는 스마트폰에 구글의 소프트웨어 지원을 받지 못하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화웨이의 거센 추격으로 세계 스마트폰 1위 수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반가운 소식이 될 수 있다.
화웨이는 지난해 50%에 이르는 연간 스마트폰 출하량 증가율을 기록해 삼성전자에 이은 2위 스마트폰업체로 가파르게 성장했으며 이른 시일에 삼성전자를 뛰어넘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화웨이는 정체된 세계 스마트폰시장에서 유일하게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어 스마트폰 관련된 소프트웨어와 부품을 공급하는 미국 기업에는 주요 고객사다. 트럼프 행정부의 제재가 미국 IT기업의 피해라는 부메랑이 될 수 있는 셈이다.
뉴욕타임스가 "구글이 미국 상무부의 명령에 따라 화웨이에 지원을 중단하면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요한 협력사와 관계가 멀어지게 됐다"고 보도한 것도 그런 점을 짚은 것이다.
구글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서 사용되는 앱과 서비스, 모바일 광고 등에 실적을 크게 의존하고 있어 트럼프 정부의 결정에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인텔과 브로드컴, 퀄컴 등 미국 기업도 화웨이 스마트폰과 통신장비에 쓰이는 반도체를 공급한다.
애플 역시 중국에서 생산하는 아이폰에 높은 관세가 매겨지고 무역분쟁의 영향으로 중국 소비자들의 불매운동도 확산되면서 미국과 중국 무역분쟁에 피해를 보고 있는 대표적 기업으로 꼽힌다.
트럼프 정부가 그동안 철저하게 미국기업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앞세우는 정책을 펴 온 만큼 지금처럼 애플과 구글, 인텔 등 미국 대표 IT기업에 큰 악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오래 고수할 가능성은 낮다.
결국 미국이 화웨이를 볼모로 잡고 중국에 압박을 강화하는 것은 무역협상에서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한 단기적 협상카드 역할에 그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화웨이는 이미 수개월치에 이르는 미국산 반도체 등 부품을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구글의 소프트웨어 지원 중단도 기존 제품이 아닌 앞으로 출시되는 스마트폰에만 적용된다.
앞으로 수개월 동안은 미국의 화웨이 제재가 실제로 업계 전체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낮은 데다 그 사이 미국과 중국의 무역협상이 진전돼 제재조치가 해제될 가능성도 충분한 셈이다.
미국 정부는 미국기업이 화웨이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등 일부 거래를 지속할 수 있도록 임시면허를 발급하고 3개월 뒤 제재조치를 재검토하기로 하는 등 완충장치도 대거 도입했다.
화웨이를 상대로 한 제재가 단기에 그친다면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의 수혜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전자전문매체 씨넷은 "화웨이를 상대로 한 제재가 단기간에 그친다면 삼성전자의 수혜도 제한적일 것"이라며 "트럼프 정부의 이전 행보를 볼 때 중국의 대응에 따라 한 발 물러설 가능성도 있다"고 보도했다.
오히려 이번 사건은 세계 양대 강국으로 꼽히는 미국과 중국이 IT기술분야에서 서로를 얼마나 강력하게 견제하고 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으로 꼽힌다.
▲ 화웨이의 5G 통신장비와 폴더블 스마트폰. |
미국은 중국 전자업체와 IT기업의 성장을 견제하며 미국 기업들의 시장 지배력 강화를 적극 지원할 가능성이 높고 중국 역시 미국에 의존을 낮추기 위한 자체 기술 발전에 더욱 속도를 낼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는 한국 전자업체 대표주자로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미국과 중국의 기술 주도권 싸움이 강력해질수록 세계 IT시장 경쟁의 중심에서 멀어지게 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에 실적을 크게 의존하고 있는 대부분의 부품업체와 IT기업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결국 삼성전자를 포함한 한국 전자업체들은 미중 무역분쟁의 파도 속에서 기회를 노리기보다 이번 사태와 같은 강력한 외부 변수에도 흔들리지 않는 경쟁력을 구축하는 데 힘써야만 한다.
이종욱 삼성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화웨이 제재는 전자업계 전반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결과를 동반할 수 있다"고 바라봤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