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8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대우조선해양 민영화 본계약 체결식에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왼쪽)과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대표이사 부회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이 단호하게 던진 승부수가 산업의 재편을 낳는 마중물이 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매각으로 국내 조선사는 양사체제로 재편된다. 아시아나항공 주인이 30여 만에 바뀌면서 항공업계도 지각변동의 변화를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
25일 금호산업이 아시아나항공 매각주간사로 크레디트스위스(CS)증권을 선정하면서 앞으로 매각작업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절차가 차질없이 진행되면 올해 안에 매각이 마무리될 수도 있다.
아시아나항공 매각은 겉으로는 단순한 기업 매각의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사실상 살펴보면 정부 주도의 산업 구조조정이다.
국적 항공사 3곳이 한꺼번에 시장에 나오면서 항공업계도 재편이 불가피하다. 지금은 아시아나항공과 에어서울, 에어부산을 한 번에 매각하는 방안이 우선 추진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따로 매각될 가능성도 열려 있다.
대우조선해양 주인도 곧 바뀐다.
산업은행은 3월 초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매각 본계약을 맺었다. 아직 기업결합 심사 등 절차가 남아있지만 모든 절차가 마무리되면 대우조선해양은 19년 만에 산업은행 품을 떠나 현대중공업을 새 주인으로 맞는다.
이동걸 회장은 변화의 흐름에 맞춰 쉽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
단순히 기업을 매각하는 수준을 넘어 아예 산업의 판을 다시 짜고 있다.
조선산업과 항공산업 모두 과거 호황기를 끝내고 변화의 기로에 서 있는 만큼 기존의 틀 안에서 방법을 찾기보다 아예 틀을 새로 만드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물론 구주를 매각한 뒤 손을 떼거나 당장 지원해달라는 자금만 지원해 주면 쉽게 갈 수도 있지만 이 회장은 이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훗날 일이 잘못 되면 책임론이 불거질 수도 있다.
대우조선해양 매각과 아시아나항공 매각은 그 책임론의 무게가 다르다. 이번 매각이 잘못되면 자칫 산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 매각작업은 길게는 1년 이상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아시아나항공 매각 역시 여러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어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두 회사의 매각이 완전히 마무리돼도 이 회장은 안심할 수 없다.
당장 산업은행은 새로 신설되는 조선통합법인의 2대주주에 오른다. 아시아나항공 매각 뒤 잡음이 불거지면 이 회장 역시 거센 후폭풍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이 회장이 큰 변화를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다.
그렇게 해야 조선산업과 항공산업이 모두 근본적으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조선업계에서 수 년 전부터 '빅3'에서 '빅2'로 재편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현실로 이뤄지기까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 회장은 반 년여 만에 이를 속전속결로 해치웠다. 중국이나 싱가포르 등 해외 후발주자들의 위협이 거세지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늦어지면 안 된다는 것이다.
세계 1위 조선사(수주잔량 기준)인 현대중공업이 2위인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면 말 그대로 ‘매머드급 조선사’가 탄생한다. 2015년 삼성그룹과 한화그룹의 ‘빅딜’을 제외하면 외환위기 이후 20년 만에 가장 크게 이뤄지는 산업재편이다.
이 회장은 본계약을 맺은 뒤 “조선산업 재편을 통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지금의 적기를 놓치면 우리 조선업도 일본처럼 쇠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절박함이 있었다”고 말했다.
국내 항공산업 역시 변화에 직면해 있다.
오랫동안 굳건했던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양강체제에 서서히 균열이 생기고 있다. 올해만 해도 플라이강원과 에어프레미아, 에어로케이항공이 새로 국제항공운송사업 면허를 발급받으면서 국내 저비용항공사는 기존 6개에서 9개로 늘어난다.
이 회장은 아시아나항공이 대한항공과 저비용항공사(LCC) 사이에 끼어 고전하는 상황에서 주인이 바뀌지 않으면 아시아나항공의 근본적 정상화가 어렵다고 봤다. 국내 2위 아시아나항공이 무너지면 국내 항공산업 역시 흔들릴 수 있다.
이 회장은 최근 이화여대에서 열린 ‘CEO 특강’에 참석해 “최악의 결정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결정, 무행동”이라고 말했다.
"반대가 있더라도 정부와 사회는 변화를 선택해야 한다." 이 회장의 말이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