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한국투자증권의 발행어음자금 불법활용 건에서는 한발 물러섰지만 초대형 금융투자사업자(IB)들이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자금을 활용하는 것을 놓고는 감독을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4일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이번 한국투자증권 발행어음자금 불법활용 건이 제재심의위원회에서 경징계로 결론 난 것은 첫 사례임을 고려한 것”이라며 “이번 결정으로 업계에 경고를 준 효과가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한국투자증권은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자금을 ‘키스아이비제16차’라는 특수목적법인을 통해 사실상 최태원 SK그룹 회장 개인에게 신용을 공여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금감원은 3일 제재심의위원회를 통해 기관경고 등 경징계 조치를 의결했다. 업무정지 등 중징계 안이 상정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제재 수위가 낮아진 것이다.
업계에서는 금감원의 제재 수위가 낮아진 것을 놓고 사안의 복잡성에 따른 법리 논쟁 부담과 시장 파급력을 고려한 결정으로 바라본다.
윤 원장도 3월14일 기자간담회에서 “한국투자증권 제재에 시간이 걸린 것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발행어음 관련 첫 사례이기 때문에 신중하고 현명하게 판단해야 시장에 좋은 신호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의 제재심의위원회 이후 최종적으로 제재 수위를 결정할 금융위원회가 부정적 태도를 보인 점도 금감원이 중징계를 내리는 데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 산하 자문기구인 법령해석심의위원회가 3월5일 한국투자증권 제재를 놓고 법규 위반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자문기구의 판단이기는 하지만 금감원 제재심 이후 최종적으로 금융위가 결론을 내리는 만큼 금감원이 법령해석심의위원회의 해석을 정면으로 무시하고 중징계를 내리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경징계'도 분명 징계 결정인 만큼 한국투자증권의 발행어음자금 활용행위는 법규를 위반한 것이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번에 한국투자증권에 징계가 결정된 만큼 발행어음 사업을 하거나 할 다른 사업자들도 같은 행위를 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징계 수위가 낮아진 것은 첫 사례이기 때문이지 위법행위가 아니라는 의미는 아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은 초대형 금융투자사업자(IB)들이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자금을 특수목적법인 등에 투자하는 것은 발행어음제도의 도입 취지에 어긋나는 것으로 바라본다.
윤 원장은 3월27일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발행어음으로 조달된 자금이 개인대출로 가는 것은 제도의 목적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초대형 금융투자사업자에게 발행어음사업 인가를 내준 것은 벤처기업이나 창업 지원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발행어음으로 조달된 자금의 활용과 관련한 세부지침이나 가이드라인 등을 만드는 것에 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일부 언론의 보도와 달리 발행어음으로 조달된 자금의 활용과 관련된 가이드라인 등은 만들고 있지 않다”며 “이번 제재심 결정으로 관련 행위의 위법성이 확인된 것 자체가 가이드라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