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경석 한화 화약방산부문 대표이사 사장(오른쪽)이 2월27일 대전 서구 성심장례식장을 찾아 폭발사고로 숨진 노동자 유족에게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
“회사가 통 큰 합의를 해준 것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한화의 대전 사업장 폭발사고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의 유가족 대표 A씨는 한화가 유가족들의 요구사안을 받아들인 4일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화는 대전고용노동청에서 방위사업청, 대전고용노동청, 대전시, 대전시 소방본부와 함께 유가족이 제시한 3가지 요구사안을 모두 받아들이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유가족들은 장례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대기업이 노동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유가족의 요구사안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옥경석 한화 화약방산부문 대표이사 사장이 사망사고에 따른 기업 이미지 훼손으로 기업 가치가 크게 하락할 수 있는 상황에서 진정성 있는 대응으로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옥 사장은 사고 당일인 2월14일 대전 사업장 정문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숨진 직원들과 유가족에게 사과했다.
2월27일에도 빈소를 찾아 유가족들에게 “다시 한번 사죄드린다”며 “앞으로 이런 안전사고가 나지 않도록 안전대책을 철저히 수립하겠다”고 말했다.
애초 2월17일부터 예정돼 있던 중동 지역 최대 방산전시회인 IDEX2019 참석 일정을 취소하며 사고 수습에 집중했다.
한화는 이번 합의에 따라 방위사업청과 대전고용노동청, 대전 사업장 노동자, 대전시와 대전시 소방본부가 추천한 폭발 전문가의 합동조사를 받는다. 대전 사업장은 합동조사 이후 각 조사 주체가 일치된 의견을 낼 때까지 작업이 중단된다.
재발 방지를 위해 방위사업청 등 4개 기관과 노동자 대표로 구성된 합동조사단의 환경평가 조사도 연 1회 정기적으로 받기로 했다. 환경평가 조사 때 문제가 발견되면 합동조사단 역시 작업중지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유가족들의 요구사안은 작업중단 명령 해제시점을 가늠할 수 없고 매년 환경평가에서 또 다시 작업중단 명령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사업적 잣대만으로 본다면 한화가 수용하기 어려운 조건일 수 있다. 하지만 옥 사장은 유가족들의 요구사안을 모두 수용했다.
옥 사장이 합의안을 받아들인 데는 이번 사고의 진상을 밝히고 사고의 재발을 막겠다는 의지가 깔린 것으로 평가된다.
옥 사장은 2018년 10월 한화가 화약과 방산 부문을 통합하면서부터 대전 사업장을 책임지고 있다.
한화는 1987년부터 대전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동안 사망사고가 없다가 2018년 5월 이후 연달아 2건의 사망사고가 일어났다.
한화 대전 사업장은 2018년 5월 폭발사고의 근본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2월 또 다시 비슷한 사망사고가 났다.
옥 사장이 이번 기회에 근본원인을 밝혀내 대처하지 않는다면 또 다시 대전 사업장에서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옥 사장이 사고의 근본 원인을 밝히고 재발을 막으려는 것은 노동자의 위험요인을 최소화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가치를 좇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업적 판단이기도 하다. 대전 사업장에 만약 또 다시 폭발사고가 나 인명피해가 생기면 그때는 정말로 ‘수습불가’ 상황에 놓일 수 있다.
▲ 옥경석 한화 화약방산부문 대표이사 사장이 2월14일 대전 유성구 대전공장 앞에서 폭발사고에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
옥 사장이 유가족의 요구사안을 받아들인 데는 안전사고에 민감해진 사회적 여론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등은 사회적으로 계속해 발생하는 노동자 사망사고의 연장선 위에서 이번 폭발사고를 바라보며 한화를 향해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옥 사장이 유가족들의 요구사안을 전적으로 수용하면서 정치권으로 옮겨붙던 논란 확대 가능성도 어느 정도 사그라들 것으로 보인다.
이번 합의안은 더불어민주당 대전광역시당의 중재 속에서 마련됐다.
더불어민주당 대전광역시당은 합의안 도출 뒤 환영의 뜻을 전하며 “합의 이후 진행되는 장례 절차 등 한화 대전 공장 사고와 관련한 후속조치를 지원해 사고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화 관계자는 “앞으로 사고수습 과정에서도 유가족들의 의견을 경청할 것”이라며 “사고 수습과 재발 방지대책 마련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옥 사장은 삼성전자 반도체 지원팀장, DS경영지원실장 등을 지낸 삼성전자 부사장 출신으로 2016년 한화케미칼 폴리실콘부문 사장으로 한화그룹에 영입됐다.
이후 한화건설, 한화 화약부문 대표 등을 거쳐 2018년 10월부터 한화 화약방산부문 대표를 맡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