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준 LG 부회장의 용퇴 수순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지만 계열분리는 감감 무소식이다.
LG그룹 사업 전체가 유기적으로 엮여 있는 만큼
구광모 LG그룹 회장으로서는 구 부회장이 들고 나갈 회사를 두고 결단을 내리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구 부회장이 지주회사 LG의 대주주로 남아 있거나 보유지분을 팔아서 독자적 사업체를 꾸릴 가능성도 고개를 든다.
19일 LG 관계자에 따르면 LG그룹은 당분간 계열분리 없이 현재 체제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LG 관계자는 “아직까지 계열분리와 관련해 그룹 내부적으로 움직임이 없는 것으로 안다”며 “당분간 계열분리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LG그룹은 장자가 그룹을 물려받으면 형제나 사촌은 그룹 경영에서 손을 떼는 전통이 자리 잡고 있는데 승계에서 배제된 형제들은 계열분리를 통해 ‘아름다운 이별’을 이뤄왔다.
구 부회장 역시 조카인 구 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마무리함에 따라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퇴임 수순을 밟고 있다. 3월15일 열릴 LG전자 정기 주주총회에서도 비상임이사 지위를
권영수 LG 대표이사 부회장에게 물려주게 된다.
이에 따라 재계에서는 지난해말부터 구 부회장이 자동차 전장사업 일부를 떼어내 독립하거나 부품회사 지흥과 LG이노텍, LG전자 소재생산기술원(PRI)를 합쳐 전자 관련 부품회사를 꾸릴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시나리오는 사실상 현실화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LG그룹이 계열분리를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LG그룹의 핵심사업과 큰 연관이 없으면서도 미래 성장 가능성 있는 사업들이 상당수 존재했기 때문이다.
2002년 LS그룹으로 분리된 LG전선과 LG칼텍스가스, 2004년 GS그룹으로 분리된 LG칼텍스정유, LG유통, LG홈쇼핑 등의 면면을살펴보면 LG그룹 핵심사업인 전자, 제조업과 밀접한 관련이 없으면서도 독자적 체제를 구축하기에 적합하다.
하지만 최근 LG그룹의 사업은 신사업을 중심으로 촘촘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분리하기 쉽지 않다.
분리 가능성이 높다고 점쳐온 LG전자나 LG이노텍의 자동차 전장사업 일부는 구 회장이 LG그룹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강조하고 있는 핵심사업인데다 LG디스플레이, LG화학 등 주요 계열사들의 사업과 유기적 연관성을 띄고 있어 사실상 분리가 어렵다.
LG 관계자도 “전장사업 관련 계열분리 시나리오는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라며 일축했다.
지흥을 주축으로 전자 관련 부품회사를 차릴 수 있다는 관측도 불가능해졌다. 2018년 12월13일 구 부회장의 장남인 구형모 LG전자 과장이 들고 있던 지흥 지분 전량을 매각했기 때문이다.
LG화학의 일부인 소재사업을 들고 나갈 것이라는 전망은 전자소재부문 전문가 신학철 전 3M 수석부회장이 LG화학 대표이사에 선임되면서 시나리오에서 사실상 제외됐다. 소재사업이 전기차 배터리 등 전장사업과 연관성이 크다는 면에서도 분리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나마 현실 가능성이 있는 방안은 규모도 적합하고 떼어내기도 어렵지 않은 LG상사로 독립하는 것이지만 물류 중심의 사업구조를 지니고 있어 구 부회장이 개인적으로 관심을 쏟아왔던 전자, 자동차 부품사업과 거리가 멀고 규모가 작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낮다.
재계는 구 부회장이 시간을 두고 천천히 독립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를 실고 있다.
지금까지 LG그룹의 경영 전반에서 존재감을 보여 온 만큼 일정 기간 LG 주주로 남아 구 회장체제가 안착될 때까지 자리를 지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계열분리 가능성이 점차 낮아지고 있어 대주주로 있는 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구 회장이 LG 지분 매각으로 확보할 수 있는 현금 규모가 1조 원에 이르는 점을 고려하면 독자적 사업체를 꾸릴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다만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 LG상사 등을 거치며 그룹 핵심 사업에서 활약해 온 구 부회장이 그룹과 전혀 관계없는 사업을 꾸려 독립하는 방안을 고려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예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