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윤근은 1957년 전라남도 광양에서 태어났다. 우윤근은 전남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고 같은 대학에서 법학석사학위와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우윤근은 1983년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신영합동법률사무소, 법무법인 유·러에서 변호사로 활동했다. 그는 전남대학교, 조선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우윤근은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이후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당선되면서 의정활동을 시작했다. 제18대, 제19대 총선에서 당선돼 3선에 성공했다.
우윤근은 2013년 원내대표 선거에서 전병헌 의원에게 석패했다. 그러나 재도전에 성공해 2014년 10월부터 2015년 5월까지 새정치민주연합의 원내대표를 맡았다.
2016년 1월부터 새정치민주당에서 당명이 바뀐 더불어민주당의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을 맡다가 3월 우윤근은 박영선, 표창원 김병관 비상대책위원들과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퇴를 만류하기 위해 위원직에서 사퇴했다. 4월 제20대 총선에서 전남 광양, 곡성, 구례에서 낙선했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우윤근은 합리적이고 온화한 성격으로 동료 의원들 사이에서 친화력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내 모든 의원들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기도 한다.
우윤근은 2012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문재인 후보의 공동선거대책본부장을 지내 친노계와 가까운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그는 원내대표 취임에서 스스로를 계파가 없는 '파랑새파'라고 지칭할 만큼 계파에 크게 신경쓰지 않고 당내 의원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우윤근은 정치적으로도 합리적 성향의 중도온건주의자로 꼽힌다.
우윤근은 원내대표로서 혼란스럽던 야당과 정국을 안정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윤근은 세월호 협상을 마무리 지었으며 예산안 처리도 법정시한 안에 처리했다. 당 지지율도 취임 전 10%대에서 20%대로 올라섰다.
그러나 야당의 존재감을 살리는 데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법안을 너무 쉽게 양보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받고 있다.
우윤근은 취임 당시 담뱃값인상 등 서민증세와 부동산3법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2014년 연말 법안처리과정에서 새누리당의 손을 들어줬다.
우윤근은 대표적 개헌론자이자 의회주의자로 꼽힌다. 그는 독일식 의원내각제로 개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야 의원들로 구성된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 공동회장을 맡고 있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우윤근은 1983년 제25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1993년 신영합동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로 일했다. 2000년 법무법인 유·러의 대표변호사가 됐다.
2000년 전남대학교 법과대학 객원교수로 일했으며 2002년 조선대학교 법과대학 겸임교수가 됐다. 2000년 한일약품 공업주식회사 사외이사를 맡았다.
우윤근은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했고 2004년 17대 총선 때 전남 광양시·구례군 선거구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나와 당선되면서 국회에 입성했다.
2004년 열린우리당 원내부대표에 올랐다. 2005년 17대 국회에서 국회법제사법위원회 간사를 맡았다.
우윤근은 이후 18대, 19대 총선 때 같은 지역구에서 당선되면서 3선에 성공했다.
우윤근은 2009년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 2010년 18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2012년 민주통합당 공천심사위원회 위원을 맡았다.
2013년 제19대 국회에서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위원으로 일했다.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원회 의장과 제19대 국회 후반기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을 맡았다.
2014년 10월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에 당선됐다. 앞서 우윤근은 2013년 5월 원내대표에 출마했지만 1차투표의 우세를 지키지 못하고 2차투표에서 전병헌 의원에게 역전패를 당했다.
2015년 5월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임기를 마쳤다. 2016년 1월부터 새정치민주당에서 당명이 바뀐 더불어민주당의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을 맡다가 3월 우윤근은 박영선, 표창원 김병관 비상대책위원들과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퇴를 만류하기 위해 위원직에서 사퇴했다. 4월 제20대 총선에서 전남 광양, 곡성, 구례에서 낙선했다.
◆ 학력
우윤근은 1977년 살레시오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전남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해 1983년 졸업했다. 그는 1999년 같은 대학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우윤근은 2006년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부인 위희욱과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 상훈
2014년 국정감사 NGO모니터단 국정감사 모범의원으로 선정됐다.
2014 제16회 백봉신사상을 받았다.
2011 대한민국 헌정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 상훈
2014년 국정감사 NGO모니터단 국정감사 모범의원으로 선정됐다.
2014 제16회 백봉신사상을 받았다.
2011 대한민국 헌정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어록
"독일의 건설적 불신임제도와 오스트리아 분권형 권력구조가 우리에게도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보고 그 조정과 타협의 정치현장을 찾았다. 좌우 간의 타협이 가능하고 안정적일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2015년 1월 오스트리아를 방문해서)
"많은 분들이 야당의 변화를 바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국민들은 야권의 분열과 새로운 야당의 출현을 바라고 있지 않다고 본다."(2015년 1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정기국회에서 최경환노믹스의 실상을 밝혀내고, 진짜 민생법안과 가짜 민생법안을 가려내겠다."(2014년 10월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나는 계파가 없다. 일방적으로 쏠리지 않도록 하겠다. 130명이 힘을 합쳐서 협상도 130명이 하고 투쟁도 130명이 하는 강력한 야당, 국민과 통하는 품위 있는 야당이 되도록 하겠다."(2014년 10월 신임 원내대표 취임 뒤)
"초이노믹스가 지도에 없는 길을 가겠다면서 경기부양에 올인하더니 진짜 길을 잃었다. 일자리 창출 등으로 서민 중산층이 든든해야 경제가 살아난다. 서민중산층의 소득을 늘리는 가계소득중심의 신경제정책을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2014년 10월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나는 매파도 비둘기파도 아닌 파랑새파다. 파랑새는 평소에 온순하지만 제 둥지를 지킬 때 다른 새들과 목숨 걸고 싸운다."(2013년 5월 원내대표 선거 전 마지막 토론회에서)
◆ 평가
우윤근은 합리적이고 온화한 성격으로 동료 의원들 사이에서 친화력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내 모든 의원들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기도 한다.
우윤근은 2012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문재인 후보의 공동선거대책본부장을 지내 친노계와 가까운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그는 원내대표 취임에서 스스로를 계파가 없는 '파랑새파'라고 지칭할 만큼 계파에 크게 신경쓰지 않고 당내 의원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우윤근은 정치적으로도 합리적 성향의 중도온건주의자로 꼽힌다.
우윤근은 원내대표로서 혼란스럽던 야당과 정국을 안정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윤근은 세월호 협상을 마무리 지었으며 예산안 처리도 법정시한 안에 처리했다. 당 지지율도 취임 전 10%대에서 20%대로 올라섰다.
그러나 야당의 존재감을 살리는 데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법안을 너무 쉽게 양보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받고 있다.
우윤근은 취임 당시 담뱃값인상 등 서민증세와 부동산3법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2014년 연말 법안처리과정에서 새누리당의 손을 들어줬다.
우윤근은 대표적 개헌론자이자 의회주의자로 꼽힌다. 그는 독일식 의원내각제로 개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야 의원들로 구성된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 공동회장을 맡고 있다.
◆ 기타
우윤근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다. 우윤근은 국회의원을 마치고 나면 수도원에 들어가 명상과 봉사에 나설 계획도 갖고 있다.
우윤근은 '여의도 산사나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등산을 좋아한다. 그는 K2 등 히말라야를 2회 등정했다.
우윤근은 소리꾼 장사익과 돈독한 사이로 알려졌다. 1995년 함께 실크로드를 횡단했다. 좋아하는 노래는 유정천리다.
우윤근은 '불완전함의 영성', '그리스인조르바'를 좋아하는 책으로 꼽는다.
좌우명은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이다.
우윤근은 2014년 2월 말 기준으로 재산이 19억9천만 원에 이른다.
저서로 <개헌을 말한다>(2013, 함께맞는비), <한국정치와 새로운 헌법질서>(2009, 리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