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이 31일 오후 대우조선해양의 민영화와 관련한 입장을 밝히기 위해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의 기자간담회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이 20년 가까이 묵은 ‘대우’의 유산을 정리한다.
이 회장은 앞으로 불거질 수 있는 특혜 시비와 혈세낭비 논란을 각오하면서도 대우조선해양을 넘기는 결단을 보여줬다.
대우조선해양 매각은 산업은행에게 해묵은 과제다. 대우조선해양은 대우중공업에서 떨어져 나온 2000년부터 19년째 산업은행 자회사로 남아있다.
이 회장은 31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여러 차례 조선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강조했다. 단순히 기업을 사고 파는 문제가 아니라 조선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결단이었다는 것이다.
산업은행은 이날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인수합병과 관련한 조건부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이번 거래는 현대중공업그룹과 산업은행이 조선사를 총괄하는 ‘조선통합법인(가칭)'을 만드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산업은행이 이 법인에 대우조선해양 주식 5973만8211주를 현물출자하고 조선통합법인으로부터 신주를 받는다.
현대중공업그룹은 다른 자금은 크게 들지 않는 대신 대우조선해양 유상증자에 참여해 1조5천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자금이 부족하면 1조 원을 추가로 지원한다.
이번 방안은 크게 두 가지의 논란거리를 안고 있다.
우선 산업은행이 당장 공적자금을 회수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번 거래로 산업은행에게 당장 들어오는 돈은 없다.
또 현대중공업과 사실상 수의계약 형태로 추진된다는 점에서 특혜 시비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 역시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이 회장이 기자간담회 내내 조선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강조한 이유도 이런 논란이 불거질 것을 미리 예상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구주 매각을 통해 당장 손을 뗄 수도 있지만 조선통합법인의 2대주주로서 계속 대우조선해양을 비롯해 국내 조선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힘쓸 것이라고도 했다.
이 회장이 이런 논란거리를 감수하면서도 이번 결정을 내린 이유는 보통의 공개 경쟁입찰을 통해서는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할 만한 원매자를 찾기가 사실상 어렵다는 현실적 판단이 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산업은행이 보유한 대우조선해양의 지분가치는 2조1200억 원 수준이다. 조선업황이 나날이 좋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어려운 상황에서 어느 누구라도 선뜻 지불하기 쉽지 않은 액수다. 자칫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도 있다.
국내 조선산업 전체를 위한 대승적 판단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업계에서 수 년 전부터 '빅3'에서 '빅2'로 재편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 회장은 지금이 적기라고 봤다. 중국이나 싱가포르 등 해외 후발주자들의 위협이 거세지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늦어지면 안 된다는 것이다.
20년 가까이 산업은행을 괴롭히던 대우조선해양이 산업은행 품을 떠난다.
여러 차례 임기 안에 대우조선해양을 매각하고 싶다고 밝혀왔던 이 회장은 홀가분해졌을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산업은행은 조선통합법인의 2대주주로 여전히 영향력을 유지한다.
조선통합법인에는 대우조선해양만 있지 않다. 현대중공업을 비롯해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등 삼성중공업을 제외한 국내 조선사 대부분이 산업은행 아래에 있는 셈이다.
'빅2' 재편으로 조선산업 경쟁력이 더 떨어질 가능성 역시 배제하기 어렵다. 그에 따른 후폭풍은 이 회장의 몫이다.
이 회장의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