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은 대통령과 국회가 주권자인 국민의 이익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다음 선거를 통해 정권을 교체한다.
이를 두고 그 누구도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국가 경영권 침해’라고 반발하지 않는다.
최근 국민연금이 한진칼과 대한항공 등 한진그룹 계열사를 향해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검토하는 것을 두고 국가기관이 기업의 경영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연금 사회주의’라는 날선 단어도 꺼내들고 있다.
과연 그럴까?
주식회사의 주인은 자본금을 출자한 주주다. 모든 주주가 지분율에 따라 회사의 경영에 참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경영을 경영자에게 위임하고 있을 뿐이다. 주주가 기업가치를 제대로 높이지 못하고 있는 경영자에게 간섭하는 것은 주주의 당연한 권리다.
한진그룹 역시 마찬가지다. 조 회장이 한진그룹의 지주회사인 한진칼에 주장할 수 있는 권리는 정확히 조 회장과 조 회장의 특별관계자가 보유하고 있는 한진칼의 지분율 28.83%까지만이다.
특히 국민연금은 국민의 ‘연금’을 사용해 수익을 내고 훗날 이를 국민에게 다시 돌려줘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는 ‘공적' 연기금이다. 국민의 재산에 손실이 가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할 의무가 있는 셈이다.
국민연금이 이번에 한진그룹 계열사에 적용하려고 하는 ‘스튜어드십코드’라는 단어도 유사한 뜻을 내포하고 있다. 스튜어드는 ‘집사’를 뜻하는 영어단어다. 집사가 고용주의 돈을 관리하 듯이 최선을 다해 국민의 이익을 위해 수탁자 책임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 스튜어드십코드의 도입 취지다.
조 회장과 오너일가의 경영이 국민연금의 재산에 피해를 주고 있다고 판단된다면 이를 적극적으로 바로잡는 것은 한진칼의 3대주주, 대한항공의 2대주주로서 국민연금의 당연한 권리일 뿐 아니라 의무란 얘기다.
2004년 3월3일 열린 세계 최정상의 엔터테인먼트기업 월트디즈니의 주주총회에서 43%의 주주들은 마이클 아이스너 회장의 이사 선임에 반대표를 던졌다. 주총 직후 열린 월트디즈니 이사회는 아이스너 회장의 회장 자리를 조지 미첼 월트디즈니 이사회 의장에게 넘기고 아이스너 회장은 CEO만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아이스너 회장이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캘퍼스(CalPERS)라 불리는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이었다. 캘퍼스는 당시 계속되고 있던 월트디즈니의 실적 부진과 주가 하락의 책임이 아이스너 회장에게 있다고 봤다.
캘퍼스는 월트디즈니 외에도 ‘포커스 리스트 프로그램’을 통해 캘퍼스가 투자하고 있는 기업 가운데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는 기업의 경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왔다.
캘퍼스의 적극적 수탁자 책임 이행은 ‘캘퍼스 효과’라는 용어까지 만들어냈다. 미국의 시장조사기관 윌셔는 캘퍼스가 개입한 포커스 리스트 프로그램 대상 기업의 실적과 주가가 캘퍼스 개입 이전보다 훨씬 나아졌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캘퍼스는 2017년 수익률 15.73%를 냈다. 이는 국민연금이 지난해 거둔 수익률 7.26%의 두 배를 웃도는 수치다.
다시 대한항공으로 돌아가 의문을 던져보자. 대한항공은 과연 누가 주인인가? 조 회장이 국민연금의 요구를 놓고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경영쇄신책을 내놓고 주주총회에서 더 많은 주주의 신임을 얻으면 된다. [비즈니스포스트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