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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홍용표 통일부 장관

남북관계 실무 경험 있는 학자 출신
김디모데 기자 Timothy@businesspost.co.kr 2015-04-01 19:2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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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Who Is ?] 홍용표 통일부 장관
▲ 홍용표 통일부 장관.



1964년 4월15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희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나와 1989년 석사장교로 입대해 1990년 6개월 복무 뒤 소위로 제대했다.

그후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미국 오리건대 교환교수, 한양대 정치외교학전공 교수를 지냈다.

2012년 새누리당 대선캠프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외교통일추진단 위원으로 참여하며 정치와 연을 맺었다.

2013년 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외교국방통일분과 실무위원으로 활동하고 박근혜정부 출범 때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통일비서관으로 발탁됐다. 2015년 3월 통일부 장관에 취임했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에서 유일한 통일분야 전문가로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과 ‘드레스덴구상’을 만드는데 힘을 보탠 것으로 알려졌다.

학자출신이지만 청와대 비서관으로 재직하면서 남북대화 남측 대표로 나서는 등 실무경험을 쌓았다. 현 정부에서 통일분야의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2015년 8월 북한의 지뢰도발이 있었다. 홍용표는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나흘간에 걸친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극적으로 합의안을 도출했다. 홍 장관은 노련한 협상가인 김양건 북한 노동당 비서 등에 맞서 논리정연하게 북한의 DMZ 지뢰도발과 서부전선 포격도발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96년부터 2001년까지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을 역임했다.

이후 한양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2013년까지 재직했다. 이 기간 중 한양대학교 통일정책연구소 연구실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경실련통일협회 이사, 한국동북아학회 이사, 북한연구학회 연구이사, 한국정치학회 연구위원회 이사, 한국국제정치학회 연구이사, 국가미래연구원 외교안교분과 회원 등을 역임했다.

2007년부터 2008년까지 미국 오리건대학교 방문교수로 나가 있기도 했다.

2010년과 2011년 외교통상부 외교문서공개예비심사 외부전문가와 외교사료편찬 감수위원을 맡았다. 2011년과 2012년 국무총리실 정부업무평가위원회 핵심과제평가단 통일외교안보분야 전문위원을 맡았다.

2013년 박근혜 당선인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외교국방통일분과 실무위원으로 활동한 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비서관실 통일비서관에 임명됐다.

2014년 2월 판문점 남북 고위접촉 당시 남측 차석대표를 맡아 대북협상 전면에 나섰다. 같은 해 10월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이 인천을 방문했을 때 남측 대표 8명 가운데 한 명에 포함됐다.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 구성도 주도했다.

◆ 학력

1983년 경희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7년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1989년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6년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부친은 한국일보 이사와 코리아타임스 편집국장을 지낸 홍순일씨, 모친은 김금순씨다.

1992년 부인 임선희씨와 혼인해 1남(홍성재)를 두었다. 서승환 전 국토교통부 장관의 부인 홍승희씨가 홍용표의 누나다.

◆ 상훈

2013년 12월 홍조근정훈장을 수상했다.

◆ 상훈

2013년 12월 홍조근정훈장을 수상했다.

어록


“지난 3년간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일관되게 추진했고 의미있는 성과도 거뒀다. 무엇보다 올해 평화통일 기반 구축을 위한 신뢰 쌓기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2016/01/04 통일부 시무식에서)


“독일통일 25주년 기념식에서 만난 한 전문가는 독일통일 과정에서 인문심리학적 접근이 부족했다는 아쉬움을 밝혔다. 아직 분단국에 살고 있는 저로서는 그런 고민이 그저 행복한 고민으로 들린다고 말했다. 동시에 그의 고민을 남북통일 준비과정에서 미리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2015/10/13 2015 세계 북한학 학술대회 환영사에서)


“정부가 민간교류를 지원하고 있는데 북한이 응하지 않고 있다. 앞으로 북한의 호응 여부가 중요하다. 5.24제재 하에서도 할 수 있는 민간교류가 많다.” (2015/09/11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5.24조치의 해제는 천안함 폭침에 대한 북한의 책임있는 자세가 있어야 가능하다. (2015/08/27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나는 대북성향에 있어 비둘기도 매도 아닌 올빼미다. 균형감각을 갖고 어떻게 만들어가는지가 중요하다” (2015/03/16 취임식 이후 기자들에게)


“통일부 장관으로 일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남북관계의 실질적 진전과 평화통일 기반 구축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 나가겠다” (2015/02/17 통일부 장관 내정 소감)

◆ 평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에서 유일한 통일분야 전문가로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과 ‘드레스덴구상’을 만드는데 힘을 보탠 것으로 알려졌다.

학자출신이지만 청와대 비서관으로 재직하면서 남북대화 남측 대표로 나서는 등 실무경험을 쌓았다. 현 정부에서 통일분야의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2015년 8월 북한의 지뢰도발이 있었다. 홍용표는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나흘간에 걸친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극적으로 합의안을 도출했다. 홍 장관은 노련한 협상가인 김양건 북한 노동당 비서 등에 맞서 논리정연하게 북한의 DMZ 지뢰도발과 서부전선 포격도발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 기타

현직 청와대비서관(1급)에서 차관급을 거치지 않고 바로 장관으로 지명돼 파격인사라는 말을 들었다.

개각 발표 당일 아침까지 통일부 장관에 김규현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이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작 청와대는 홍용표를 통일부 장관 후보자로 발표해 혼선을 빚는 일이 있었다.

부친 홍순일 전 한국일보 특파원은 1974년 응우옌반티에우 베트남 대통령을 인터뷰하고 장기집권하는 베트남 독재정권을 비판하는 기사를 써 박정희 유신정권의 탄압을 받았다. 이 사건은 10.24자유언론 실천운동을 촉발했다.

<북한의 미사일 개발 전략>(1999, 통일연구원)과 <김정일 정권의 안보딜레마와 대미·대남정책>(1998, 민족통일연구원) 두 편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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