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의 광주형 일자리 참여를 놓고 대통령의 공약사업으로 여야 5당에서도 초당적 협력 의사를 밝힐 정도로 명분을 갖춘 사업이라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과 함께 고임금 구조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대차로서도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의선 총괄 수석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앞두고 있고 수소차 사업이나 한전 부지에 건립을 추진 중인 글로벌 비즈니스센터 등 정부 차원의 협조가 필요한 처지라 실익이 적은 일에 참여를 결정했다는 말도 현대차 내부에서 나온다.
현대차에 다니는 한 직원은 “연구직 직원들은 광주형 일자리사업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지만 현장직을 중심으로 반대 여론이 강하다”고 전했다.
노조는 대부분 현장직 인원들로 구성돼있는데 이들은 광주형 일자리사업이 낮은 임금을 받는 ‘나쁜 일자리’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며 협상 초기부터 사업 추진에 거세게 반발했다.
노조는 광주형 일자리를 통해 경형 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를 생산하겠다는 계획도 자동차산업의 흐름에 맞지 않다고 본다. 국내 경형 SUV시장이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렀는데 여기에 연간 10만 대가량의 물량이 더해지면 공급 과잉이 된다는 것이다.
울산 1공장 가동률이 90% 안팎을 보이는 상황에서 현대차가 또 다른 공장을 만들려고 하는 이유를 납득하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생산직 직원들 사이에 넓게 번져 있다.
광주형 일자리사업이 추진되면 노조가 총파업으로 맞서겠다고 수차례 밝혔는데도 불구하고 현대차가 사업을 강행하려는 배경을 놓고도 부정적 시각도 많다.
현대차는 3분기에 자동차부문에서 영업손실을 내며 부진했는데 노조의 파업까지 겹친다면 올해 성적표가 더욱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
현대차 관계자는 “광주형 일자리사업은 단순한 투자자로서 수익성이 있다고 생각해 검토해온 사업”이라며 “위탁생산공장 건설로 고임금 구조에서 벗어난다면 수익성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가 수익성 확보와 별개로 정부의 직간접적 지원을 염두에 두고 광주형 일자리에 투자하기로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증권가에서 나온다.
이상현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차 입장에서 생각해볼 때 현대차는 수소차와 관련한 정부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국내공장을 건설할 필요가 있다고 봤을 수 있다”며 “그동안 해외공장에만 투자하고 국내투자를 진행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비판여론 등을 의식했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현대차는 세계 최초로 수소차 ‘넥쏘’를 양산하며 미래 수소차시장에서 주도권을 쥐려는 의지를 강하게 보이고 있다. 하지만 수소충전소가 전국적으로 10개 안팎에 머무는 등 인프라가 미흡해 수소차 보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 하부영 전국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지부장.
1개의 수소충전소를 건설하는데 드는 비용은 약 20억~30억 원으로 전기충전소 건설 비용보다 최소 10배 이상 비싼데 이를 서둘러 확충하려면 정부의 보조금 지원 등이 필수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일 뿐만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등 여당이 광주형 일자리에 전력을 쏟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현대차가 정부 정책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정책적 지원을 받는데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현대차가 정의선 수석부회장의 승계를 염두에 두고 사업에 합의했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노조는 11월에 보도자료를 통해 “문재인 정부는 집권 당시 내걸었던 일자리 창출이라는 공약을 지키기 위해 집권이 끝나는 순간까지 현대차를 압박할 것”이라며 “현대차는 실효성 없는 공장 신설임을 알지만 정의선 수석부회장의 3세 경영세습 등을 위해 ‘부도수표’ 발행을 고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배구조 개편의 압박을 받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현대차그룹에 4개의 순환출자 고리를 끊고 일감몰아주기를 해소해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현대차로서는 지배구조 개편과 맞물려 정 수석부회장의 경영권을 자연스럽게 승계할 수 있는 방안을 동시에 모색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재벌개혁 기조와 발맞추면서도 정 수석부회장의 승계를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지배구조 개편안을 내놓으려면 사실상 정부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업계는 바라본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은 정부 측 관계자들을 만나 지배구조 개편을 놓고 물밑에서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는데 앞으로 정부와 부드러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광주형 일자리정책에 찬성한 것이라고 노조는 바라본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