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적자기업 쿠팡에 2조 원을 추가 투자하며 기술 투자를 향한 의지를 보였다.
손 회장은 3년 전 쿠팡에 1조 원을 투자했는데 그 이후 쿠팡은 흑자를 내지 못해 자본잠식에 빠졌다. 그럼에도 손 회장이 더 많은 투자금을 투입하기로 한 것은 기술을 향한 손 회장의 투자 욕심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쿠팡은 손 회장의 투자에서 비교적 작은 부분이다. 손 회장은 역대 최대 규모의 소프트뱅크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상장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세계를 상대로 한 기술투자 행보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파악된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손 회장은 12월19일 소프트뱅크그룹(SBG)의 통신 자회사인 소프트뱅크를 일본 도쿄증시에 상장한다.
도쿄증권거래소는 12일 소프트뱅크의 상장을 승인했다. 소프트뱅크는 주당 1500엔에 16억 주를 매각해 최대 2조6천억 엔(약 26조 원)을 조달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는 도쿄증시 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공개다. 세계로 범위를 넓혀도 2014년 알리바바의 뉴욕 증시 상장에 이어 두 번째다.
손 회장은 소프트뱅크 상장으로 조달한 자금을 기술 투자에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손 회장은 2016년 설립한 소프트뱅크 비전펀드(SVF)에 상장으로 확보한 자금을 투입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손 회장은 통신사업으로 거부를 일궜으나 최근에는 기술 투자자로 변모 중이다. 그는 세계에서 반도체, 인공지능, 공유경제 등 4차산업혁명을 주도할 기술에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다.
1천억 달러 규모의 비전펀드는 그 중심에 있다. 비전펀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기술 투자기금으로 세계 벤처캐피탈의 투자총액과 맞먹는 수준이다.
손 회장은 비전펀드를 통해 영국 반도체기업 ARM, 미국 인공지능기업 엔비디아, 차량공유기업 우버와 디디추싱, 사무실공유기업 위워크 등 4차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하는 유망한 기술기업들에 투자했다.
손 회장의 투자가 성과를 내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소프트뱅크는 9월 마감한 2018 회계연도 상반기에 영업이익 1조4207억 엔(14조2천억 원)을 내 사상 최대를 보였다.
비전펀드가 영업이익 6487억 엔(6조5천억 원)으로 전체 이익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다. 엔비디아와 인도 호텔숙박앱 오요 등의 지분평가액이 크게 늘어난 점이 실적을 견인했다. 비전펀드 영업이익은 2017년 상반기와 비교해도 3배 가까이 늘어났다.
손 회장은 앞으로 기술 투자를 더욱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10월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와 인터뷰에서 “2~3년마다 1천억 달러 규모의 새 펀드를 만들고 연간 500억 달러씩을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반체제 언론인 사망 사건이 벌어지는 등 불확실한 정세는 손 회장의 기술 투자 확대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비전펀드의 최대 출자자가 손 회장이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이기 때문이다. 국부펀드가 450억 달러, 소프트뱅크가 280억 달러를 투자했다. 나머지는 아부다비 국부펀드(150억 달러), 애플, 폭스콘, 퀄컴, 샤프 등이다.
손 회장은 사우디아라비아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모함메드 빈 살만 왕세자와 손잡고 비전펀드를 출범했다. 빈 살만 왕세자는 10월 손 회장의 2차 비전펀드에도 45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협력을 약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빈 살만 왕세자가 언론인 카슈끄지 사망 사건의 배후자로 지목되면서 글로벌기업들이 사우디아라비아와 거래를 꺼려하는 모양새라 손 회장은 난처하게 됐다. 2차 비전펀드 출범도 불투명하게 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손 회장은 일단 10월23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국제투자회의에는 불참했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와 협력관계는 유지해 나가겠다는 뜻을 보였다.
그는 5일 소프트뱅크 2분기 실적발표장에서 언론인 사망 사건을 놓고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면서도 “사회를 개혁하고 현대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사람들을 등 질 수는 없다”고 말했다.
손 회장은 재일교포 3세로 미국 UC버클리에서 경제학과 컴퓨터공학을 공부했다. 1981년 소프트뱅크를 창업해 소프트웨어 유통, 초고속인터넷 서비스 등의 사업을 했다. 2006년에는 보다폰재팬, 2012년 미국 스프린트를 인수하며 통신사업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손 회장은 통신사업의 성공 이상으로 투자자로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가장 대표적 사례가 알리바바다.
손 회장은 2000년 소프트뱅크를 통해 알리바바에 2천만 달러를 투자했는데 2014년 알리바바 상장으로 60조 원 가까운 투자수익을 얻었다. 손 회장이 보유한 소프트뱅크 지분 가치도 덩달아 뛰면서 그는 일본 최고 부자에 등극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