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정 부회장도 카드업계에 불어닥친 칼바람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현대카드의 인력 감축설을 놓고 안팎이 뒤숭숭하다.
정 부회장이 이 엄혹한 시절에도 남과 다른 길을 갈 수 있을까?
9일 카드업계에 따르면 정 부회장이 현대카드 창사 이래 처음으로 인력 감축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최근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컨설팅 작업을 통해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 현대커머셜에서 모두 합쳐 400여 명의 인력을 축소해야 한다고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앞서 10월에는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에서 모두 6명의 임원이 회사를 떠났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회사 내부에서 인력 감축 움직임이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우선은 인위적 희망퇴직 등을 통한 구조조정보다는 신규 채용을 하지 않는 등 자연스럽게 인력을 줄이는 방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 부회장도 최근 인력감축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보스턴컨설팅그룹이 제시한 400명)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인력 감축을 인정한 셈이다.
현대카드는 업계 3위에 그치지만 존재감은 업계 1위 신한카드에도 뒤지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정 부회장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정 부회장은 국내 카드사를 이끄는 경영인 가운데 유일한 오너경영인이다.
오너경영인이라는 사실 자체가 정 부회장이 지닌 가장 큰 경쟁력이다. 단기 성과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고 장기적으로 회사를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폴 매카트니’와 ‘콜드플레이’의 한국 방문 공연으로 대표되는 ‘슈퍼콘서트’의 문화 마케팅이나 땅값이 비싼 노른자위에만 둥지를 튼 ‘현대카드 라이브러리’가 대표적으로 현대카드의 화려함을 상징한다.
사실 정 부회장의 문화 마케팅은 현대카드 실적이 조금만 부진해도 바로 공격의 대상이 된다.
‘아직 살 만하다’ 혹은 ‘한가하다’는 비아냥이 업계 안팎에서 나오는 탓이다. 특히 최근 몇 년 동안 국내 카드사들이 생존을 걱정할 정도로 벼랑에 내몰리면서 현대카드를 보는 다른 카드사들의 시선은 더욱 곱지 않다.
그럼에도 그동안 현대카드는 "브랜드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가치"라며 버텼다.
그러나 인력 감축까지 고민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정 부회장의 실험이 정말 '시험대'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올해 현대카드의 상반기 순이익은 773억 원에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40.9%나 감소했다.
앞날은 더욱 어둡다. 수수료와 이자 수익은 줄어드는데 수수료 인하 압박은 점점 커지고 있다.
정부가 카드사들의 가맹점 수수료 수익을 최대 1조 원 가까이 줄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미 7천억 원 규모의 수수료 수익을 줄이기로 확정돼 있는데 추가로 3천억 원을 더 줄이겠다는 방안이다.
일각에서 현대차그룹에서 ‘정의선 시대’가 열리면서 정 부회장의 입지가 불안해지자 인력 감축 카드를 꺼내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은 9월 승진한 뒤 주요 부문의 임원인사와 조직 개편을 실시하는 등 현대차그룹에 '정의선 색깔'을 빠르게 입히고 있다. 하지만 아직 '새 술을 새 부대에 함께 담을' 만큼의 경영진을 꾸려내지는 못하고 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