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 고금리 고환율. 이른바 '3고 시대'가 장기화하면서 수출기업은 물론 내수기업까지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등 일부 산업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모든 산업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재무부담이 커진 기업들은 비주력사업을 매각하고, 인력을 전환 배치하는 등 대대적 구조조정을 통한 자구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정부도 기존 자원투입 중심 산업에서 생산성 중심으로 전환하겠다며 '역동경제 로드맵'을 공개하고 기업들의 체질개선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업재편으로 탈출구를 찾으려는 기업들의 대응 상황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비즈니스포스트] 정부가 고금리 장기화에 시름하는 저축은행의 체질개선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업계 전반의 건전성을 관리하기 위한 다중채무자 충당금 규제부터 ‘1금융권’ 수준의 자본 규정 강화까지 다양한 조치로 시장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 정부가 고금리 장기화에 시름하는 저축은행 업계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인수합병시 자본비율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어 앞으로 업계 전반의 구조조정에 힘이 실릴 가능성이 나온다.
10일 저축은행업계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국내 주요 저축은행은 고금리가 장기화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2분기에도 부진한 실적 흐름을 이어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저축은행 79곳은 올해 1분기 1543억 원의 순손실을 내며 지난해 순손실(5559억) 흐름을 이어갔다.
이에 따라 정부는 저축은행의 자산건전성을 높여 시장 불안을 막는 데 주력하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올해 7월 적용 예정이던 다중채무자 추가 충당금 적립 규제를 계획대로 실행한 것이 대표적이다.
애초 업계에서는 다중채무자 고객이 많은 저축은행 특성상 충당금 부담이 커질 수 있는 만큼 금융당국이 규제 연기를 검토할 가능성이 나왔다.
저축은행업계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앞으로 시행세칙 등을 손질할지는 모르겠지만 다중채무자 추가 충당금 규제는 7월 계획대로 적용돼 9월 결산부터 반영될 것이다”며 “실적이 좋은 것도 아니고 충당금을 더 쌓아야 하는 만큼 부담인 것이 사실이다”고 말했다.
정부는 저축은행 자본 규정을 강화해 자기자본을 은행 수준으로 높이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금리시대 정부가 저축은행에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자본건전성을 요구하는 것인데 이는 저축은행업계 전반의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의 건전성 규제를 맞추기 못한 저축은행이 밀려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인수합병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도 건전성 규제를 강화하는 동시에 수도권 저축은행 인수합병을 놓고는 자본비율 규제 완화를 검토하는 등 구조조정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저축은행업계에서는 인수합병을 통한 구조조정이 녹록치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유력 인수합병 후보인 국내 주요 금융그룹이 이미 과거 저축은행 사태 이후 이미 한 곳씩을 인수해 보유하고 있어서다.
우리금융그룹이 지난해 상상인저축은행 인수를 타진한 사례가 있으나 이 역시 가격이 맞지 않아 발을 뺐다. 우리금융은 수도권 영업권이 없는 우리금융저축은행을 보유하고 있는데 최근 우리금융저축은행에 1천억 원을 증자하며 자체 경쟁력 강화에 힘을 실었다.
사모펀드 관점에서도 수익성이 악화한 저축은행은 인수 매력이 낮을 수밖에 없다. 당장 실적 반등 가능성이 낮은 상황에서 부실을 안고 경영정상화에 나서야해서다.
대형 저축은행은 업계 전반의 영업환경이 좋지 않아 외형성장에 힘쓰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업계 1위 SBI저축은행과 2위 OK저축은행 모두 지난해 금융당국이 터준 ‘지방은행 전환’이나 ‘인수합병’ 계획 없이 자체 내실 다지기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같은 상황에서 규제 강화와 완화 사이에서 내실 있는 구조조정을 노릴 것으로 보인다.
저축은행업계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손실 규모가 쌓아둔 충당금 규모를 웃돌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무리한 구조조정은 시장 전반의 안전성을 해칠 수도 있어서다.
나이스신용평가는 1일 보고서를 통해 “금융당국의 정책방향을 고려하면 앞으로 부동산PF 재구조화와 정리로 업권이 보유한 부동산 상당수 사업장에서 손실 인식은 불가피하다”며 “손실 규모는 대체로 이미 쌓은 대손충당금 규모를 웃돌 것이다”고 내다봤다.
구조조정의 ‘열쇠’인 인수합병을 촉진하는 과정에서 소비자에 피해가 돌아가지 않도록 하는 방안이 중요하다는 시각도 나온다.
박준태 금융연구원 연구원은 5일 보고서에서 “인수합병 활성화를 위해서는 영업구역 규제완화나 정책서민금융상품 취급 인센티브 강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며 “다만 인수합병 이후 저축은행에서 부실이 벌어지면 시장 악영향이 커질 수 있는 만큼 인수합병 활성화는 내부통제 규제 강화와 같이 논의돼야 한다”고 바라봤다.
▲ 저축은행 자산 및 여신 규모는 감소 곡선을 그리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
저축은행업계는 현재 상황을 위기로 인식하고 자체적으로 영업규모를 줄이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저축은행중앙회 공시를 보면 저축은행 수신 거래자 수는 3월 말 기준 553만8229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찍은 지난해 6월(594만9933명) 이후 3분기 연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저축은행은 그럼에도 시중은행보다도 금리를 낮추며 고객 유치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날 기준 저축은행 79곳의 예금(12개월) 금리 평균은 3.66%로 1월1일(3.96%)보다 0.30%포인트 낮아졌다. 은행권 최고금리(3.90%, NH농협은행 고향사랑기부예금)에 못 미쳐 이른바 ‘금리역전’ 현상도 지속되고 있다.
고금리 시대에 연체율 등을 고려하면 추가로 돈을 빌려줄 곳도 마땅치 않은 만큼 이자비용(예금금리)을 낮추며 외형보다 내실 다지기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저축은행업계 다른 관계자는 "고금리가 오랜 기간 유지돼 업계 전반의 분위기가 좋지 않고 한동안 이같은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며 "본격적으로 장이 열려야 알겠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인수합병과 관련해 나오는 것은 없고 시장의 수요도 크지 않다"고 바라봤다. 김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