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영 기자 lanique@businesspost.co.kr2018-10-05 16:5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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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뒤로 물러설 때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물러서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장윤근 STX조선해양 대표이사 역시 그동안 퇴로가 막혀 애를 먹어왔다. 경영 정상화를 이뤄내려면 일단은 한 발 물러서야 하는데 자산 매각에 좀처럼 속도가 붙지 않았다.
▲ 장윤근 STX조선해양 대표이사.
하지만 최근 들어 비핵심사업과 부동산이 잇따라 팔리면서 부활을 위한 기반이 다시 쌓이고 있다.
5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삼강엠앤티는 STX조선해양 특수선사업을 인수하기 위한 계약을 맺고 관련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산업통상자원부가 이와 관련한 의견 검토를 요청해 방위사업청이 조사 중이다.
방위사업체는 인수합병할 때 산업부 장관의 승인이 필요하며 산업부는 방위사업청과 협의를 거쳐야 한다.
STX조선해양은 유도탄 고속함인 ‘전병익함’을 지난해 말 해군에 인도한 뒤로 특수선 일감을 한 건도 따내지 못했다. 올해 초 특수선사업에서 손을 떼고 매각으로 방향을 잡았는데 이번 계약으로 부족한 유동성을 확대할 수 있게 됐다.
STX조선해양은 하반기 들어 자구계획안에 따른 자산 매각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매각 대상인 주요 부동산 4곳 가운데 창원 연구개발(R&D)센터는 매수자인 센트랄이 8월 말 잔금을 완납해 거래가 마무리됐다. 690억 원 규모의 고성 플로팅도크도 삼강에스엔씨에 매각했고 진해에 위치한 제2 사원 아파트(480억 원 규모)도 건설회사와 매각 계약을 맺었다.
남은 것은 진해조선소 근처에 있는 행암공장이다. 당초 530억 원대 매매계약을 체결했지만 잔금이 치러지지않아 무산된 탓에 새로운 매수자를 찾고 있다.
장 대표로서는 드디어 숨통이 트인 셈이다. 정 대표는 2016년 법원으로부터 STX조선해양의 관리인으로 지정받은 뒤 회사를 생존가능한 기업으로 만들기 위해 부심해왔다.
장 대표는 “‘빅4 조선사’로 불리던 과거의 허영심과 군더더기를 과감히 버리고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돌아가는 길이 말처럼 쉽지 않았다.
올해 4월 인력 구조조정이 차질을 빚으면서 두 번째 법정관리의 위기가 찾아왔다. 해고 대신 직원들 임금을 60% 깎기로 하면서 가까스로 고비를 넘겼더니 자산 매각이 뜻같지 않았다.
내놓은 자산이 좀체 안 팔려 유동성에 문제가 생기자 선박 6척의 수주가 줄줄이 취소되기도 했다. 선수금환급보증(RG)을 못받았기 때문이다.
선수금환급보증은 조선소가 배를 발주사에 넘기지 못할 때를 대비해 건조비용으로 미리 받은 돈을 금융기관이 대신 물어주겠다고 보증을 서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장 대표는 다시 수주에 속도를 내고 있다. 보증을 받지 못해 계약을 날리면 선사와 신뢰관계에 금이 갈 수 있지만 최근 자산 매각 작업이 원활히 풀리면서 다시 자신감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
STX조선해양은 9월 스페인에서 열린 가스박람회 가스텍(Gastech)에서 석유화학제품 운반선 3척의 건조계약 의향서를 맺었다. 장 대표가 직접 발로 뛰어 계약을 따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대우조선해양 출신으로 영업 현장에서 경력 대부분을 쌓았는데 이번 박람회에서도 홍보부스없이 직접 선주사를 찾아 다녔다.
9월12일에는 그리스 선사가 발주했던 5만DWT(재화중량톤수)급 유조선 2척도 수주가 확정됐다. 당초 6월에 발주됐으나 산업은행이 자구계획안 이행이 지체되고 있다는 이유로 보증을 해주지 않다가 이번에 선수금환급보증을 내줬다.
STX조선해양 관계자는 “최근 선수금환급보증을 발급받아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면서 정상 기업에 한 발 더 나아갈 기회를 잡았다”며 “공격적 수주전을 펼쳐 곧 좋은 소식을 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STX조선해양은 올해 수주목표로 15척을 잡고 있다. 가스텍에서 계약을 약속한 3척을 포함해 지금까지 9척을 채웠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