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가 신규 원전건설에 새로운 사업 방식을 적용하면서 한국전력공사의 영국 원전 수출사업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앞으로 협상 과정에서 적절한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가 영국 원전 수출의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 영국 원전 수출, 사업 방식 변경으로 새 국면 맞아
문신학 산업통상자원부 원전산업정책관은 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영국 원전 수출사업은 영국 정부가 신규 원전사업에 규제자산 기반(Regulated Asset Base) 방식을 도입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전력이 보유한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는 사라졌지만 협상의 본질이 달라진 것은 없다”며 “영국 정부는 한국전력을 우선협상대상자 지위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여기고 협상을 계속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일본 도시바는 영국 북서부 무어사이드 지역에 원전 3기를 짓는 누젠 컨소시엄의 지분 매각을 놓고 7월25일 한국전력에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해지한다고 통보했다.
한국전력은 2017년 12월 도시바가 100% 지분을 보유한 누젠 컨소시엄을 인수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는데 최근 해외언론을 통해 지위 상실 소식이 전해지면서 영국 원전 수출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관측이 나왔다.
문 정책관은 도시바의 해지 통보 이후 영국 출장을 떠나 7월30일 런던에서 영국 기업에너지산업전략부(BEIS)와 실무회의(Joint Working Group)를 진행한 뒤 귀국해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문 정책관에 따르면 도시바가 한국전력에 우선협상대상자 해지를 통보한 데는 영국 정부가 6월 신규 원전사업 방식을 발전차액 정산(CfD) 방식에서 규제자산 기반(RAB) 방식으로 변경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규제자산 기반 방식은 정부 등 규제기관(Regulator)의 지원으로 자금 마련을 가능하게 해 안정적 수익률을 보장하는 사업모델로 사업자가 자금을 직접 조달해 원전을 짓고 전기를 팔아 투자금을 회수하는 발전차액 정산 방식보다 수익성과 위험성이 모두 낮다는 특징이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은 그동안 발전차액 정산 방식을 전제로 영국 정부, 도시바와 협의를 진행했는데 새로운 방식이 도입되면서 사업 타당성을 처음부터 다시 따져야 할 상황에 놓였다.
도시바는 누젠 컨소시엄 운영비 등에 부담을 느끼는 상황에서 사업 방식 변경으로 매각 작업이 또 다시 지연될 가능성이 나오자 한국전력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박탈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자력업계는 반 년 넘게 유지된 한국전력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 에너지 안보를 중시하는 영국 정부의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이번 도시바의 선택을 놓고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바라보고 있다.
정동익 KB증권 연구원은 1일 “한국전력 외에 마땅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이번 도시바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박탈은 협상전략의 일환일 가능성이 있다”며 “한국전력이 영국 원전 수출에 최종 실패한 것으로 결론 내는 것은 성급하다”고 바라봤다.
◆ 백운규, 영국 원전 수출 수익성 확보가 관건될 듯
하지만 도시바가 중국 등 다른 사업자와 새로운 협의를 진행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도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영국 원전 수출은 앞으로
백운규 장관이 협상 과정에서 얼마나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느냐에 성패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 문신학 산업통상자원부 원전산업정책관이 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영국 원전수출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은 6월 이미 영국 정부, 도시바, 누젠 컨소시엄과 규제자산 기반 방식을 적용할 때 수익성과 리스크를 검토하기 위한 ‘공동타당성 연구’를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타당성 연구 결과가 나오면 이를 바탕으로 한국 정부의 예비 타당성 조사를 진행해 올해 안으로 최종 사업참여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기존 발전차액 정산 방식 아래에서는 투자금 회수 등 사업자체의 위험성을 얼마나 낮출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면 규제자산 기반 방식 아래에서는 수익성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느냐가 예비 타당성 결과를 좌우할 수 있는 셈이다.
예비 타당성 조사는 크게 수익성과 공익성을 보는데 수익성은 보통 비용대비 편익률(B/C)이 1을 넘겨야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백 장관에게 영국 원전 수출은 반드시 성사해야 하는 사업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영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해외 원전 수출 가능성은 그동안 백 장관이 국내에서 탈원전 등 에너지 전환정책을 추진하는 데 훌륭한 방패 역할을 했다.
백 장관은 영국 원전 수출의 중요성을 아는 만큼 2017년 말 직접 영국을 찾아 한국전력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는 데 힘을 보탰고 올해 들어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도 잇따라 방문했다.
영국 원전 수출은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원전 수출 사업 가운데 가장 빨리 사업자가 결정된다. 영국 원전사업이 성사되지 못하면 백 장관은 에너지 전환정책에 반대하는 측의 집중 공세를 받을 가능성이 큰 셈이다.
윤영석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은 1일 논평을 통해 “결국 정부의 무리한 탈원전정책이 영국 원전 수주를 어렵게 했다”며 “탈원전 정책으로 더 이상의 경제적 손실을 낳지 않도록 탈원전정책의 전면적 재검토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문 정책관은 1일 “지난 6개월 동안 협상에서 영국 정부가 우리에게 탈원전이나 에너지 전환정책과 관련한 사업의 영향을 물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며 한국전력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 상실이 정부 정책과 관련 있다는 주장에 선을 그었다.
그는 “무어사이드 원전사업을 통해 영국의 전력 수급 안정, 도시바의 경영 안정, 한국의 원전 해외 진출이라는 세 나라의 공통이익이 달성될 수 있도록 국가와 기관 사이 협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