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준 LG 부회장이 LG그룹의 경영권 승계 시계에 맞춰 독자적 경영체제 구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23일 재계에 따르면 구 부회장은 장자승계 때 형제나 사촌들이 물러나는 전통에 따라 LG그룹의 일부 사업을 들고 나가 독립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구 부회장이 LG그룹으로부터 분사할 회사로 LG디스플레이, LG화학 등이 거명되는 한편 LG전자가 최근 인수한 글로벌 전장회사 ZKW를 들고 나갈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일각에서는 예상한다.
LG그룹 지주사 LG는 6월 말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구광모 LG전자 정보디스플레이사업부장 상무를 등기이사로 선임하고 곧바로 이사회를 열어 향후 직책과 직위를 정한다.
구 부회장이 그동안
구본무 전 LG 회장의 빈자리를 채우며 그룹 경영을 맡아왔지만 구 상무 체제를 안착시키기 위해 예상보다 빨리 그룹에서 물러나 독립적 경영체제를 구축할 가능성이 높다.
LG그룹은 경영권이 승계되면 형제나 사촌들이 계열분리를 통해 경영권 분쟁의 소지를 없애는 전통이 확고하다.
구인회 창업주가 맏아들인 구자경 명예회장에게 회장 자리를 물려줄 때 창업주의 동생들인 구태회, 구평회, 구두회 회장들은 계열분리를 통해 LS그룹을 세웠다.
구자경 회장이 1995년 맏아들
구본무 회장에게 LG그룹 회장을 물려줄 때도 둘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과 넷째 구본식 희성그룹 부회장은 이듬해인 1996년 같은 방식으로 희성그룹을 만들었다.
구 부회장이 LG그룹으로부터 떼어낼 것으로 예상되는 계열사 가운데 하나는 LG디스플레이다.
구 부회장은 LG화학에 처음 입사한 뒤로 LG디스플레이, LG전자 등 경영에 두루 참여했다. 특히 LG디스플레이는 1999년 네덜란드에 기반을 둔 필립스와 합작회사를 만들 때부터 직접 대표이사를 맡아 진두지휘해 온 만큼 애착이 크다.
그러나 LG디스플레이가 LG전자의 스마트폰, TV 등에 부품을 공급하는 그룹 주요 계열사인 데다 LG전자가 보유 중인 LG디스플레이의 지분(37.9%)이 약 3조 원 규모여서 이를 인수하기 위해 구 부회장의 자금여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은 부담이다.
구 부회장은 LG의 지분 7.72%를 보유하고 있어 이를 현금화하면 약 1조200억 원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지난해 말 LG상사의 지분을 매각한 뒤 얻은 현금 약 300억 원가량을 더해도 1조500억 원 정도에 그친다.
이에 따라 구 부회장이 그동안 관심을 쏟아온 바이오, 전장사업 등 신사업과 관련한 사업 부문을 분사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2016년부터 LG의 신성장사업추진단장을 맡아 자동차 전장사업, 바이오 등 신사업 추진을 이끌어온 만큼 LG화학의 바이오사업 부문이나 LG전자가 최근 인수한 오스트리아 전장회사 ZKW를 들고 나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ZKW는 구 부회장이 직접 공을 들이며 인수합병을 성공으로 이끈 것으로 알려졌다. 구 부회장은 자동차 전장사업에서 뛰어난 외국어 실력과 글로벌 감각을 내세워 GM, 포드 등 세계적 완성차 회사와의 협상에 직접 나섰고 성과를 거뒀다.
구 부회장은 친환경·바이오분야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2016년부터 LG화학의 기타비상무이사를 맡으며 농업 전문회사 팜한농 인수를 마무리하고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3천억 원의 유상증자를 진행하기도 했다.
LG그룹과 이별해야 하는 구 부회장의 마음이 편치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구 부회장은
구본무 전 LG 회장이 와병하기 전까지 그를 적극 보필하며 주요 계열사를 두루 맡아왔다. 구 전 회장의 건강이 나빠질 즈음인 1년 전부터는 사실상 그룹 경영을 총괄해왔다.
그룹의 미래 성장동력과 관련해 추진한 주요 사업들을 마무리하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LG화학이나 그룹 단위로 추진하던 신사업 분야의 투자 결실을 직접 거두지 못하고 떠나는 상황이기에 아쉬움은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구 부회장은 2011년 LG전자 대표이사를 맡은 뒤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한 점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신사업 투자의 결실을 보는 것이 절실했을 수 있다.
구 부회장은 1985년 금성반도체에 입사해 LG화학, LG전자, LG필립스LCD(현 LG디스플레이)에 몸담았다. 구 전 LG 회장이 병환으로 정상 집무가 힘들어지자 실질적 총수 역할을 맡아 LG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관리해왔다.
그는 올해로 만 67세다. LG그룹의 오너 일가가 일선에서 물러나는 나이가 보통 70세인 점을 감안하면 아직 3년이라는 시간이 남은 셈이다. [비즈니스포스트 윤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