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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이미지. |
영화 한 편이 뜨는 덴 다 이유가 있다. 굳이 천만 영화까지 따지지 않더라도 역대급 흥행작들은 콘텐츠 자체의 완성도나 출연배우의 연기와 같은 작품 내적 완성도뿐 아니라 시대가 요구하는 그 무엇을 담은 경우가 많았다.
과거 영화매체나 영화평론가들의 평가만으로 영화판이 움직이던 시대가 아니다. 오히려 SNS의 발달로 입소문의 영향력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영화 ‘군함도’와 ‘택시운전사’가 쌍끌이 흥행에 시동을 걸면서 영화를 둘러싼 논란도 확산되고 있다.
두 편 모두 역사 속 실화를 바탕으로 허구를 곁들인 ‘팩션’ 장르영화인 탓에 영화가 흥행하면 할수록 호불호를 넘어 화제지수가 높아지는 것은 물론 사회적 담론으로 확장될 여지도 커보인다.
특히 올해 최고의 기대작으로 꼽혀왔던 만큼 일일 몇만 명 돌파니 일일관객수니 하는 것도 크게 의미는 없는 것 같다.
한국영화도 제작사들이 강력하게 미는 ‘텐트폴’(투자배급사들이 한해 라인업에서 흥행 성공가능성을 높을 것으로 보고 내놓는 작품)의 경우 기대치가 워낙 높아져 1천만 명 쯤 넘어야 흥행작 반열에 명함을 내미는 정도다. 그런 점에서 영화 외적 논란이 최종 관객 수에 약이 될지 독이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택시운전사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다. 비교적 현재에 가까운 현대사의 한 장면이자 최근까지도 여러차례 영화로 다뤄졌던 소재이기도 하다.
‘고지전’ ‘의형제’ ‘영화는 영화다’ 등으로 인물 캐릭터와 스토리텔링에 강점을 보였던 장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더 이상의 수식어가 필요없는 배우 송강호씨가 주연을 맡았다.
개봉 이후 3일 만에 150만 관객에 육박하는 흥행성적을 보이며 한발 앞서 개봉한 군함도의 등등한 기세를 한풀 꺾어 놓았다.
잘 알려졌거나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생각되는 실화인 만큼 감독의 부담이 컸을 수밖에 없다. 영화는 서울에 살던 택시운전사와 그가 태운 손님인 외국인 기자의 시점으로 전개되면서 관객을 우리 현대사의 아픈 현장 속으로 끌어들인다.
영화는 개봉 이후 4일 네이버영화 관람객 평점 기준 9.36으로 전문가평점 5점대 후반인 데 비해 월등히 높다. 페이소스를 담은 송강호씨의 연기는 이번에도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았다는 평가가 많고 무엇보다 실화가 주는 감동이 커 보인다.
영화인들도 다양한 채널로 호평을 쏟아내며 응원을 보내고 있다.
박찬욱 감독은 택시운전사 관람 후 리뷰영상을 통해 “가장 나약한 인간이 가장 용감해지는 순간을 설득력있게 표현한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송강호 연기가 놀라운 이유는 그것을 해냈을 뿐 아니라 그런 연기가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인 것처럼 느껴지도록 한다는 데 있다”고 평가했다.
봉준호 감독, 김지운 감독, 허진호 감독 등 외에도 소설가 황석영씨는 “'택시운전사'는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전부의 이야기. 광주와는 상관없는 외부인의 시점을 따라간다는 것이 특별했고, 보는 이로 하여금 보편적 휴머니티를 발동시켜 감동을 받았다”고 호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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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군함도' 포스터 이미지. |
광주지역과 중고생들을 중심으로 택시운전사 단체관람 행렬도 이어지고 있는 반면 광주민주화운동을 재조명한 것을 놓고 불편한 시선도 나온다. 일부 보수단체와 극우커뮤니티 사이트 등에는 영화관람 거부를 촉구하는 공식입장까지 올라있다.
개봉 초기부터 혹독한 스크린 독과점 논란을 겪었던 군함도 역시 일제강점기 강제노역에 끌려간 조선인의 탈출기를 다룬 내용을 놓고 때 아닌 역사왜곡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군함도에 담긴 반일정서를 문제 삼는 일본은 내버려두더라도 국내에서조차 일부 의견이지만 악의적 비난과 평점테러를 쏟아내는 상황은 영화의 호불호를 떠나 안타까운 일로 여겨진다. 이른바 애국심과 민족주의를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이른바 ‘국뽕영화’ 논란이다.
류승완 감독은 이와 관련 최근 한 인터뷰에서 “영화를 놓고 ‘맞다’ ‘틀리다’ 얘기하면서 역사를 더욱 들여다보게 된다. 500만 관객이 본 영화다. 500만 개의 평가가 있는 게 당연하다. 내가 의도한 걸 설명할 순 있지만 그걸 느끼는 건 관객들의 몫이다”라고 응수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최근 낸 회고록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을 놓고 '치유와 위무를 위한 씻김굿에 내놓을 제물', '계엄군은 죽음 앞에 내몰리기 직전까지 결코 시민을 향해 총을 겨누지 않았다', '북한 특수군의 개입 정황이라는 의심을 낳고 있는 것' 등으로 표현했다.
택시운전사와 군함도는 친일과 군부독재의 잔재가 청산되지 않은 역사로 남은 지금도 흥행기록만큼이나 뜨거운 사회적 반향을 부르고 있는 셈이다. 영화의 힘이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