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이 인력감원을 놓고 딜레마에 빠져있다.
채권단에 고통분담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인건비를 절감해야 하지만 대우조선해양이 보유한 수주잔량이 많아 대규모 인력감원을 할 수 없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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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 |
5일 조선3사의 지난해 사업보고서를 비교해 보면 대우조선해양 직원은 최근 2년 동안 모두 2341명 줄었다. 현대중공업(2872명)보다는 적지만 삼성중공업(1697명) 보다는 인력감원 규모가 크다.
인건비 절감을 위한 노력이 부족하다는 눈총도 받고 있지만 사업보고서만 놓고 보면 대우조선해양이 인건비 감축에 기울인 노력이 적지만은 않아 보인다.
물론 대우조선해양이 뒤늦게 인력감원 작업에 착수한 것은 사실이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이 수주가뭄에 선제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지난해 1~2분기에 희망퇴직 등으로 수천 명을 내보냈는데 대우조선해양은 하반기나 돼서야 1500명 규모의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이 때문에 정성립 사장이 선제적으로 인력 구조조정에 매달리지 않아 대우조선해양이 정부로부터 2조9천억 원의 추가자금 지원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이 뒤늦게 인력 구조조정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시각도 있다. 대우조선해양이 보유한 수주잔고가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보다 많아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인력이 더욱 많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이 보유한 수주잔량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각각 103척(326억 달러), 90척(267억 달러)이다. 반면 대우조선해양 수주잔고는 114척(346억 달러)에 이른다.
실제로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일감부족을 이유로 도크(선박건조대)의 가동을 중단하고 있지만 대우조선해양은 현재까지 단 한곳의 도크도 폐쇄하지 않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추가손실을 내지 않기 위해서라도 배를 만드는 데 충분한 인력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인다.
조선사가 해외 발주처로부터 선박을 수주하면 통상 선박의 인도시점이 계약서에 명시된다. 조선사들은 이 일정에 따라 배를 만드는데 별다른 이유없이 인도일정을 맞추지 못할 경우 해외 발주처에 지체보상금 등을 지불해야 한다.
정 사장이 최근 인터뷰에서 “사생결단으로 구조조정을 해야 하지만 대우조선해양은 조선3사 가운데 수주잔액이 가장 많다”며 “무작정 인력을 줄이면 오히려 손해다. 정신을 못 차려서 더 못 줄이는 게 절대 아니다”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정 사장이 수주잔량을 앞세워 인력 구조조정 압박을 막아내기는 힘들어 보인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금융당국은 대우조선해양이 내년 상반기까지 1500여 명을 더 줄여야만 추가자금 지원이 가능하다고 압박하고 있다. 인건비를 절감하려는 노력을 충분히 보여야만 대우조선해양을 회생시키기 위한 2조9천억 원을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 사장이 대우조선해양 회사채를 보유한 사채권자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라도 인력 구조조정과 관련한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채권자들은 대우조선해양 임직원들이 고통분담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손해를 볼 수 없다는 태도를 취한다. 사채권자들이 대우조선해양 채무재조정안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대우조선해양은 사전회생계획제도(P-Plan)에 돌입해 신규수주 활동이 사실상 제약된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