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희헌 기자 gypsies87@businesspost.co.kr2025-07-25 14:51:51
확대축소
공유하기
▲ 풀무원이 제주삼다수 유통권 확보에 뛰어들었다. 예상치 못한 행보에 식품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사진은 이우봉 풀무원 총괄 대표이사.
[비즈니스포스트] 이우봉 풀무원 총괄 대표이사(CEO)가 변화에 고삐를 죄고 있다.
풀무원은 새 사업에 나선다거나 다른 회사를 인수합병(M&A)하는 데 소극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보수적인 경영철학으로 인해 ‘점잖은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생겨났지만, 경쟁기업과 비교해서는 혁신과 도전정신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올해 1월 총괄 CEO로 취임해 풀무원 수장으로서 지속가능한 먹거리 시스템 구축이라는 공격적 행보를 보인 이우봉 대표가 이번에는 생수시장에 뛰어들었다.
25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풀무원이 계열사 풀무원식품을 통해 24일 마감된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의 생수 삼다수 위탁 사업자 모집 입찰에 참여하자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삼다수의 유통권을 확보하기 위해 나선 회사는 모두 11개로 파악된다. 이 가운데 12년째 삼다수 유통권을 가지고 있는 광동제약을 포함해 동화약품, 풀무원식품 등 3곳이 유력 후보로 꼽히고 있다. 웅진식품과 빙그레, 일화 등도 삼다수 유통권에 도전장을 던졌지만 앞서 거명된 회사들보다 존재감이 약하다는 반응이다.
식품업계는 풀무원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다.
풀무원은 인수합병에 좀처럼 나서지 않았다. 주요 대규모 인수합병 이력을 살펴보면 2004년 미국 와일드우드, 2009년 미국 몬터레이고메이푸드, 2014년 일본 아사히식품공업, 2015년 미국 비타소이 두부사업권 등이 대표적이다.
여태껏 인수했던 기업 모두 풀무원의 정체성과 관련한 회사라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풀무원은 콩과 두부를 기반으로 한 가공식품으로 돈을 버는데 와일드우드와 아사히식품공업, 비타소이 두부사업권 모두 이와 관련이 있다. 몬터레이고메이푸드는 냉장식품을 제조·유통하는 회사라는 점에서 다른 기업과 결이 다르지만 나머지 기업은 모두 두부와 관련한 사업에 강점을 지닌다.
이우봉 대표가 풀무원의 사업을 본격적으로 다각화하기 위해 이번 인수전에 뛰어들었다는 평가가 식품업계 안팎에서 나온다.
이 대표는 지난해 12월 실시된 정기 임원인사에서 이효울 전 대표의 뒤를 이어 차기 총괄CEO로 선임됐다. 기존에 회사를 이끌었던 총괄CEO인 이효율 전 대표에게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른바 ‘전문경영인 2기’로 올해 총괄대표에 오른 만큼 이 대표 어깨 위에 올려진 책임의 무게도 결코 가볍지 않다.
특히 재무적 측면에서 풀무원이 좋은 상황이 아닌 만큼 이 대표로서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토대를 다져야 할 필요가 적지 않다.
실제로 이 대표는 풀무원을 총괄하는 자리에 오른 뒤 회사의 변화에 고삐를 죄어 왔다.
이 대표가 5월12일 열린 창사 41주년 기념행사에서 새 경영비전인 ‘신경영선언’을 선포하면서 글로벌 지속가능 식품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도 이런 의지의 표현으로 여겨진다.
그는 당시 급변하는 글로벌 경영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풀무원의 지속가능한 미래 경쟁력을 강화하자는 차원에서 조직 혁신과 핵심가치 재정의, 브랜드 정체성 시스템 재정립 등 3가지 과제를 핵심 축으로 제시했다.
‘창업가 행동양식’에 기반해 조직을 혁신해 조직 운영의 패러다임을 변화하자고 밝힌 것이 가장 특징이다. 도전정신과 창의성, 주도적이고 자율적인 샐행과 책임 등 이른바 ‘창업가 마임드’를 가지고 혁신과 도전정신에 따라 새 기회를 개척하자고 이 대표는 강조했다.
삼다수 유통권에 뛰어든 것도 이런 연장선으로 보인다.
풀무원을 풀무원샘물이라는 회사를 통해 생수사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기준으로 낸 매출은 924억 원에 그친다. 국내 생수 시장 점유율 순위에서도 풀무원은 삼다수와 롯데칠성음료, 농심 백산수 등에 이어 4위권에 머물고 있다.
▲ 풀무원이 삼다수 유통권을 확보하면 연간 4천억 원이 넘는 매출을 추가로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가 ‘풀무원표 생수’가 있는 상황에서 삼다수의 유통권까지 확보하려는 것은 갈수록 격화하는 생수 시장에서 돌파구를 마련하는 동시에 안정적인 매출 구조를 확보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이번 삼다수 유통권은 기존보다 사이즈가 커졌다는 점도 기회다.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는 기존에 제주도와 대형마트3사를 제외한 지역과 온라인에서 삼다수를 유통할 수 있는 권한을 줬다. 하지만 이번에는 제주도를 제외한 모든 유통 채널에서 삼다수를 유통할 수 있도록 했다.
12년째 삼다수 유통하고 있는 광동제약은 연간 3천억 넘는 매출을 삼다수를 통해 얻고 있는데 내년부터는 유통채널 망이 넓어짐에 따라 연간 4천억 원 가까운 매출을 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대표는 풀무원의 해외사업에서도 최근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풀무원은 중국법인을 통해 중국 현지에서 판매하고 있는 냉동김밥에서 출시 1년 동안 매출 100억 원 이상을 냈다. 중국 성과가 알려지면서 풀무원 주가는 23일 하루 20%대 급등했다.
일각에서는 풀무원이 오랜 기간 투자해온 글로벌 성과가 점차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풀무원이 ‘제2의 삼양식품’이 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