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판은 두께가 6mm 이상인 두꺼운 열간압연강판으로, 주로 선박·건축자재·기계용으로 사용된다.
▲ 현대제철이 지난 7월 중국산 저가 철강에 대해 반덤핑 제소를 하며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사진은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의 후판 생산라인 모습. <현대제철>
최근 저가 중국산 후판이 물밀 듯이 밀려와 국내 철강 산업은 위기를 맞고 있다.
12일 철강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현대제철은 지난 7월 중국산 저가 후판을 대상으로 반덤핑 제소를 신청했다.
에포크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중국 부동산 경기 침체가 2022년부터 현재까지 지속되면서, 중국 철강의 내수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이에 따라 중국 철강 업체들이 해외로 저가에 철강 제품을 쏟아내고 있다. 연간 총 생산량이 10억 톤에 달하는 중국 철강 산업은 가격 하락과 내수 부족으로 수출을 늘렸고, 국내로도 저가 철강 제품이 대거 수입되고 있다.
한국철강협회(KOSA)에 따르면 2023년 국내 수입된 전체 후판은 198만9800톤이다. 이 가운데 중국에서 수입한 후판은 112만2774톤으로, 전체 수입량의 60% 수준에 달했다.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통계를 보면 수입된 전체 후판은 128만2438톤이며, 중국산 후판은 이 가운데 82만8367톤으로 약 65%를 차지했다.
국내 후판 유통가는 톤당 100만 원 대이지만, 중국산 저가 후판은 80만 원 후반대로 10% 이상 저렴하다.
중국산 철강 수입 증가로 국내 철강 기업 수익은 악화하고 있다. 현대제철의 영업이익률은 연결기준 2021년 10.71%를 기록했지만 2022년 5.91%, 2023년 3.08%를 기록하는 등 매년 감소했다. 포스코와 동국제강도 마찬가지다. 포스코홀딩스 영업이익률은 2021년 12.10%, 2022년 5.72%, 2023년 4.58%를 기록했다. 동국홀딩스도 각각 11.09%, 4.13%, 3.26%를 기록했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중국산 저가 후판의 경우, 중국 공급과잉 등의 이슈로 오래전부터 국내에 현지 가격보다 싸게 공급돼왔다”며 “최근 저가 중국산 수입이 더 심해지는 상황에서 국내 업계 피해가 더 커지고 있다고 판단해 반덤핑 제소를 신청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산 저가 철강에 따른 피해가 심각한 상황인데도 정부는 중국 눈치만 보며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현대제철 외에 포스코, 동국제강 등은 중국과의 사업 관계를 고려해 반덤핑 제소에 동참하지 않고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중국산 불공정 수입재 유입 증가에 대해 우려하고 있으나, 내부적으로 (반덤핑 제소를) 검토한 건 없고,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중”이라며 “자체적으로 극한의 원가 절감과 품질 경쟁력 향상을 통해 저가 중국산 유입에 대응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 경북 포항시 남구 제철동에 있는 포스코 포항제철소 2고로에서 한 직원이 용광로에서 쇳물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산 저가 철강 덤핑 문제에 대한 대책을 내놔야 하는 산업통상자원부는 중국과의 외교적 관계 때문에 곤란한 눈치다. 현재 산업부는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지만, 실효성 있는 대책은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정부 입장에서 잘못 대응하면 상대국과 관계가 나빠지거나 수요 업체, 공급망 등 여러 가지 고려할 것들이 많다”며 “정부 입장에서 단순하게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 여러 근거와 방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황은 인지하고 있지만, 당장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반덤핑 제도뿐”이라며 “전문가나 업계와 계속 소통하며,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해외 다른 나라들은 중국산 저가 철강제품에 대해 발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5월 중국산 철강 특정 제품에 대한 관세를 기존 0~7.5%에서 연내 25%로 인상키로 했다. 유럽연합(EU)은 지난 5월 주석도금 철강 제품에 대한 반덤핑 조사에 착수했다. 대만과 일본, 베트남, 튀르키예도 반덤핑 조사에 들어갔다. 멕시코는 중국산 철강 제품에 대해 5~25%의 임시 관세를 부과했고, 칠레도 33.5%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국내 반덤핑 조사절차는 크게 ‘덤핑 마진 조사’와 ‘산업 피해 조사’로 나누어 진행한다. 자격이 있는 신청인의 신청을 받아 일정한 제소 요건에 부합하는지 심사한 후 ‘조사개시’를 하고, ‘예비조사’와 ‘본 조사’를 거친 후 무역위원회가 덤핑 여부에 대해 최종 판정을 내리며, 덤핑 관세 등을 부과한다.
본격적 조사 기간은 6개월이나 신청 때부터 최종 덤핑방지 관세부과까지는 일반적으로 약 9개월이 소요된다. 현재 현대제철의 반덤핑 제소의 경우, 무역위 조사개시 결정을 위해 내부 검토 중이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반덤핑 효력이 발생한다면 관세 부과 또는 수입량 제한 등의 조치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국내 기업의 가격 경쟁력 확보와 중소 기업들 판매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조성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