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이 차량용 반도체공장 유치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7월13일 독일의 차량용 반도체 전문기업 인피니온 테크놀로지스 공장을 찾은 로버트 하베크 독일 경제부 장관(우측)과 안나레나 배어보크 외교부 장관. 인피니온은 TSMC와 합작회사를 세웠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TSMC가 독일에 반도체공장을 신설하면서 현지 자동차 부품업체와 합작회사 형태로 공장을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독일 정부는 인텔의 차량용 반도체공장 또한 유치에 성공했다. 독일이 차량용 반도체 생태계를 조성해 전기차 산업 경쟁력을 더욱 강화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1일 파이낸셜타임스는 TSMC가 독일 드레스덴에 차량용 반도체공장 신설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독일 정부의 역할이 주효했다고 보도했다.
독일 정부는 공장 건설비용인 10억 유로(약 1조4544억 원) 가운데 절반인 5억 유로를 TSMC에 지원한다.
파이낸셜타임스의 8일자 보도에 따르면 독일 경제부는 공장 건설에 필요한 행정절차를 예외적으로 줄였다. 건설이 빠른 시일 안에 시작되도록 정부 차원에서 지원책을 아끼지 않고 있는 것이다.
TSMC는 독일 작센주 드레스덴에 10나노(㎚, 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 이상 크기의 구형공정 반도체 생산설비를 신설한다.
구형공정 반도체는 주로 자동차에 탑재된다. TSMC는 또한 차량용 반도체 전문기업인 NXP와 보쉬, 인피니언과 공동으로 출자하는 방식으로 공장을 운영한다.
독일 정부가 TSMC의 반도체공장 유치에 성공하면서 차량용 반도체 공급이 늘고 현지 차량용 반도체 업체들과 협력이 강화될 것이라는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TSMC가 들어서면서 차량용 반도체의 부품 조달부터 제조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는 생태계가 조성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대만 디지타임스는 “TSMC 공장 부지인 독일 작센주에는 차량용 반도체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독일은 또한 10억 유로의 보조금을 들여 인텔의 차량용 반도체 공장 유치까지 성공시켰다.
독일이 차량용 반도체 공장 유치에 공들이는 이유는 전기차 산업 경쟁력 재고에 있다.
전기차는 전력 관리와 차량 구동에 반도체가 필수적으로 쓰인다. 일반적으로 같은 체급의 내연기관 차량보다 2배 이상 많은 반도체가 탑재된다. 차량용 반도체 공장 유치는 전기차 산업 발전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 이코노미스트지는 독일 자동차산업이 '노키아'와 같은 운명을 맞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진은 5월10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폴크스바겐 연례주주총회에 등장한 전기차 ID.7의 모습. <연합뉴스> |
독일 정부가 경쟁력 강화에 직접 나서는 배경에는 자동차 산업의 미래에 관한 위기감 또한 깔려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7월31일 보도를 통해 독일 전기차 산업이 중장기적으로 위기에 처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짚었다.
자동차 산업의 무게추가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이동하는 가운데 독일 자동차 기업들이 고전한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됐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독일의 대표적 완성차업체 폴크스바겐은 자사 전기차량의 시장 수요가 예상치보다 최대 70%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국 업체들이 전기차 시장에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면서 독일 업체들과 경쟁에서 앞서나간다는 진단이 이어졌다.
이코노미스트는 “폴크스바겐은 주로 중국 전기차 시장에서 판매 둔화로 인해 글로벌 배송 전망치까지 하향 조정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전기차 산업 성장에 힘입어 전체 자동차 수출량에서 2022년 처음으로 독일을 앞지른 것으로 집계됐다.
2022년 독일이 모두 260만 대의 차량을 수출하는 동안 중국은 300만 대의 차량을 수출했다.
이코노미스트는 폴크스바겐을 포함해 독일 자동차산업 전반이 휴대폰 제조기업 ‘노키아’와 같은 전철을 겪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노키아가 스마트폰이라는 신제품에 대응이 늦어지면서 기업 전체가 몰락한 일이 독일의 자동차 산업에서 재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독일이 전기차에 주로 쓰이는 차량용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확보해 전기차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대규모의 보조금을 기업에 제공하고 행정 특혜까지 지원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코노미스트는 독일 자동차 기업들의 내연기관 차량 판매 성적까지 고려하면 독일 자동차산업에 당장 위기가 닥쳤다고 평가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덧붙였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