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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TSMC 모리스 창 "나는 '나'를 벤치마킹 했다"

이재우 sinemakid222@gmail.com 2023-01-06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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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TSMC 모리스 창 "나는 '나'를 벤치마킹 했다"
▲ 대만 반도체기업 TSMC 설립자 모리스 창(92). 그는 “1987년 TSMC 설립 당시, 내가 월급을 주던 직원은 150여 명이었다. CEO에서 완전 퇴임하던 2018년엔 직원들이 5만여 명으로 불어났다”고 했다. <TSMC>
[비즈니스포스트] "모리스 창은 반도체 세계의 제우스(Zeus)다."

미국 뉴욕타임스 기사(지난해 11월11일자 'The Global Might of the Tiny Chip')를 읽다가 멋진 이 표현을 발견하곤 뭐랄까 광산에서 금을 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문장은 고맙게도 이번 칼럼을 풀어가는 마중물이 되어 주었다. 

뉴욕타임스가 대만 반도체기업 TSMC의 설립자 모리스 창(Morris Chang)을 제우스라 칭한 건 아마도 파운드리(위탁생산) 시장의 신화적인 우두머리라는 의미일 것이다.

중국 본토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 다시 대만에 정착하기까지 모리스 창이 걸어온 길은 사실 신화 그 이상이다. 중국 이름이 장중머우(張忠謀)인 그는 새해에 92세가 됐다. 

세계 파운드리 시장의 최강자 TSMC(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mpany)는 그런 모리스 창의 비전과 대만 정부의 인재 영입 전략이 맞아 떨어지면서 탄생했다.

TSMC는 대만에서는 '호국신산(護国神山)'이라 불린다. 말 그대로 '나라를 지키는 신의 산'이라는 뜻이다. 대만에 대한 중국의 외교, 군사적 압박이 커지면서 TSMC는 산업자산을 넘어 전략자산 측면에서 그렇게 불리고 있다. 

그 호국신산의 정상에서 오랫동안 호령했고 아직도 군림하고 있는 모리스 창은 '대만 반도체 산업의 아버지'란 별칭을 갖고 있다. 2018년 CEO에서 완전 퇴임했지만 차이잉원 총통의 특사로도 활동하면서 여전히 힘을 과시하고 있다. 우리는 그런 '반도체 제우스'에게 뭘 배울 수 있을까.

1985년 나이 오십을 조금 넘긴 모리스 창은 '세상에 없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고 있었다. 30년에 가까운 미국 반도체 엔지니어 생활을 접고 대만에 정착한 직후였다.

그는 대만 정부의 간곡한 요청으로 대만 산업기술연구소(ITRI·Industrial Technology Research Institute) 원장에 취임하면서 대만과 인연을 맺었다. ITRI의 인큐베이팅으로 1987년 2월 탄생한 기업이 바로 TSMC이다. 모리스 창은 한 대만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대만잡지: 1985년 대만에 처음 왔을 때 당신은 무엇을 가지고 왔습니까?

모리스 창: 저는 기술을 전혀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사실 제가 가져온 건 새로운 비전이었습니다.

도대체 모리스 창은 무슨 비전을 갖고 왔다는 걸까. 필자는 모리스 창에 대한 해외 자료를 전방위적으로 서칭하면서 그 답을 찾아보았다.

거기엔 두 사람이 있었다. 경영전략의 대가인 하버드대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 교수와 '무어의 법칙(Moore's law)'으로 유명한 캘리포니아공대의 석학 카버 미드(Carver Mead) 교수다. 두 사람은 결과적으로 모리스 창의 비전에 부싯돌처럼 불꽃을 튀게 해주었다. 
 
[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TSMC 모리스 창 "나는 '나'를 벤치마킹 했다"
▲ 모리스 창은 퇴임 이후 차이잉원 총통(사진 가운데)의 경제특사를 맡는 등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맨 오른쪽은 모리스 창의 부인 소피 창. 모리스 창보다 16세 연하로 자선가와 화가로 활동 중이다.<대만 총통부>
마이클 포터 교수 이야기부터 해본다. 모리스 창은 포터 교수가 주창한 '경쟁 우위(Competitive Advantage, 포터 교수의 책 제목이기도 하다)' 개념을 누구보다 잘 꿰고 있었던 혁신가였다.

대개 비즈니스에서 경쟁 우위는 포지셔닝에 달려 있다고들 말한다. 단순한 포지셔닝이 아닌 '전략적 포지셔닝(Strategic Positioning)'이어야 한다. 

전략적 포지셔닝의 핵심은 '한 기업의 가치가 다른 기업과 어떻게 다르게 창출되느냐(How that value will be created differently from other companies)'는 것이다.

시장을 효과적으로 공략하기 위해선 단순한 가치가 아닌 차별화된 가치(differentiated value), 고유한 가치(distinctive value)여야 한다. 그래야 수익성 있고(profitable), 방어 가능한(defendable) 마켓 포지션(market position)을 찾을 수 있다. 

카버 미드 교수로 넘어간다. 반도체 산업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개념 하나가 '무어의 법칙'이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반도체 기술의 지속적 성장을 의미한다. 1960~1970년대 인텔의 공동 창업자 고든 무어(Moore)는 "반도체의 집적회로는 2년마다 성능이 2배로 좋아진다"고 주장했다. 무어의 지인인 미드 교수는 이를 '무어의 법칙'이라 명명했다. 

당시 미드 교수는 반도체 관련 책을 출간했는데 모리스 창은 그 책을 읽고 파운드리의 성공 가능성을 확신했다. 모리스 창은 '세계반도체 장비재료협회(SEMI)'와의 인터뷰(2007년 8월24일)에서 이렇게 말했다. 

"카버 미드 교수는 반도체 설계 부분은 제조기술로부터 분리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he made a point that the design part could be separated from the technology.)" 

마이클 포터와 카버 미드 교수 이야기를 종합하면 모리스 창은 대만이 반도체 설계 기술을 갖지 못한 상황에서 파운드리라는 틈새시장을 전략적 포지셔닝으로 삼았다. 그의 말을 더 들어보자. 

"당시 TSMC의 비즈니스 모델은 '제품이 뭔가'보다는 '고객이 누구'인가에 달려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른 반도체 회사를 경쟁사가 아닌 고객으로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남들과 다른 방식이었습니다."(대만 경제전문 주간지 톈샤, 天下雜誌)

반도체를 설계하는 팹리스 같은 회사(고객사)들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는 마치 월트 디즈니의 '미녀와 야수' 테마곡 'Be Our Guest(우리의 손님이 되어주세요)'를 연상시킨다.

설립 초기 TSMC의 입장에선 애플, 퀄컴 등에 대해 "우리의 고객이 되어주세요"라고 구애를 하기만 하면 됐다. 왜냐? 어차피 경쟁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모리스 창의 '파천황(破天荒)'으로 탄생한 TSMC의 영향력은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대단하다. 

TSMC가 문을 닫으면 애플도 함께 문을 닫는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전문가들의 평가도 남다르다.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ASML의 한 임원은 "TSMC는 당분간 난공불락의 상태로 남을 것(TSMC will remain unassailable for the time being)"이라며 엄지를 세웠다.(파이낸셜타임즈 2022년 3월24일자) 

미국 터프츠대 크리스 밀러(Chris Miller) 교수의 진단도 눈여겨 볼 만하다. 그는 지난해 펴낸 'Chip War(반도체 전쟁)'라는 책에서 "대만은 세계 반도체 산업의 고동치는 심장(Taiwan is ‘the beating heart’ of the global semiconductor industry)"이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만은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의 6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데 TSMC를 비롯해 UMC, PSMC, VIS 등 유수의 파운드리 기업이 줄줄이 포진해 있다. 여기에다 미디어테크(MediaTek)라는 회사는 미국 퀄컴에 이은 세계 3위권의 팹리스 기업이다. 

자 이제 '뿌리' 이야기. 미국 반도체 기업의 대표적인 대만계 미국인인 엔비디아의 젠슨 황과 AMD의 리사 수 CEO가 대만 태생이라면 모리스 창은 대만에 정착만 했을 뿐 중국 본토인이다.

1931년 중국 저장성 닝보에서 태어난 모리스 창은 국공내전이 한창이던 1948년 국민당 지지자인 아버지와 가족을 따라 홍콩으로 탈출해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보스턴에 살던 삼촌의 도움으로 하버드대 입학 허가를 받는다. 

당시 장중머우라는 중국 이름을 쓰던 그는 1년간 하버드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미래가 걱정됐다.

중산층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엔지니어가 되는 거였다. 문학보단 기계공학이 안전한 삶을 열어줄 것이라 생각한 그는 MIT로 편입했다. MIT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친 그는 모리스 창이라는 미국식 이름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반도체 회사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Taxas Instrument)는 모리스 창 경력의 하이라이트다. TI에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며 수석 부사장까지 승진했다. 스탠퍼드대에서 공학 박사학위도 받았다. 25년간의 TI 근무는 그에게 TSMC 창업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는 밑거름이 됐다.

그런 모리스 창의 경영철학은 'ICIC'에 집약돼 있다. ICIC는 '정직(Integrity)', '헌신(Commitment)', '혁신(Innovation)', '고객 신뢰(Customer Trust)'의 영어 앞글자를 딴 말이다.

이는 TSMC의 핵심 가치이기도 하다. TSMC는 설립 당시 미국 인텔에 투자를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고 한다. 모리스 창은 그런 인텔을 의식한 듯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나는 인텔을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나는 '나'를 벤치마킹 했다."

모리스 창의 자존심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스스로를 벤치마킹 하려면 끊임없이 변화하는 '트랜스포머 형 인간'이 되어야 한다. 모리스 창이 그랬다.  

필자는 '작은 새장 안에 자신을 가두지 마라(Don’t lock yourself in your own little cage)'는 그의 말도 좋았다.

바꿔 말하면 리더의 비전은 새장 안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진정한 리더라면 자신의 비전뿐 아니라 아랫사람의 비전에 날개를 달아주어야 한다. 그러곤 척후병을 보내 새장 문을 활짝 열어젖혀야 한다. 
 
[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TSMC 모리스 창 "나는 '나'를 벤치마킹 했다"
▲ 48년 전 젊은 시절의 조 바이든과 모리스 창의 부인 소피 창. 소피 창은 바이든이 처음 상원의원에 출마했을 때 선거캠프에서 일하면서 바이든의 당선을 도운 인연이 있다. <대만 경제매체 차이쉰>
다소 다혈적인 성격의 모리스 창. 그런 그를 '얌전하게(?) 가둔' 이가 있었다. 지금의 아내인 소피 창(Sophie Chang, 중국 이름 장쑤펀(張淑芬))이다.

모리스 창 부부의 황혼 웨딩은 대만에서 큰 화제를 뿌렸다. 2001년 1월 당시 70세의 모리스 창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교회에서 54세의 소피 창과 결혼식을 올리고 뒤늦게 서로 연리지(連理枝)가 되었다. 대만에서 상사와 부하직원으로 만난 둘은 모두 재혼. 

TSMC 자선재단 회장인 소피 창은 대만 출신으로 고교 시절 미국으로 이민, 여성 사업가의 길을 걸었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 처음으로 붓을 든 '늦깎이' 화가로도 활동 중이다. 2020년 한국에서 첫 해외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흥미로운 사실 한 가지. 소피 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이엔 드라마틱한 인연이 있다. 한 달 전인 지난해 12월6일 애리조나주에서 열렸던 TSMC 공장의 장비 반입식 행사장. 연단에 올라간 바이든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상기됐다. 

"여러분이 믿거나 말거나, 소피(Sophie)는 내가 처음으로 상원의원에 출마했을 때 내 선거캠프에서 일했습니다. 진짜예요. 그래서 나는 TSMC에 엄청난 빚을 지고 있습니다."(백악관 브리핑 자료)

바이든의 이 말을 지원사격이라도 하듯 다음 날인 12월7일 대만 경제전문지 차이쉰(財訊)은 바이든과 소피 창의 '48년 인연'을 단독으로 보도했다.

필자의 글이 길어지고 있어 걱정이지만 독자들에게 이 이야기는 꼭 들려주고 싶다. 사연은 19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스물 아홉의 '델라웨어 젊은이' 바이든은 정치 지망생이었다. 바이든의 부인은 한 중국인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그 학교엔 소피 창의 딸이 다니고 있었다. 바이든은 학교 행사에 자주 참석했다고 한다. 

그러다 바이든이 상원의원 출마를 선언하자 소피 창은 캠프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면서 중국계 유권자들의 관심과 지지를 이끌어 냈다. 바이든은 이 선거에서 미국 역사상 여섯 번째로 젊은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아쉽게도 선거가 끝난 뒤 두 사람은 연락이 끊겼다. 대만 매체가 전한 극적인 순간은 이렇다.  

"TSMC 장비 반입식 행사를 앞두고 백악관 관계자가 모리스 창에게 연락했을 때 소피 창의 딸은 엄마가 1973년 바이든과 함께 찍은 사진을 찾아냈다.

바이든과 소피 창은 비로소 델라웨어에서의 48년 전 인연을 떠올릴 수 있었다. 조만간 모리스 창 부부가 백악관을 직접 방문하는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대만과 미국의 '반도체 로맨스' 2막이 시작된 걸까? 바이든의 목소리는 더 상기됐다. 

"모리스 창은 세상을 바꿨지만 소피 당신은 나를 바꿨습니다."(중국어 원문: Morris Chang 改變了全世界 但是,Sophie 妳改變了我) 이재우 재팬올 발행인 
 
이재우 발행인(일본 경제전문 미디어 재팬올)은 일본 경제와 기업인들 스토리를 오랫동안 탐구해왔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열성팬으로 '원령공주의 섬' 야쿠시마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부캐로 산과 역사에 대한 글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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