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정부가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 의혹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대규모 자금 지원을 결정한 정황이 담긴 문건이 공개돼 파장이 일고 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4일 국회 대정부 질문을 앞두고 지난해 10월22일 열린 청와대 서별관회의(비공개 경제정책협의체)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대우조선해양 정상화 지원방안’이라는 문건을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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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익표 더민주 의원. |
이 문건은 대우조선해양 현황과 3가지 대안별 검토, 부실책임 규명과 제재 방안, 향후 계획과 기타 참고자료로 구성돼 있다.
지난해 서별관회의에 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를 비롯해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현 정책조정수석), 임종룡 금융위원장, 홍기택 산업은행회장 등이 참석했다.
금융위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이 문건에는 “대우조선해양에 5조원 이상의 부실이 현재화되어 사실관계 규명을 위해 감리가 필요하다는 문제제기가 있다”는 지적과 함께 “금융감독원이 그동안 자발적 소명기회를 부여했지만 회사(대우조선해양)는 소명자료 제출에 소극적”이라고 적혀 있다.
이는 상장회사가 금융감독당국의 요구를 사실상 거부한 셈인데 권력기관에서 내려보낸 대우조선해양 낙하산 인사들의 힘이 발휘된 것으로 관측된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대우조선해양이 권력관계에서 우위에 있어 금융당국의 요청을 거절할 수 있었다”며 “금융당국 역시 분식회계 의혹이 있었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밝힐 의지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청와대와 정부 당국은 오히려 분식회계를 저지른 대우조선해양에 산업은행 자금 4조2천억 원을 지원하도록 결정했다. 그러면서도 국책은행을 포함한 채권단 임직원에 대해서는 ‘면책 결정’을 내렸다.
회계조작을 한 기업에 정부가 자금을 지원하도록 결정한 대신 채권단은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도록 뒤를 봐준 셈이다.
홍 의원은 “국책은행을 포함한 서별관회의 결과로 면책 규정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됐다”며 “이는 향후 구조조정 상황이 더 악화돼 국민부담이 가중돼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고 비판했다.
그는 “수조 원 이상의 부실 현재화로 감리가 필요하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는데도 금감원의 감리가 늦게 시작된 점도 의문이었다”며 “문건을 보면 회사 사정 봐주기가 감리 개시 지연을 일으킨 셈”이라고 질타했다.
홍 의원은 “회의에 참석했던 부처별 입장이 담긴 문건들을 정부가 공개하지 않을 경우 문건 전체를 공개할 수밖에 없다”며 “대우조선 정상화 방안이 어떻게 결정됐는지 국민에게 밝혀야 한다”며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는 분식회계 의혹에 대한 사실을 공유했다고 인정하면서도 홍 의원이 입수한 자료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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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종룡 금융위원장. |
금융위 측은 해명자료에서 “서별관회의는 비공식회의로 논의 안건이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다”며 “해당 문건은 출처가 불분명하다”고 주장했다.
더민주와 국민의당 등 야권 의원 121명은 1일 ‘조선.해운산업 부실화 원인과 책임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요구서를 발의했다.
더민주 민병두 의원은 “대우조선해양 부실에 책임이 있는 금융위와 서별관회의 참석자 등에 대한 책임 소재를 철저히 규명해 더이상 이런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엄중한 추궁을 하는 것이 이번 국정조사의 목표”라고 말했다.
일각에서 비공개로 이뤄져 온 서별관회의가 회의록조차 남기지 않아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서별관회의에는 차관급 이상의 고위 관료들이 참석했는데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류 시행령(제 18조)’은 ‘주요 정책의 심의 또는 의견조정을 목적으로 차관급 이상 주요 직위자를 구성원으로 하여 운영하는 회의’에 대해 회의록을 작성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기록물 전문가인 전진한 알권리연구소 소장은 “서별관회의는 차관급 이상이 참석해 속기록 또는 녹음기록은 아니더라도 회의록은 꼭 작성해야 한다”며 “임 위원장의 말대로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았다면 관련 법률을 어겼기 때문에 감사원의 감사나 국가기록원의 현장조사대상”이라고 지적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재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