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 진주시와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 '기업가정신 교육센터'로 새롭게 만드는 옛 경남 진주시 지수초등학교.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 LG그룹 창업주 구인회 회장, 효성 창업주 조홍제 회장 등이 이 학교를 다녔다. 사진 가운데 이들 창업주들이 함께 심었다는 '부자소나무'가 보인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지난 회에 이어 이번 회에서도 엘지와 지에스 그룹의 뿌리인 승산마을의 풍수 특성을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특히 허만정 선생 부자가 주도하여 세웠으며, 이병철 회장과 구인회 회장 조홍제 회장이 동문수학했고, 뒤이어 많은 기업인을 배출한 지수초등학교를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승산마을은 닭이 알을 품는 형국의 명당입니다. 닭은 부화를 위해 알을 품을 때 많은 알을 품습니다. 보통 15개 이상 품고 거의 모두 부화하여 병아리가 나옵니다. 또, 어린 새끼들을 잘 보살펴 병아리들의 생존률은 아주 높습니다. 대부분 성계로 성장합니다.
닭이 알을 품는 형국의 마을에 살거나, 그런 명당에 조상의 묘를 쓰면 자손이 번성합니다. 뛰어난 인물도 많이 나옵니다. 또 병아리들이 오손도손 사이좋게 지내며 함께 자라듯이 마을 사람들이나 자손들이 서로 크게 다투지 않고 화목하게 지냅니다.
닭이 알을 품는 형국의 명당에는 알처럼 동그랗게 생긴 봉우리가 앞에 있습니다. 닭이 품고 있는 알입니다. 승산마을 바로 앞에도 동그란 봉우리가 있습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고 여러 개가 겹쳐 있습니다. 이 때문에 자손이 크게 번창하며 뛰어난 인재도 아주 많이 배출됩니다.
지수초등학교는 1921년 5월에 개교했습니다. 신학문을 가르치는 학교로는 인근 고을에서 최초로 세운 학교였습니다. 그래서 수십 리 떨어진 곳에 살던 이병철 회장과 조홍제 회장이 입학하여 공부했던 것입니다.
지수초등학교터는 마을의 앞쪽 끝부분, 지수천 바로 옆입니다. 지수천 건너에는 닭의 알인 동그란 봉우리들이 솟아 있습니다. 학교터에서 제일 가까운 봉우리는 거리가 100여 미터밖에 안 됩니다.
어느 터든 앞의 안산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 터의 기운이 더 빨리 작용합니다.
지수초등학교는 안산이 아주 가까워 학교터에 서린 기운이 매우 빨리 작용합니다. 또, 바로 앞에 냇물이 흐르며, 그 뒤로 큰 노적처럼 생긴 봉우리들이 호위하듯 솟아 있으니, 개교하자마자 경제계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될 인재들이 모였던 것입니다.
이병철 회장은 1922년 3월에 3학년으로 편입하여 구인회 회장 조홍제 회장과 동기생이 되었으며, 6개월 후 다른 학교로 전학 갔다고 합니다.
이곳 학교생활은 짧았으나, 승산마을과 지수학교의 정기를 아주 많이 받았다고 봅니다. 인연이 닿으면, 며칠 아니 몇 시간 사이에도 큰 기운이 감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경제계의 거목들인 삼성 금성 효성의 창업주들에 이어, 구자경 회장과 허정구 회장 허준구 회장 등 많은 기업인들이 지수학교에 들어와 공부했습니다. 한때는 우리나라 100대 기업 창업주 중 30명이 지수학교 출신이었다고 합니다.
대기업 창업주가 아니어도 경제계에서 활약한 이들은 몇 배 더 많았을 것입니다. 구자경 회장은 교사로 몇 년 간 봉직하기도 했으며, 지수학교에 남달리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고 합니다.
지수학교 터는 주산과 안산이 유순하고 온화하며 청룡 백호가 다정하게 서로 안으려는 듯한 형상입니다. 이런 곳에서는 사람들의 성정이 순화되고 온유해집니다.
그러니 동문 학우들 간에 우애가 좋고 아주 화목하게 지냈을 것입니다. 사업을 하는 이들은 서로 많이 도와가며 함께 성장 발전했으리라 봅니다.
승산마을 동북방에는 이 일대에서 가장 높은 산인 방어산이 우뚝 높이 솟아 있습니다. 그 웅장한 자태는 마치 수호신이 의연하게 앉아 있는 것 같습니다. 방어산의 헌걸찬 기상은 승산마을 사람들이나 지수초등학교 학생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방어산의 옛날 이름은 승어산입니다. 임진왜란 때, 곽재우 장군과 의병들은 정암나루와 이곳 승어산에서 왜군과 맞서 싸워 크게 승리했습니다. 대승을 거두고 왜적을 막은 산이란 뜻으로 방어산이란 이름을 얻게 된 것입니다.
방어산에는 또 다른 전설도 전해옵니다. 전설에 따르면, 병자호란 때 묵신우 장군이라는 분이 부하들과 이 방어산에 주둔하여 적군을 물리쳤답니다.
병자호란 때는 적군이 여기까지 왔을 리 없는데 왜 이런 전설이 전해오는지 궁금합니다. 어쩌면 우리의 임금이 외적에 무릎 꿇고 항복한 일이 너무나 참담한 치욕이라 거기서 벗어나고자 이런 전설을 만든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조선조 중엽 이후, 경남 서부 사람들에게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 분은 남명 조식 선생입니다. 선생은 애국 애민정신이 참으로 극진했던 분입니다.
임금에게 나라와 백성을 위해 바른 정치를 하라고 직언하는 상소를 여러 번 올렸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활동을 적극 성원했습니다. 곽재우 장군을 비롯해 선생의 문하 제자들이 대거 의병에 참여해 큰 공을 세웠습니다. 곽재우 장군은 선생의 제자이면서 외손녀 사위였습니다.
남명 선생의 애국 애민정신은 지수초등학교를 세운 이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허만정 선생 부자를 비롯한 지수학교 설립자들은 빼앗긴 나라를 부흥시킬 인재들을 양성하고자 학교를 세웠던 것입니다. 이 정신은 학생들에게도 많이 전해졌으리라 봅니다.
학생들은 방어산과 곽재우 장군의 일화들을 들으며 깊은 감동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자신도 나라를 위해 크게 기여하겠다는 포부도 가졌을 것입니다.
이병철 회장의 좌우명은 사업보국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부강해지는 데 사업으로 기여하겠다는 다짐이 담긴 좌우명입니다. 사업보국은 지금도 삼성이 기치로 내건 핵심 사업 정신입니다. 이병철 회장의 사업보국 정신에는 지수학교의 경험들도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승산마을의 승자는 한자로 이길 승자를 씁니다. 이름으로 보아 방어산이 가까우니 임진왜란 때 왜군과 전투에서 승리한 곳 중 하나일 수 있습니다. 또는 미래의 일을 암시하는 지명일지도 모릅니다.
삼성과 금성은 실력을 기르기 위해 일본 기업들과 협력하기도 했고, 실력을 기른 다음에는 일본 기업과 당당하게 맞서 경쟁했습니다. 전자산업 분야에선 일본과 서구 여러 나라 기업들을 제치고 세계 일류 기업이 되었습니다.
옛날 곽재우 장군과 의병들이 정암나루에서, 또 방어산에서 왜군을 이겼듯이, 경제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뒀습니다. 이병철 회장은 지는 것을 아주 싫어했는데, 특히 일본 기업들은 꼭 이겨야 한다고 부하 임직원들을 많이 독려했다고 합니다.
지수초등학교는 학생이 줄어 지금은 폐교되었습니다. 산 너머에 있는 송정초등학교와 통합됐는데 지수초등학교라는 이름은 없애지 않고 송정초등학교로 이전했습니다. 원래의 지수학교는 K-기업가정신센터가 되었습니다.
요즘 승산리와 지수학교가 부자 마을, 대기업가 배출한 학교로 널리 알려져서 방문객이 많습니다. 부자 되는 기운을 받고자 오는 이들도 있다고 합니다. 여
기 오시는 분들이 모두 허준 선생 허만정 선생처럼, 재산은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한 게 아니라, 사회를 위해 잠시 빌리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돌아가길 바랍니다.
승산 마을 앞에는 남해고속도로가 있습니다. 그런데 도로를 만드느라 마을 앞 산들이 많이 훼손됐습니다. 특히 알처럼 둥글게 생긴 봉우리 둘이 크게 파괴됐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나무라도 잘 가꿔 상처가 안 보이게 만들면 좋겠습니다. 류인학/자유기고가, '문화일보'에 한국의 명산을 답사하며 쓴 글 ‘배달의 산하’, 구도소설 ‘자하도를 찾아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