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은행연합회가 금융소비자의 알권리 강화 차원에서 시중은행의 예대금리차(예금과 대출금리 차이)를 새로운 기준으로 공시하기 시작한 지도 3개월이 지났습니다.
은행연합회는 중저신용자 대출이 많은 은행의 예대금리차가 크게 나오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신용평가사인 KCB의 신용점수 구간별 예대금리차 정보도 함께 공개하고 있는데요.
▲ 10월23일 서울 서초구 한 시중 은행지점 입구에 직장인 신용대출 안내 문구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
시중은행 간 예대금리차 전체를 숫자 하나로만 비교할 게 아니라 대출상품별 신용점수 구간별로도 비교할 수 있게끔 해 공시제도의 실효성을 높인 거죠.
새 제도가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만큼 종종 은행연합회 사이트에 들어가 각 시중은행별 예대금리차 데이터를 금융소비자 입장에서 들여다보곤 합니다.
20일 새로 은행연합회에 공시된 KB국민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9월 신규 취급 대출의 예대금리차 자료를 이리저리 보는데 평소와 다른 특이한 점이 하나 눈에 들어왔습니다.
9월 NH농협은행의 신용한도대출(마이너스대출)에서 신용점수 구간별 금리 역전 현상이 심하게 나타난 것입니다.
▲ 9월 5대 시중은행의 신용한도대출 신용등급별 금리현황 데이터. NH농협은행에 신용등급별 금리 역전 현상이 나타났다. <은행연합회 화면 캡쳐> |
보통 신용도가 높으면 대출금리가 낮고 신용도가 낮으면 대출금리가 높습니다. 하지만 9월 NH농협은행의 신용한도대출의 대출금리는 완전히 반대로 나타났습니다.
신용도 1등급인 신용점수 951~1천 점 구간의 평균 대출금리가 5.70%이었던 반면 5등급인 신용점수 751~800점 구간의 평균 대출금리는 4.99%였습니다.
2등급과 3등급, 4등급의 평균 대출금리도 각각 5.60%와 5.41%, 5.10%로 신용도가 나쁠수록 낮은 금리를 받았습니다. 5등급 뒤로는 대출금리가 조금씩 오르긴 했지만 8등급인 601~650점 전까지 여전히 1등급의 평균 대출금리가 가장 높게 나타났고요.
기본적으로 각 시중은행들은 고객의 대출금리를 산정할 때 KCB와 나이스 등 신용평가사의 신용등급을 참고할뿐 자체적으로 개발한 신용평가시스템을 사용합니다.
KCB 점수와 자체 신용평가점수 사이 상관관계는 있지만 정확히 같은 것은 아니라는 거죠. 따라서 자체 신용평가점수로 산정된 대출금리를 KCB 점수 기준으로 재분류하는 과정에서 일부 신용등급 구간별 금리 역전 현상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실제 다른 은행들도 일부 신용점수 구간에서 금리 역전 현상이 조금씩 나타나는데요, 하지만 이번 NH농협은행 사례처럼 금리 역전 현상이 여러 구간에 걸쳐 큰 폭으로 나타난 경우는 찾지 못했습니다.
이전부터 이런 흐름이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7월, 8월 데이터와 비교하고 신용한도대출 외에 일반신용대출과 주택담보대출 상품의 데이터도 봤는데 특이점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 8월 5대 시중은행의 신용한도대출 신용등급별 금리현황 데이터. 이례적 수준의 금리 역전 현상이 확인되지 않는다. <은행연합회 화면 캡쳐> |
자연스럽게 ‘혹시 데이터 적합성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물어볼 수밖에요.
은행연합회에 문의하니 예대금리차 관련 공시 자료는 각 은행이 직접 최종 숫자를 입력하는 시스템이라 각 은행에 확인해야 한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결국 NH농협은행에 문의했고 결과적으로 잘못된 숫자가 아니라는 답을 얻었습니다.
NH농협은행에 따르면 9월 KCB 기준 중저신용자 쪽에 우대금리를 주는 협약대출이 새로 발생하면서 평균 대출금리 역전 현상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기본적으로 중저신용자 신용대출은 고신용자보다 건수가 크게 적어 대출 한도가 큰 몇 건에 평균 대출금리가 크게 흔들리는데 9월 낮은 금리의 협약대출이 나가면서 그런 효과가 나타났다는 겁니다.
협약대출이 신용한도대출 상품만 대상으로 해 일반신용대출 쪽에서는 금리 역전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고요.
다행이었습니다.
데이터 적합성에 문제가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면 예대금리차 공시와 관련한 데이터 전체의 신뢰성이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대출금리 역전 이유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금융소비자가 잊지 말아야 할 사안들도 챙기게 됐습니다.
신용평가사의 신용점수를 너무 믿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한 명이지만 내 신용점수는 하나가 아닙니다. 금융사 각각의 신용평가시스템에 따라 제각각입니다. 신용평가사의 높은 신용점수가 은행의 낮은 대출금리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또한 협약대출 등 우대금리를 받을 수 있는 사안들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때로는 우대금리를 얼마나 받느냐가 신용도에 따른 금리 차이를 가뿐히 넘어서기도 합니다.
결국 금융소비자가 각 금융사별로 꼼꼼히 대출 조건을 알아본 뒤 어디서 대출을 받을지 선택해야 한다는 얘깁니다. 금리뿐 아니라 대출의 또 다른 주요 선택 요소인 대출 한도 역시 각 금융사별로 크게 다를 수 있으니까요.
한국은행의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으로 시중은행의 대출금리도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있습니다. 정신을 더욱 똑바로 차리고 현명한 금융소비자가 돼야겠습니다.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