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파른 금리인상에 부동산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급매 가격이 새로운 시세로 굳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
[비즈니스포스트] “그 거래 사연 있는 거래예요. 집주인이 사정이 급해서 전세가격에 넘긴 걸로 알고 있어요.”
경기도 한 신축 대단지 아파트에서 올해 7월 전용면적 73㎡(29평) 아파트가 4억2천만 원에 거래됐다. 불과 4개월 전인 지난 3월 거래가격인 6억8천만 원에 견줘 2억6천만 원이 떨어졌다.
이 단지 같은 평형 아파트는 같은 달 말에도 4억4천만 원에 거래됐다.
서울 신축 대단지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서울 강동구 상일동 고덕아르테온은 올해 7월26일 전용면적 84㎡(34평) 매물이 14억8천만 원에 거래됐다. 8월6일에도 같은 평형에서 14억8천만 원, 똑같은 가격에 거래가 성사됐다.
고덕아르테온은 2020년 2월 입주한 4066세대 아파트로 올해 4월 84㎡ 매물이 신고가 19억8천만 원에 팔렸다. 하지만 그 뒤 5월에는 16억 원대, 14억 원대로 몇 달 사이 집값이 2억~3억 원씩 내리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DMC파크뷰자이(4300세대)에서도 올해 6월 14억500만 원에 거래된 전용면적 84㎡ 매물이 8월1일과 16일 각각 11억5천만 원, 10억7천만 원에 거래됐다.
8일 부동산시장조사기관들의 분석을 종합하면 가파른 금리인상에 부동산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초급매 거래가 새로운 시세로 굳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부동산 활황기에 가격 상승을 주도했던 대단지, 신축, 재건축 등 개발호재가 있는 아파트들은 가장 먼저 크게 오른 만큼 큰 폭으로 가격이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부동산R114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월부터 8월까지 서울 아파트의 연식별 매매가격 변동률을 조사한 결과 1~5년차 신축 아파트 가격이 0.54% 하락했다. 같은 기간 입주 6~10년차 준신축 아파트와 입주 10년 초과 구축 아파트 가격은 각각 0.86%, 0.69% 오름세를 유지한 것과 비교해 가장 먼저 하락세로 돌아선 것이다.
앞서 서울의 입주 5년 이내 신축 아파트들은 2017년 기준 매매가격이 15.5% 급등했고 그 뒤로도 2020년까지 쭉 비슷한 상승률을 보여왔다.
부동산시장 전문가들은 금리인상이 2023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추석 뒤에도 집값이 더 내려갈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를 싣고 있다.
아파트시장 거래절벽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금리가 계속 오르면서 주택 매수심리가 빙하기에 접어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금과 같은 경제 여건에서는 정부가 부동산시장 규제를 풀어도 시장 활성화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8일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 고위인사들의 발언을 종합해 9월에도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 금리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연방준비제도는 올해 6월과 7월에도 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포인트 올리는 자이언트스텝을 밟았다.
한국은행도 이날 통화신용정책 보고서에서 앞으로 통화정책 방향을 놓고 “물가가 목표수준을 크게 웃도는 높은 오름세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돼 금리인상 기조를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시장에서는 한국은행이 2023년까지도 추가 금리인상 등 긴축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금리인상은 집값 하락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 요인으로 꼽힌다.
국토연구원 부동산시장 연구센터가 지난 5일 발표한 보고서 ‘유동성이 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과 시사점’를 보면 금리와 통화량은 특히 서울과 수도권 부동산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파트값이 비싼 만큼 대출을 받아야 하는 비율도 높기 때문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기준금리가 1%포인트 높아지면 2.1%포인트 하락하는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됐다. 서울 외 수도권과 비수도권 광역시에서는 금리 1%포인트 인상에 아파트 가격이 각각 1.7%포인트, 1.1%포인트 떨어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황관석 국토연구원 부동산시장센터 부연구위원은 “현재 한국은 코로나19 뒤 저금리, 유동성 확대로 주택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위험지표가 높아진 상황에서 올해부터 시장이 둔화기로 급전환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며 “급격한 금리인상, 통화긴축으로 주택시장 경착륙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고 바라봤다.
경착륙이란 활기를 띠던 경기가 갑자기 냉각되면서 급격히 침체되는 현상을 말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전국 주택 매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6% 급감했다. 수도권으로 살펴보면 56.1%로 감소폭이 더 크다.
법원 등기정보광장을 봐도 8월 전국 아파트 등 집합건물 거래회전율은 0.39%로 2013년 1월(0.32%)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거래회전율 0.39%는 부동산 1만 개 가운데 거래된 건이 39건에 그쳤다는 뜻이다.
집을 사려는 사람이 줄어들면서 국내 부동산시장의 대표적 지표인 서울 아파트 가격은 이미 뚜렷한 하락세에 접어들고 있다.
서울 아파트값은 9월 첫째 주 0.13% 하락하며 3년 7개월 만에 최대 폭으로 떨어졌다. 현재 부동산 거래시장이 마비상태라고 할 만큼 거래가 없는 가운데 시장 분위기를 주도하는 서울 ‘상급지’ 단지에서도 하락거래가 이어지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에 따르면 강남구 도곡동 도곡렉슬 전용 134㎡ 매물은 8월2일 42억3천만 원에 거래됐다. 2021년 5월 말(49억4천만 원)과 비교해 약 7억 원이 하락했다.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퍼스티지는 전용 59㎡ 매물이 8월 말 25억5천만 원에 팔렸다. 이는 직전 신고가보다 4억5천만 원이 떨어진 가격이다.
서울 재건축의 상징 대치동 은마아파트에서도 올해 8월10일 전용면적 84㎡ 매물이 25억7천만 원에 거래돼 5월(27억7천만 원)보다 2억 원이 하락했다. 직전 신고가인 2021년 11월 28억2천만 원과 비교하면 2억5천만 원이 내렸다.
인공지능 바탕의 부동산분석 앱 서비스를 운영하는 리치고가 개발한 전세대비 저평가 인덱스 자료에 따르면 2022년 8월 기준 서울의 아파트값이 적정가 대비 51.2% 고평가 돼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세가격이 부동산의 실체 가치와 수요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분석 아래 이런 전세가격과 매매가격 증감율을 비교한 결과 현재 서울 아파트값은 역대 가장 고평가돼 있다는 것이다.
이는 아파트값 추가 하락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을 뒷받침한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지난 5일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주택시장 안정에 관한 목표를 묻는 질의에 “서울은 현재 소득 대비 집값이 18배까지 나와 금융위기 전 8배, 금융위기 이후 10배인 때와 비교해도 지나치게 높다”고 말했다.
소득 대비 집값이 18배에서 8배가 되려면 집값은 55% 떨어져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