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통가에서 ‘선 넘는 마케팅’이 반복되고 있다. 맘스터치는 '마이애미'라는 이름으로 이벤트를 진행한지 하루도 안 돼 소비자 비판에 직면해 행사를 급하게 종료했다. 사진은 과거 맘스터치 홍보 영상. |
[비즈니스포스트] 유통가에서 ‘선 넘는 마케팅’이 반복되고 있다.
고객의 눈길을 끌 수 있는 요소를 찾다보니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종종 쓰이는 패드립(패륜적 드립의 줄임말로 가족과 친지를 농담 소재로 삼는 것)과 욕설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문구까지 등장하기도 한다.
이를 두고 재치있다는 평가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많은 소비자들이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다른 기업의 제품보다 돋보여야만 생존을 장담할 수 있는 유통기업의 처지를 고려할 때 이런 논란은 앞으로도 반복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8월에만 마케팅으로 논란을 일으킨 굵직한 사건이 2건이나 된다.
맘스터치는 8월3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을 통해 소비자들이 자신의 어머니 SNS 프로필 사진을 올리면 추첨을 통해 경품을 증정하는 행사를 진행했다.
문제는 행사명이었다. 맘스터치는 ‘나의 어머니’를 떠올릴 수 있도록 ‘마이(My)’와 ‘애미(경남지방에서 사용되는 어미의 사투리를 활용한 표현)’을 합한 ‘마이애미’로 행사명을 정했다.
소비자들의 반발은 거셌다.
맘스터치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누가 엄마를 애미라고 칭하나. 생각이 없는 건지 상식이 없는 건지 아니면 둘 다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것을 위트라고 생각해 결제를 올린 사람도 문제고 승인한 사람도 문제다. 논란의 여지가 충분하다” 등 소비자들의 비판글이 쏟아졌다.
결국 맘스터치는 당일 행사 공지글을 내리면서 “일부 단어 사용으로 고객님들께 불편함을 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하루도 안 돼 이벤트를 종료했다.
앞서 편의점 이마트24도 주식시장 침체기 투자자들의 염장을 지른 표현으로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이마트24는 8월8일 자체브랜드 상품인 ‘내 주식처럼 사르르 녹는 바닐라 버터샌드’라는 제품을 내놨다가 일부 소비자들의 반발에 직면해 하루 만에 신제품 출시를 중단하기도 했다.
당시 남의 불행을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수용한 것이다.
사실 이런 마케팅 논란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LG생활건강은 2017년 강아지 ‘시바견’을 모델로 한 구강청결제품을 출시했는데 이 과정에서 광고 문구로 ‘이 닦고 잠이나 자라 시바’ ‘치약 짜지마 그냥 눌러 써 시바’ ‘가글 상쾌해 시바’ 등의 문구를 게재해 논란이 됐다.
웅진식품은 2017년 1월 출시한 ‘사장껌’ ‘부장껌’ 때문에 도마에 올랐다. 직장인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제품을 씹으며 답답한 기분을 전환할 수 있도록 한 제품이라는 것이 웅진식품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재미로 지은 이름이라고 해도 직장 상사들을 모욕하는 느낌을 준다는 소비자 반응도 적지 않았다.
여행숙박 플랫폼 여기어때도 욕설 논란을 겪었다.
여기어때는 2017년 숙박의 달인인 한국생활 10년 차 외국인 존에게 숙소 잡는 법을 묻는 방식의 캠페인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존, 나 방 싸게 잡았어’ ‘존, 나 쉽게 골랐어’ 등의 문구가 활용됐는데 비속어인 ‘존X’를 연상할 수 있는 문구를 사용했다.
당시에 언어유희를 사용해 재미있다는 소비자 반응도 있었지만 비속어를 직접적으로 떠올리게 해 불편하다는 소비자 반응도 적지 않았다.
팔도 역시 마케팅으로 곤욕을 치른 바 있다.
팔도는 과거 컵라면 왕뚜껑 제품 17억 개 판매를 기념해 ‘츤데레’ 마케팅을 진행했다가 소비자들로부터 항의를 받고 급하게 행사를 종료한 적이 있다.
츤데레는 일본의 인터넷 유행어다. 국립국어원은 ‘새침하고 퉁명스러우면서 때로 수줍음을 타기도 하는 성격 유형’이라고 츤데레를 풀이하고 있다.
팔도는 당시 왕뚜껑의 뚜껑에 ‘돼지냐? 먹는 것도 이쁘게’ ‘여친 없겠네? 빡세게 공부하느라’ ‘쫄보자식, 망설이면 라면 다 불어’ ‘입천장 타고 싶냐 호호’ 등의 문구를 넣었다.
컵라면에 물을 붓고 면이 익기까지 기다릴 때 뚜껑의 문구를 보며 소비자들이 재미를 느꼈으면 하는 의도라는 게 팔도의 해명이었지만 “살다살다 라면 먹는 걸로 시비 걸리는 것은 처음이다”라는 소비자들의 불쾌한 반응이 이어지면서 행사는 오래가지 못했다.
▲ 유통업계에서 마케팅 논란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유는 여러가지로 분석된다. <게티이미지> |
이처럼 유통업계에서 마케팅 논란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유를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제품 차별화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제품을 판매하려면 눈에 띄는 마케팅이 유효한 전략이 될 수 있다는 인식 때문에 다소 과감한 마케팅에 나선다는 것이 이유 가운데 하나다.
당장 판매량이 우선인 상황에서 소비자들의 눈에 띄려면 널리 회자될만한 요소를 찾는 것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개의 새로운 마케팅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밋밋한 마케팅으로만 승부하는 것은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핫’한 유행어를 찾아 마케팅에 활용하는 사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 유행어에는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기 힘든 용어들도 많은 만큼 뜻하지 않은 역효과를 불러오는 사례 역시 많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유통업체의 특성이 장기적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보다 단기적 판매를 중시한다는 현실도 마케팅 논란이 끊어질 수 없는 이유로 꼽힌다.
흔히 말하는 명품기업들은 브랜드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더욱 고급 브랜드로 돋보일 수 있는 마케팅에 집중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제품들은 수명 주기가 짧다는 특성상 우선 판매 확대에 기업의 역량을 집중할 수밖에 없다. 마케팅 단계에서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화제가 될 만한 문구를 찾는 데 공을 들여야 하는 배경이다.
‘재미있는 유머’와 ‘불쾌한 유머’를 재단하는 기준이 소비자마다 다르다는 점도 마케팅 논란이 계속되는 이유다.
마케팅 논란이 반복될 때마다 나오는 소비자 의견은 “재미를 재미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웃자고 하는 일에 죽자고 달려들면 안 된다”라는 반응과 “기업이 지킬 건 지켜야 한다” “본인들이 재밌다고 남들도 다 재밌어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남들의 불쾌함을 유발할 수 있는 마케팅은 지양돼야 한다”는 반응으로 나뉜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마케팅 논란의 핵심은 그 사회가 유머를 어느 수준까지 허용하고 있느냐를 보여준다는 것이다”며 “한국 소비자들이 과거 비판했던 광고도 시간이 지나면서 지나쳤다는 여론이 많아지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과거에는 괜찮았다 하더라도 현재 시각에서는 선을 넘었던 마케팅이었다고 지적받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