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촨푸는 배터리 업계에서 성공을 거둔 것만으로는 만족 할 수 없었다. 자동차 시장이 그가 차지할 수 있는 먹음직스러운 케이크의 마지막 조각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핸드폰 사업은 할 수 없다고 봤다. 협력사와 경쟁하는 것이 꺼려졌고 이미 레드오션이었다. 부동산 사업은 더욱 할 수가 없었다. 부동산 시장은 진입 문턱이 낮아 누구나 다 뛰어들던 시기였다.
▲ 왕촨푸 비야디 회장이 '2019년 중국전기차100인회'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왕촨푸가 원했던 것은 아주 간단하다. 진입문턱이 조금 높고 독점 기업이 적으며 경쟁이 덜 치열한 사업이다.
그는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자동차 사업밖에 새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 그때가 시작하기엔 최적의 시점이었다”고 말했다.
왕촨푸는핸드폰 배터리 사업만 하다가 2003년 1월23일 2억7천만 위안(508억 원)에 시안친촨자동차유한책임공사의 77% 지분을 인수해 대주주가 됐다.
이러써 비야디는 지리자동차를 이은 중국 두 번째 민간 완성차 제조업체 지위에 올랐다. 같은 해 5월 시안친촨자동차의 회사이름은 비야디자동차로 바뀌었다.
◆ 전기차 사업 본격 시작
왕촨푸가 시안친촨자동차유한책임공사를 인수한 데에는 단순히 자동차 사업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동차 배터리 시장과 하이브리드 자동차 시장을 개척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그리고 궁극적 목표는 전기차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왕촨푸는 중국 자동차 시장의 잠재력이 아주 크다고 봤다. 중국에는 몇 천만 명의 오토바이 사용자와 몇 억 명의 자전거 사용자가 있었다. 인당 소득 수준이 올라가는 만큼 자동차 수요도 늘고 더 멀리 바라보면 에너지 절약과 친환경은 불가피한 추세가 돼 전기차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했다.
왕촨푸는 한 중국 매체와 인터뷰에서 당시 전기차 시장의 미래에 200%의 자신감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전기차 시장이 계속 고전하고 있는 것은 수요가 아직 터지지 않았던 이유도 있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배터리다”며 “나는 배터리 기술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다른 완성차업체와의 협력은 "밑지는 장사다”라고 판단했다.
왕촨푸가 자동차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전에 미국 GM이 전기차 개발을 포기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왕촨푸는 “GM은 리튬배터리 시장이 이렇게 빨리 성장할 줄 몰랐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했을 것"이라며 "굉장히 잘못된 선택이다”고 평가했다.
그는 “나는 앞으로 전기차 배터리의 주축은 리튬배터리가 될 것으로 확신하며 중국은 이를 제조할 수 있는 땅이 있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먼저 앞서갈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왕촨푸는 2003년 8월23일 열린 ‘2003년 산시(陕西)광둥경제무역협력 설명회’에서 비야디의 자동차산업 진출을 알렸다.
이날 비야디와 시안하이테크산업개발단지, 산시성투자그룹이 비야디 전기차 생산라인 공동 건축 협약을 맺었다. 이 프로젝트의 투자 규모는 20억 위안(3763억 원)에 이르렀다.
협약에 따라 시안하이테크산업개발단지 안의 10만 평 땅에 비야디의 세단 연구개발 센터, 20만 대 규모의 전기차 생산라인, 세단 엔진 가공조립 공장, 전기차 배터리 생산라인, 엔진 에너지 시설, 신차 테스트 전용 도로 등 건축물이 세워졌다.
◆ 상장으로 조달한 자금을 회사에 투자
비야디는 2002년 7월31일 홍콩증시에 상장했다. 상장 당일 여러 기록을 깼다. 공모가격은 10.95홍콩달러(1678원), 증거금은 16억5천만 홍콩달러(2528억 원)로 모두 당시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
그전부터 엔젤투자나 벤처투자 업체들이 왕촨푸를 접촉해 왔다. 하지만 왕촨푸는 자금을 끌어들이고 상장하는 데 조급해 하지 않았다. 2001년만 해도 홍콩증시에는 하이테크 테마주들이 한창 유행하던 시기였는데 왕촨푸는 이를 따라가지 않았다.
▲ 비야디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 쑹(宋)DM. 17.69만~27.59만 위안(3765만~5248만 원)에 판매되고 있다.
2002년에 홍콩증시에 상장하기 위해 기업들은 두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했다.
순이익률이 높고 현금흐름이 건강해야 한다는 기준이 있었다. 비야디는 이 두가지를 모두 만족시킬 만큼 성장해 있었다.
비야디 상장으로 왕촨푸는 거대 자금을 얻게 됐으나 개인 주머니에 넣지 않았다. 처음 자동차 회사의 77% 지분을 인수할 때 사용한 2억7천만 위안도 상장으로 얻게 된 자금이었다.
왕촨푸는 비야디의 핵심 창립자이지만 보유 중인 지분은 28%에 불과하다. 나머지 34명의 대주주들이 22%의 지분을 나눠서 들고 있다. 따라서 왕촨푸 자신뿐만 아니라 핵심 임원은 모두 억만장자가 됐다.
회사의 이익을 자신이 독점하려 하지 않고 주변과 나누려는 성정 때문에 그의 주위에는 핵심 인재들이 모일 수 있었다.
업계에 따르면 비야디의 연구개발 센터와 시장관리 부서에는 중국의 배터리 전문가들이 모여있다. 그리고 이 두 부서는 왕촨푸가 직접 관리하고 책임지는 부서로 알려졌다. 중간 관리자가 아예 없다는 말이다.
이런 관리방식을 통해 왕촨푸는 시장의 흐름과 기술 방향을 곧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왕촨푸는 떳떳하게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가장 자랑스럽게 여겼다. 비야디의 지배구조와 기술력이 투명하고 성장 과정도 모두 드러나 있다는 것이다.
“기업은 하나의 나무와 같다. 겉으로 꽃이 있고 과실이 있어도 가장 중요한 것은 나뭇가지와 뿌리다. 상장으로 비야디는 완전히 투명한 회사가 됐고 투자자들은 모든 것을 볼 수 있게 됐다. 비야디의 역사는 우리가 갑자기 튀어나온 회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지분구조는 합리적이고 여기서 어떠한 리스크도 발견할 수 없다. 기술에는 특허를 냈으며 개발 과정도 뚜렷하게 존재한다. 고객들 또한 믿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다 아는 글로벌 회사라는 것을. 이 모든 것들이 비야디가 더 울창한 나무로 성장하는 것을 보장해 줄 것이라 믿는다.” [비즈니스포스트 노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