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엔지니어링는 28일 증시 상장 철회 신고서를 제출하면서 남은 공모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김 사장은 지금 상황에서는 기업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을 수없다는 판단에 철회라는 초강수를 둔 것으로 보인다.
실제 현대엔지니어링의 본사업인 건설업을 둘러싼 시장의 시선은 무척 차갑다.
HDC현대산업개발의 지난달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아파트 붕괴사고로 건설업 자체가 신뢰도에 손상을 입었다. 여기에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따른 안전예산 추가로 원가 상승 우려까지 겹쳤다.
애초 현대엔지니어링은 상장하면 모회사인 현대건설의 시가총액을 뛰어넘는 건설 대장주가 될 것이란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주당 공모가는 5만7900~7만5700원 사이였다.
하지만 지난 25~26일 진행된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에서 저조한 경쟁률을 보여 공모가가 최하단으로 결정될 수 있다는 말이 나왔다.
공모가가 최하단으로 결정되면 현대엔지니어링의 시가총액은 4조6천억 원 안팎으로 한 때 장외시장에서 10조 원을 넘었던 것을 고려하면 크게 아쉬울 수밖에 없다.
이에 더해 지난 27일 상장한 LG에너지솔루션을 두고 지수를 추종하는 펀드나 상장지수펀드(ETF)들이 LG에너지솔루션 주식을 매입하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엔지니어링 상장을 둘러싸고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상장이라는 비판도 새삼 불거졌다. 현대차그룹의 오너일가의 현금 확보를 위해 구주 매출비중이 높다는 인식이 확산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1600만 주를 공모한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신주모집은 400만 주(25%)에 그쳤다. 나머지 1200만 주(75%)가 구주매출로 설정됐기 때문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현대엔지니어링 주식 534만1962주, 지분율 7.03%를 구주 매출로 처분해 현금화할 수 있었다. 이렇게 되면 현대엔지니어링 기업공개를 통해 3천 억~4천억 원가량의 거금을 쥐게 된다.
김 사장은 지난 25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우려를 두고 “주식의 적정 유통물량을 30%로 보고 있고 소액주주 보유 물량이 10% 수준이라 공모 규모로 20% 수준으로 결정했다”며 “앞으로 6개월 후에 보호예수 물량 매도 계획도 없다”며 진화에 나섰다.
그는 “신사업을 위한 유상증자도 없을 것이고 높은 배당성향을 유지해 주주친화정책을 유지하겠다”고 덧붙였다.
김 사장은 현대엔지니어링 상장을 앞두고 여러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기업가치를 높이는 데 힘썼다. 하지만 다른 건설사와 차별화 된 요소는 부족하다는 지적을 피하지 못했다.
증권업계 일각에서는 건설업은 경기에 영향을 많이 받는 데다 성장성이 낮아 기업가치를 높게 인정받기 어려워 상장 자체가 쉽지 않다는 목소리를 끊임없이 나왔다.
김 사장은 이런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경기에 영향을 받지 않고 건설업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폐기물 소각 및 매립사업 등 신사업에 정성을 쏟아왔다. 수소·태양광·소형모듈원전(MMR)사업을 통해 현대차그룹에 수소를 공급하는 에너지전담기업을 되겠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하지만 이런 신사업 구상도 결국 모기업인 현대건설의 사업 포트폴리오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시장의 인정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현대엔지니어링 관계자는 “외부 경영환경 악화와 최근 주식시장이 조정 상태를 보임에 따라 적절한 기업가치를 인정받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아직 결정된 바는 없지만 유가증권시장에 입성을 도전할 것이고 기업가치를 높이는데 힘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상장 연기로 신사업 추진에 빨간불이 켜진 게 아니냐는 시선도 나온다.
현대엔지니어링은 KGETS 환경에너지사업부 인수를 추진했는데 본입찰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김 사장은 신사업을 강조하며 환경사업 진출을 예고했고 지난해 12월 금융위원회에 증권신고서에 상장을 통해 확보한 자금 가운데 폐기물 소각·매립장 운영을 위한 지분매입에 2024년까지 3345억 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집어 넣기도 했다.
KGETS 환경에너지사업부문은 폐기물 및 폐수처리, 소각사업에 더해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인 스팀(증기)을 근접한 염색·화학단지에 판매하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이 2021년 말 기준 순현금 1조8천억 원을 보유해 막강한 재무체력을 갖췄다. 하지만 5천억~1조 원 안팎의 가치평가를 받는 대형 폐기물(환경)기업을 인수하기 위해 보유 현금을 곧바로 사용하기는 쉽지 않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이번 상장을 통해 2천억~3천억 원 수준의 현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김 사장 입장에서는 폐기물사업 진출을 위한 재원을 확보하지 못해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어 보인다. SK에코플랜트는 지난해 도시환경, 이메디원, 그린환경기술 등 환경기업 3곳을 인수하는 데 2천억 원을 썼다. [비즈니스포스트 류수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