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퀄컴이 ASUS와 협업해 개발한 자체 스마트폰. 전용 무선이어폰이 함께 제공된다. <퀄컴> |
세계적 반도체기업 퀄컴이 자체 스마트폰을 내놨다. 구글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최적화를 위해 자체 스마트폰 브랜드를 운영했던 것처럼 퀄컴 역시 스마트폰을 활용해 반도체 성능 강화를 꾀할 것으로 보인다.
퀄컴은 모바일 반도체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다만 최근에는 여러 모바일기업이 독자적으로 반도체 개발에 뛰어들면서 입지가 줄어들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다. 퀄컴으로서는 다양한 전략을 모색할 필요성이 높아진 셈이다.
9일 퀄컴에 따르면 최근 퀄컴 커뮤니티 ‘스냅드래곤 인사이더’ 회원들을 위한 자체 스마트폰을 발표했다.
이 스마트폰은 대만 전자기업 에이수스와 협력으로 개발됐다. 제품 사양은 에이수스의 기존 프리미엄 스마트폰 로그5와 거의 비슷한 것으로 알려졌다.
퀄컴의 최신 AP 스냅드래곤888, 144Hz 주사율 올레드패널, 512GB 저장공간, 16GB 램, 5G통신 지원, 후면 6400만 화소 트리플카메라 등을 갖춘 것으로 파악된다.
퀄컴은 스마트폰용 AP와 통신모뎀 등을 전문으로 개발하는 반도체 설계 전문기업(팹리스)이다. 직접 소비자와 접촉하지 않는 퀄컴이 자체 브랜드로 스마트폰을 내놓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해외매체에서는 퀄컴의 스마트폰사업이 단순한 마케팅 목적이 아니라 반도체 성능을 높이는 데 목적을 두고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IT매체 나인투파이브구글은 “앞으로 스냅드래곤 인사이더용 스마트폰은 퀄컴의 최신기술을 소개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고 덧붙였다.
모바일업계는 퀄컴의 이번 전략이 구글이 자체 스마트폰 브랜드 ‘넥서스’를 운영했던 것과 비슷하다고 본다.
구글은 모바일 운영체제 안드로이드의 표준을 보여주는 차원에서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위탁생산(ODM)기업들과 협업해 넥서스 시리즈를 선보였다.
비록 판매량은 많지 않았지만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넥서스를 참조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에 알맞은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할 수 있었다.
퀄컴의 자체 스마트폰 역시 반도체가 실제 기기에서 설계상의 성능을 내는지, 지나친 발열과 같은 이상현상은 발생하지 않는지 등을 평가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술매체 디지털트렌드는 “퀄컴의 스마트폰은 소프트웨어업체가 아닌 반도체기업이 의뢰한 '넥서스 스마트폰'이라고 보면 된다”며 “퀄컴의 관점에서 이번 스마트폰은 스냅드래곤888 프로세서의 쇼케이스다”고 말했다.
퀄컴이 자체 스마트폰이라는 카드를 꺼내들면서까지 반도체의 성능 향상을 추진하게 된 배경에는 고객사인 모바일기업들의 반도체 개발 열풍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샤오미와 오포 등 중국 모바일기업들은 5G통신모뎀이 통합된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설계해 이르면 올해 말 선보일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오포는 산하 브랜드 원플러스와 리얼미에서도 자체 반도체 개발이 이뤄지는 것으로 전해졌다.
퀄컴 최대 고객사로 꼽히는 삼성전자도 모바일 반도체 성능 개선에 열을 올리고 있다. AMD와 협업해 만들어지는 삼성전자 차세대 AP 엑시노스2200은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일부 성능에서 퀄컴의 다음 AP 스냅드래곤895를 넘어서는 것으로 전해졌다.
퀄컴은 AP 등 통신용 반도체에 실적 대부분을 의존하고 있는 만큼 고객사들의 이탈 가능성이 반갑지 않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 퀄컴은 매출 164억9300만 달러를 거뒀는데 이 가운데 70%가 통신용 반도체를 담당하는 QCT사업부에서 나왔다.
일각에서는 퀄컴이 향후 자체 스마트폰의 성과에 따라 다른 기업과 협업해 본격적으로 스마트폰사업에 뛰어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 포브스는 “퀄컴이 자체 스마트폰을 더 광범위하게 확장하는 것은 첫 번째 시도의 성공 여부에 달려 있다”며 “이번 협업이 성공하면 모든 소규모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공급업체가 삼성-애플 독점에 맞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퀄컴이 반도체 고객사를 잃을 위험을 고려하면 스마트폰사업이 대규모로 확대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 모바일업계의 중론이다. 퀄컴이 스마트폰 경쟁자가 될 경우 모바일기업들이 퀄컴 반도체 사용을 축소할 공산이 크다.
특히 이번 제품은 생산량 자체가 기존 모바일기업과 경쟁이 벌어질 정도로 많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퀄컴 스냅드래곤 인사이더 회원이 160만여 명에 그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1분기에 판매한 스마트폰이 7700만 대에 이른다는 점을 고려하면 퀄컴의 이번 스마트폰 수요는 시장에 영향을 미치기 어려운 규모라고 볼 수 있다.
1499달러라는 가격도 시장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평가된다.
IT매체 폰아레나는 “퀄컴과 에이수스가 한정판 스마트폰을 수백만 대나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며 “이번 스마트폰은 2021년에 구입할 수 있는 최고의 스마트폰 목록에 포함될 것 같지 않다”고 바라봤다.
퀄컴의 스마트폰은 8월 미국, 영국, 한국, 일본 등에서 온라인으로 판매가 시작될 것으로 전해졌다. 구매할 경우 전용 무선이어폰을 함께 받을 수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