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라이브 채권단은 매각 예비입찰에 단독으로 참여한 KT와 두 달여 동안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데 KT가 가격, 독과점 문제 등을 이유로 일부 케이블TV 사업권역을 제외한 부분 인수를 원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 전용주 딜라이브 대표이사.
28일 유료방송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현재 케이블TV 인수합병시장은 원매자 후보군인 이동통신사 중심으로 흐르는 분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현대HCN 매각이 마무리되면서 LG유플러스, SK텔레콤에 이어 KT 등이 이미 한차례 케이블TV 인수전을 치른 데다 인터넷TV로 재편되는 시장에서 '시간은 통신사 편'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
유료방송업계의 한 관계자는 “케이블TV는 ‘지는 해’다 보니 한 해 한 해 가격이 떨어진다”며 “게다가 케이블TV는 독자생존이 어려워 매각으로 갈 수밖에 없지만 원매자 후보인 이동통신사들은 케이블TV를 인수해 한 번에 가입자를 확보하는 것과 자체 영업 등을 통해 늘려가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기회비용이 좋을지 저울질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딜라이브는 덩치가 커 가격이 비싼 만큼 현재 유료방송시장 상황에서는 매각에 더 불리한 상황에 놓여있다.
실제 딜라이브 채권단이 앞서 11월 초 진행한 매각 예비입찰에도 KT만 참여했다. 현대HCN, CMB 등 다른 케이블TV기업 인수전에는 일단 이동통신3사가 모두 참여 의사를 표시했던 것을 생각하면 딜라이브의 처지는 더 어렵다고 볼 수 있다.
딜라이브 채권단으로서는 KT와 협상 테이블에서 결론을 내는 것이 절실해진 셈이다.
딜라이브 채권단은 이번에야말로 수년을 끌어온 매각작업을 성사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패를 내놓고 있다.
특히 엔터테인먼트 자회사 IHQ를 삼본전자 컨소시엄에 약 1천억 원에 최근 넘겨 딜라이브 매각의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히던 ‘몸값’을 낮췄다.
이번 예비입찰에 앞서 딜라이브 노조도 한 배에 태우는 데 성공했다. 딜라이브 노조는 KT가 2년 전인 2018년 딜라이브 인수를 추진했을 때 고용 안정성 등을 이유로 회사 매각에 반대했었다.
희망연대노조 딜라이브지부는 올해 10월 “유료방송시장 경쟁이 갈수록 심화하고 인터넷TV를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는 상황에서 매각은 노사가 윈윈할 수 있는 사안”이라며 "매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딜라이브 채권단의 적극적 태도에도 KT와 매각 관련 협상이 좀처럼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딜라이브 채권단이 예비입찰 뒤 두 달이 지나도록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으로 넘어가지 못한 것을 보면 두 회사가 합의점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KT로서도 올해 10월 자회사 KT스카이라이프를 통한 현대HCN 인수를 막 마무리해 2위, 3위 사업자와 격차를 벌려둔 만큼 딜라이브 인수에 조급할 이유가 없다.
딜라이브 인수전에서는 다른 경쟁자도 없어 가격 경쟁이 붙을 일도 없다.
KT로서는 딜라이브 인수 의지가 있더라도 유료방송시장 독과점문제, 가격문제 등을 고려해 최대한 유리한 협상을 이끌 시간적, 상황적 여유가 충분한 셈이다.
KT는 현대HCN에 더해 딜라이브까지 인수하게 되면 유료방송시장 점유율이 41.4%로 높아진다. 유료방송시장 점유율 규제 폐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방송법·인터넷멀티미디어 방송사업법 개정안이 입법예고 돼 규제의 제약은 없지만 독과점문제가 대두될 가능성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딜라이브의 가격도 여전히 부담일 수 있다.
딜라이브 채권단은 매각가격으로 9천억 원 수준을 원하지만 KT는 2018년 딜라이브 인수가격으로 6천억 원을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딜라이브는 2019년 말 연결기준 부채규모도 6600억 원이 넘는다.
KT는 2021년 유독 비용이 들어갈 곳이 많다. 마케팅 경쟁은 물론 구현모 KT 대표이사 사장이 계열사 구조조정을 본격화하면서 관련 비용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5G통신 기지국 등 인프라 구축에 투자도 해야 한다.
이에 KT는 딜라이브 사업권역 일부만을 인수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딜라이브 채권단이 엔터테인먼트사업과 케이블TV사업 분할매각에서 더 나아가 케이블TV사업 자체를 쪼개서 파는 것을 고려할 가능성은 일부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딜라이브 채권단이 실제 사업권역을 분할해 매각하는 안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노조가 전체 매각이 아닌 부분매각은 협상을 고려할 수도 없는 사안이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딜라이브 노조 관계자는 “분할매각은 염두에 두지 않은 사안”이라며 “분할매각은 논의 자체가 안 된다는 노조 입장을 회사에도 여러 차례 알렸다”고 말했다.
케이블TV업계의 한 관계자는 “분할매각을 하게 되면 KT에서는 입맛에 맞는 지역을 매수할 것이고 그 외 나머지는 찬밥으로 계속 남을 수밖에 없다”며 “나머지 사업권역을 매각하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그렇게 되면 그건 (매각을) 안 하느니만 못한 게 된다”고 말했다.
딜라이브는 사모펀드 MBK파트너스가 특수목적회사 국민유선방송투자를 세워 2008년 케이블TV기업 씨앤엠을 인수한 뒤 이름을 바꾼 회사다. MBK파트너스는 씨앤엠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금융권으로부터 1조2천억 원을 인수금융으로 조달했다.
MBK파트너스가 부채를 상환하지 못하자 딜라이브 채권단은 2015년 초부터 딜라이브를 매물로 내놓았지만 매각에 번번이 실패했다.
딜라이브는 현재 서울과 경기도 등 수도권에서 케이블TV사업을 하고 있다. 서울에서는 강남, 송파 등을 포함해 서울시 자치구 25곳 가운데 17개 구, 경기도에서는 일산, 파주, 의정부, 남양주 등 동북부지역에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