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증권가에 따르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별세를 계기로 이부진 사장이 호텔신라를 계열분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향후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변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건희 회장의 삼성그룹 계열사 보유 지분을 상속받으면 일부 지분을 매각해 상속세를 낼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과정에서 이부진 사장은 삼성전자 지분을 모두 매각하고 계열사 지분을 매입해 계열분리 수순으로 갈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호텔신라의 계열분리 가능성에 26일 호텔신라 우선주 주가는 거래 제한폭까지 치솟기도 했다.
재계에서는 당장 호텔신라가 계열분리를 하지 않더라도 이부진 사장이 호텔신라 지분을 확보해 독자경영체제를 강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사장은 10년째 호텔신라 등기이사에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호텔신라 주식은 단 1주도 없다.
현재 호텔신라는 삼성생명(7.3%), 삼성전자(5.1%), 삼성증권(3.1%), 삼성카드(1.3%), 삼성SDI(0.1%) 등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지분 17%를 보유하고 있고 그 뒤를 이어 국민연금이 10.1%의 지분을 들고 있다.
이 사장은 보유하고 있는 삼성계열사 지분은 삼성물산 지분 5.55%, 삼성SDS 지분 3.9%뿐이다. 하지만 이 사장이 보유한 지분을 처분하면 호텔신라 최대주주에 오를 수도 있다.
삼성물산 지분 5.55%는 27일 종가 기준 1조1668억 원, 삼성SDS 지분 3.9%는 5340억 원의 가치로 평가되고 있다. 합하면 1조6천억 원이 넘는데 이를 매각한 자금으로 호텔신라 주식을 매입하면 50% 이상의 지분율을 확보할 수 있다.
이 사장이 삼성SDS 보유지분만 매각해도 국민연금(10.1%)을 뛰어넘는 최대주주가 될 수 있다.
만약 이 사장이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삼성그룹 계열사의 지분 일부를 상속받는다면 그 이상의 호텔신라 지분 매입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회장이 보유한 삼성그룹 주식의 지분가액은 약 18조 원에 이른다.
이 사장이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 등을 활용해 주식 맞교환으로 호텔신라 지분을 확보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 사장이 호텔신라 지분을 확대한다고 하더라도 삼성그룹의 ‘한 지붕 두 가족’ 체제는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영향 등으로 호텔신라의 호텔과 면세사업이 큰 타격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당장 계열분리를 추진할 이유는 많지 않다. 호텔신라는 올해 상반기에만 1302억 원의 영업손실을 보는 등 실적 부진이 심각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최근 다른 대기업집단도 계열분리를 무리해서 추진하지 않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SK그룹은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대표이사 부회장이 SK디스커버리그룹을 계열분리할 것이란 말이 오랫동안 나왔다. SK그룹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 최창원 부회장 등 사촌들이 함께 경영하고 있는 만큼 계열분리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최창원 부회장은 SK디스커버리그룹을 독립적으로 경영하면서도 SK그룹과 계열분리를 하지 않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관계가 좋은 데다 굳이 계열분리의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신세계그룹도 사실상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이 독자경영을 강화하고 있지만 한 지붕 두 가족 경영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정 부회장의 이마트 지분은 18.55%, 정 총괄사장의 신세계 지분은 18.56%로 지배구조가 명확하게 나뉘어 있어 언제든지 계열분리가 가능하다. 하지만 정 부회장과 정 총괄사장의 사이가 좋고 이마트와 신세계의 계열사들이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는 부분이 많은 만큼 향후 몇 년 동안은 현재와 같은 체제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타계한 뒤 삼성그룹은 신세계그룹, CJ그룹, 한솔그룹 등으로 분리됐지만 이번에는 다른 길을 갈 것으로 보인다”며 “이부진 사장이 호텔신라 지분을 어느 정도 확보한다고 하더라도 계열분리가 바로 추진되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