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회장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경쟁사에 몸담았는데 하나금융그룹에서 입지를 다지면서 다음 회장자리를 놓고 내부 출신과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을 펼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금융지주에서 3명의 부회장이 각각 역할을 분담한 만큼 앞으로 경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3월 이진국 하나금융투자 대표이사 사장과 이은형 전 하나금융지주 부사장(중국민생투자그룹 총괄부회장)이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에 올랐다.
함영주 부회장이 경영관리, 이진국 부회장이 국내사업, 이은형 부회장이 해외사업을 맡아 이끌고 있다. 이진국 부회장은 하나금융투자 대표이사도 겸직한다.
하나금융지주에 꾸준히 부회장이 있어 왔고 한때 부회장이 4명에 이르기도 했던 만큼 3명의 부회장을 두는 것 자체가 그렇게 특이한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번 부회장 인사가 특별히 더 주목받는 이유는 김정태 회장의 임기 만료를 1년 앞두고 이뤄진 인사였기 때문이다.
김 회장이 부회장체제를 강화해 안정적 지배구조를 유지하려는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지만 결국 다음 회장 인선구도를 염두에 둔 인사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특히 이진국 부회장은 하나금융투자를 안정적으로 이끈 데 이어 부회장에도 오르면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하나금융그룹에서 순혈주의가 그리 강하지 않다는 점을 볼 때 앞으로 하나금융그룹에서 이 부회장의 역할이 한층 확대될 가능성도 높다.
하나금융그룹은 하나은행이 충청은행, 보람은행, 서울은행 등을 인수하며 몸집을 키워온 만큼 다른 금융그룹보다 순혈주의 색채가 옅은 편이다. 과거 현대증권과 부산은행을 거친 장승철 부회장이 하나금융투자 대표이사 사장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을 겸직하기도 했다.
하나금융그룹 안팎에서는 이진국 부회장이 다음 회장후보에 오를 수 있지 않냐는 조심스러운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하나금융그룹 출신이 아니지만 김정태 회장이 직접 영입해 ‘김정태 사람’으로 분류되는 데다 실적 역시 순항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 확산으로 금리가 ‘제로금리’ 수준까지 떨어지면서 이진국 부회장의 역할이 한층 중요해졌다. 은행들이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순이자마진(NIM) 감소를 피할 수 없는 만큼 비은행 계열사 가운데 가장 덩치가 큰 하나금융투자가 은행의 부진을 어느 정도 메워야 한다.
이진국 부회장은 금융권에서 ‘CEO 사관학교’로 불리는 신한금융투자 출신으로 2013년 처음 하나금융투자 사외이사로 선임되며 하나금융그룹과 인연을 맺었다.
김 회장이 직접 영입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당시에도 순혈주의가 강한 금융권에서 경쟁사 경영진이 사외이사로 선임되면서 파격적 인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신한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에서 사외이사도 맡아 증권뿐만 아니라 금융지주 전체를 아우르는 식견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2016년 3월 하나금융투자 대표이사 사장에 오른 데 이어 올해는 부회장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하나금융투자는 지난해 순이익 2803억 원을 거뒀다. 2018년보다 무려 84.3%나 증가한 수치다. 하나금융지주 순이익 가운데 하나금융투자가 차지하는 비중도 11.6%로 2배 늘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올해 하나금융그룹 실적에서 하나금융투자의 역할이 중요한 만큼 이 부회장에게도 매우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며 “올해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다음 회장후보로 충분히 이름을 올릴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진국 부회장과 비교해 나이나 경력 면에서 무게감이 다소 떨어지긴 하지만 이은형 부회장 역시 주목할 만하다.
이은형 부회장은 하나금융지주 글로벌전략담당 부사장(CGSO)을 지냈다.
고려대를 졸업하고 중국 지린대 석·박사를 거쳐 베이징대 고문 교수로 활동하다 2011년 하나금융그룹에 영입됐다. 1974년 태어나 40대라는 점에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 전문가인 만큼 중국을 중심으로 하나금융그룹의 해외사업을 챙길 것으로 보인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