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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한양행의 창업자인 유일한 박사(왼쪽)와 이정희 유한양행 사장. |
이정희 유한양행 사장이 유한양행의 신약개발을 강화하기 위해 인수합병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유한양행은 지난해 국내 제약업계 최초로 연매출 1조 원을 넘어섰다. 그러나 다국적 제약회사의 상품을 주로 팔아 거둔 실적이어서 제약회사가 아니라 제약유통회사라는 지적도 들었다.
이 사장은 올해 3월 취임해 이런 유한양행의 체질을 바꾸는 데 주력하고 있다.
유한양행은 흔히 '주인없는 회사'라고 불린다. 주인처럼 회사를 끌어갈 수 있지만 거꾸로 그만큼 회사의 체질을 책임지고 바꾸기도 쉽지 않다는 뜻이다.
이 사장이 유한양행에 인수합병이라는 DNA를 심어 체질을 바꿔낼지 주목된다.
◆ 이정희, 유한양행의 성장확보 노력
24일 유한양행에 따르면 이정희 유한양행 사장은 최근 신약개발과 바이오 벤처기업 인수에 1천억 원대의 투자를 고려하고 있다.
이 사장은 투자를 확대해 그동안 유한양행의 약점으로 지적됐던 신약개발을 강화하려고 한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유한양행은 신약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바이오 벤처기업 인수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한양행은 지난해 국내 제약회사 최초로 연매출 1조 원을 돌파했다.
그러나 유한양행을 두고 제약회사가 아니라 제약유통회사라는 비판도 나온다. 유한양행이 수입해 파는 다국적 제약회사의 상품판매 비중이 매출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한양행은 올해 상반기에도 다른 회사의 상품을 판매하는 비중이 72.8%에 이르러 제약회사 가운데 가장 높았다.
이 사장은 유한양행에 쏟아지는 이런 시선을 의식한 듯 유한양행의 체질개선에 주력하고 있다.
이 사장은 최근 사장 직속으로 미래전략실을 신설했다. 이 사장은 이를 통해 신약개발을 강화하고 바이오 벤처기업 인수합병 등으로 유한양행의 성장동력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
유한양행은 그동안 신약개발 의지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유한양행은 지난해 연구개발에 560억 원을 투자했다. 이것은 연간 매출 1조174억 원의 5.8% 수준에 불과하다.
제약업계에서 가장 연구개발에 적극적인 한미약품의 경우 연간매출은 7613억 원이지만 연구개발에 1520억 원을 투자한 점과 극명하게 비교된다.
유한양행은 올해 상반기 연구개발에 304억 원을 투자했다. 이는 유한양행 전체매출의 5.9%로 매출대비 연구개발비 순위로 따지면 국내 제약회사 가운데 28위에 그친다.
유한양행은 현재 17가지 신약을 연구개발 중이다. 퇴행성 디스크부터 당뇨병, 폐질환, 항암제 등 다양한 신약을 연구개발하고 있지만 신약개발의 성과는 아직 만들지 못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유한양행이 2013년부터 현재까지 승인받은 임상시험 건수는 12건에 불과하다. 반면 한미약품, 종근당은 같은 기간 30건에 이르는 임상시험을 승인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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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한양행은 지난 6월19일 창립89주년 행사를 열었다. 왼쪽부터 이필상 유한재단 이사장, 연만희 유한양행 고문, 이정희 유한양행 사장, 유도재 유한학원 이사장, 김태훈 유한양행 전 사장, 김선진 유항양행 전 사장. |
◆ 유한양행, 제약업계의 현금 큰손
유한양행은 신약개발에 장점이 있는 제약회사나 바이오 벤처기업을 인수해 유한양행의 신약개발부문을 강화할 수 있는 자금력을 확보하고 있다.
유한양행이 보유한 현금은 올해 상반기 말 기준으로 2383억 원에 이른다. 유한양행은 3개 월 이내 현금화 할 수 있는 ‘단기투자자산’도 2617억 원을 보유하고 있다.
유한양행은 최근 한올바이오파마 지분 4.33%를 팔아 272억 원의 현금을 추가로 확보했다. 유한양행이 단기간에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은 5천억 원이 넘는다.
유한양행이 신약개발에 특화한 회사를 인수하거나 합병한다면 신약개발에 실패할 위험성을 줄이고 임상허가를 받은 신약을 대거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유한양행이 인수합병에 나선다면 대웅제약과 비슷한 형태로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웅제약은 유한양행처럼 기업규모는 크지만 신약개발이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웅제약은 최근 1천여억 원을 들여 한올바이오파마의 최대주주가 됐다.
대웅제약은 2013년 이후 현재까지 승인받은 임상시험이 12건으로 유한양행과 같았다.
그러나 한올바이오파마가 같은 기간 승인받은 임상시험 10건을 합치면 대웅제약은 임상승인 건수에서 유한양행보다 2배 가까이 많아진다.
◆ 이정희, 인수합병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나
이정희 사장이 대웅제약처럼 적극적 인수합병을 추진하기에 유한양행의 독특한 경영시스템이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한양행은 대표적인 ‘주인 없는 회사’다. 유한양행 지분은 유한재단이 15.40%, 국민연금이 13.48%, 유한학원이 7.57%, 신한은행이 7.47% 등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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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박사. |
유한양행은 창업주인 유일한 박사가 1939년 종업원지주제를 도입하면서 지분 52%를 사원들에게 나눠줬다.
유한양행의 대표는 평사원 출신에서 뽑으며 임기는 3년이고 1회만 연임이 가능하다.
유한양행의 이런 시스템 때문에 이정희 사장 같은 전문경영인이 인수합병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인수합병은 재무구조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장기적으로 기업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유한양행 같은 지배구조에서 전문경영인이 인수합병을 추진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유한양행이 최근 몇 년 동안 다른 기업의 경영권을 확보한 경우 지난해 영양수액제 전문기업인 엠지의 지분 36.97%를 99억 원에 산 것이 전부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현재 통째로 인수할만한 매력적 기업이 시장에 많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다른 제약회사들은 기업인수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유한양행은 회사 특성상 정밀한 검토없이 무작정 인수합병에 나설 수 없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승용 기자]